얼마전 모 일간지 머릿기사에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발표되었다.
교육환경, 녹지공간, 문화적 여건 등 '삶의 질'을 따져본 조사에서 울산은 71위로 전국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나는 참 서운했다. 아닌데, 이게 아닌데…
정 붙이고 살면 다 좋아 보이는 건지 몰라도 나는 울산이 참 좋다. 문화의 불모지니 공해도시니 하는 말은 건성 들린다.
어쩌다 친척들을 만나면 "그 공기 나쁜 곳에서 어떻게 사니?" 하고 걱정들을 하는데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들에게 울산이 얼마나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곳인지 설명하느라 목이 쉰다.
공업단지로 지정되기 이전의 울산이야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살기 좋았겠지만, 인구 백만의 현대화된 도시 울산 역시 정답고 사랑스럽다.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도심의 거리는 거리대로, 2교대나 3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지대는 공장지대대로 그 나름의 정겨움이 느껴진다.
옛 울산에 대한 향수에만 연연하여 오늘날의 울산을 척박하다고만 하지 말자.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변하지 않은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울산이 비록 옛날처럼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인정이 넘쳐나는 곳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개척하고 그들의 인생행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젖과 꿀이 흐르는 곳 엘도라도로.
그들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땀 흘리며 고향의 형제들을 공부시키며 부모들에게 물질적인 효도도 실컷 했다. 그들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뜻 돌아갈 수 있을까?
고향은 멀리서 그리워할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 울산에 살면서 울산을 흉보지 말자. 언제라도 돈만 벌면 이곳을 떠나리라고 생각지 말자.
내 청춘의 피땀을 바친 이 곳에서 뭔가 이루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 아버지의 땀 흘린 흔적을 보면서 자식들도 뭔가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울산에 대한 기억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계제도를 공부했던 나는 H사에 공채를 통해 입사해 울산에 첫발을 디뎠다. 스물 세 살의 처녀 눈에 비친 울산은 얼마나 황량하고 서글펐는지… 20년 넘게 내륙에서만 생활해서인지 방어진의 바닷바람은 나에게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왔다.
어느 비오는 날이었던가, 퇴근해서 조선소 야드를 걸어 나오는데 등뒤에서 휘몰아치는 세찬 바람과 함께 들려오던 용접공들의 걸쩍지근한 육두문자.
비바람 때문에 가뜩이나 졸아붙어 있던 내 가슴은 얼음처럼 차가워지면서 이런 다짐을 했었다.
"떠나야지. 이 무식하고, 몰인정하고, 비정한 곳을."
그랬다. 연일 휘몰아치는 바람보다 더 나를 괴롭힌 것은 울산의 비문화적인 환경이었다. 어디 정 붙일 데라곤 없이 황량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었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마시는 하루살이들의 집단서식지에 불과했다.
일요일이면 하루종일 동해를 내려다보며 나는 향수병을 앓았다. 나, 언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리. 그리운 어머니와 동생들이 기다리는 내 고향 진주로.
당시 울산은 도시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급격히 발전을 거듭하느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주택이나 도로 여건과는 상관없이 유입되는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으니, 사람답게 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이었는지도 몰랐다.
거대한 선박에 매달려 페인트칠을 하던 도장공, 아름다운 용접불꽃을 바다로 떨어뜨리며 그의 젊음을 사르던 용접공, 쇳가루를 한 줌씩 마시면서도 잘살아 보자고 잔업이며 철야작업을 불사하던 그라인더공.
아아, 그때는 몰랐다. 그들의 땀이 얼마나 귀한 줄. 얼마나 뜨거운 줄.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라는 근사한 명칭은 그들에게 너무나 사치스런 치장이었다. 울산은 그들에게 단지 치열한 '삶' 그 자체였을 뿐이다.
나는 蔚山울산이 아니라 鬱山울산이라고 입버릇처럼 뇌었다. 연일 부는 바람처럼 거리는 무질서했고 정서적인 안정을 취할 곳이 없어 나는 무척 우울했다.
울산생활 만 1년만에 나는 백기를 들었다. 마침 계열사에서 설계직 사원에 대한 전출 의뢰가 와서 스스럼없이 응하고 말았다.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울산을 떠났다.
아침마다 잘 닦은 양은냄비처럼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동해를 볼 수 없어도 좋았다. 나는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鬱山울산을 떠났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나는 울산을 떠난 지 6년 후에 다시 울산으로 오게 되었다. 혼기를 놓치고 서른 고개를 넘고 있는 노처녀에게 표적이 된 남자가 하필이면 울산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한 지 12년, 나도 이제 어엿한 울산사람이고 내 아들의 고향도 울산으로 만들었다.
12년간 울산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토박이도 만나보고 객지 사람도 겪어보았지만, 나름대로 이 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은 사람들이 많았다.
토박이들은 '객지 사람들이 울산을 다 버려놓고, 저희들은 돈 벌어 고향으로 가버리면 그만 아니냐'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말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간 '객지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 어느새 객지사람들에게 울산은 제2의 고향이 되어있고, 2세들의 고향이 되어있고, 그래서 더 책임감 있게 울산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울산으로 왔지만, 그 이후로는 나는 한 번도 울산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내가 정을 주고 사랑을 나누고 살면 어디나 좋은 곳이다. 내 마음의 빗장을 걸어놓고 언제나 떠날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이 도시가 얼마나 황량할까.
교통이나 환경, 교육적인 면에서 다소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는 우리 나라 대도시들이 거의 다 안고 있는 難題난제라고 생각된다. 산업화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훼손 당한 아름다운 자연과 각박한 인심도 이제 와서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울산이 전국에서 가장 살기 나쁜 도시로 손꼽히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나쁜 습성 중 하나가 문화적 사대주의와 자기비하 심리가 아닌가 싶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나쁘게 얘기하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국민성이 틀렸어' 따위의 자조와 지독한 지역이기주의들은 정말 버려야 한다.
울산이 살기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울산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해보았는지 궁금한 일이다.
울산은 도시 그 자체보다도 주변 여건이 좋다. 신라문화권에 속해 근교 구석구석에 유물 유적이 많고, 천 미터급 봉우리들이 즐비한 영남알프스 산맥들이 울산의 지붕을 이루면서 비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주전, 정자, 강동으로 이어지는 해안은 오염되지 않은 빛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름 한철 스킨스쿠버로 물 속에 들어가 보면, 사이판이나 괌이 부럽지 않다.
남의 도시, 남의 나라만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울산을 바로 알고 사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쓴 물을 단물로'라는 말처럼, 이곳이 척박하다고 생각되더라도 내가 사랑을 가지고 노력하면 울산은 얼마든지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고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수 년 내로 울산이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가 아니라 '내 말도 좋게 합시다'로 바꾸고 내가 사는 울산을 좋게 생각하고 좋게 말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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