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들어 북쪽으로 산행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토요일 정보지를 펼쳐보니 거의 모든 산악회가 설악산 간다.

지난 주말 봉정암에 5천명이 묵었다는데... 얼마나 밀렸을까?

나는 시즌에 절대 유명산엔 가지 않는다. 특히 주말에는.

밀려가고 밀려오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 산은 매력없기 때문이다.


일요일, 시간은 비어있고 어느 산을 갈까... 점을 치고 있는데

k가 가덕도 간다니 귀가 번쩍. 친구 따라 강남 가자!

한동안 울산 근교산만 다녔는데 모처럼 배 타고 함 나가봐야쥐~

더군다나 차가 우리 동네 앞까지 온다니 이 아니 반가운가.


동구 끝에서 출발한 버스는 시내 곳곳에서 사람들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의 녹산 방파제 앞에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대형 크레인과 바지선이 군데군데 떠있는 녹산항 주변은 지저분하다.

우리동네 주전 앞바다 풍경에 눈이 익은 나에게는 발 아래로 보인다.


녹산항에서 배 타고 40분쯤 달려 우리가 내린 곳은 가덕도 천성선착장.

북쪽의 산들을 붉게 물들이며 하산하고 있는 가을이

가덕도에는 아직 오지 않았나보다.

가을이면 가장 먼저 물드는 붉나무도 아직 잎이 푸르다.

동네 뒷산 같이 친근한 느낌의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뒤돌아보니

아아,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제도!



가덕도는 거제도에 둘러싸인 섬이다. 높은데 올라보니 알겠다.

땀 한번 흘리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굽어보는 10월의 바다는 아름답다.

등산이라기보다 소풍같은 느낌으로, 여행이라는 느낌으로 걷는다.

들머리에서 40여분 정도 올라가서 맞이한 첫 봉우리는 연대봉(459m).

아마 옛날에 여기서 봉화를 올렸나보다. 우뚝 솟은 기암 끝에 봉수대 흔적.



시야가 탁 트이면서 펼쳐지는 풍경은 부산 사하구 일대와 다대포.

낙동강 하구가 바다로 흘러드는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모래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요술을 부리는 거다.

낙동정맥 끝이 다대포 몰운대라 했는데 오늘 낙동정맥 끝자락도 보네!

한시절 철새도래지로 유명을 떨쳤던 을숙도가 저 멀리 누워있다.

시원한 눈맛을 즐기며 바람에 몸을 맡긴채 한동안 서있다.



옅은 안개가 깔린 수평선을 보며 다시 걷는다. 한발 한발이 천국이다.

매봉에 오르기 전 산림초소 근방에서 풀밭위의 점심을 먹는다.



등에 짊어졌던 것을 배로 옮겼을 뿐인데

점심 먹고 나면 왜 그리 발걸음이 무거운지. 씩씩대며 매봉을 오른다.

해발 359m라고 만만하게 보지 마라. 매봉이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해발 제로에서 시작된 산행이니 우습게 볼 것도 아니다.

매봉 찍고 응봉산(312m)까지 단숨에...사실은 헐레벅떡.



응봉산은 암봉이 매력적이다. 오늘 찍은 봉우리 중에 제일 낫다.

발 아래 가덕도 마을 전경이 고스란히 내려다 보인다.

생각보다 마을이 크다. 마을 근처 논은 황금빛으로 물들어있다.

나중에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인구가 3천여명이나 된단다.

초등학교만 3개... 중고등학교도 있다네!

하긴, 면적으로 따지면 영도의 1.6배 크기라니...

오른쪽으로 계속 따라오던 낙동강 하구 풍경은 이제 멀어지고

건너편으로 녹산공단이 눈앞에 다가온다. 살풍경하다.



조망의 즐거움을 실컷 누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다시 재촉한다.

감금봉을 지나 터진목으로 내려온다. 터진목이라... 참 재미있는 이름이다.

바다에 종패를 양식하는 풍경이 이채롭다. 여기서 생산되는 종패는

말 그대로 최상품 굴 종자다. 여기서 종패를 가져다가

남해안 여러 양식장에서 굴을 생산한다고 한다.

그 종패 덕분에 한때 가덕도는 ‘돈섬’이라고 불렸단다.



어업이 전부였던 시절 가덕도는 황금기였지만 지금은 쇠락하고 있다.

부산신항만 건설이 완공되면 다시 옛날의 영화를 누릴수 있을까.

신항만 배후도시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는 가덕도.

거제도와 이어지는 다리도 놓이고, 녹산과 이어지는 다리도 놓이면

그 꿈은 현실이 되겠지. 그 꿈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도 많겠지.



터진목을 지나 눌차도로 이어지는 방파제 길을 따라

해풍을 맞으며 걷는다. 짭쪼롬한 바다 내음. 싱그런 바닷바람.

4시간여 짧고 쌈박한 산행을 마무리하며 눌차선착장에 닿는다.

설핏 기우는 햇살을 받으며 배를 기다리기 무려 한 시간.

인내력의 한계가 올 즈음에 배가 들어왔다.



아침에 배를 탔던 곳에 다시 내린 시간이 5시30분 근처.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녹산 선착장에서 하산주를 마신다.

산친구 등자가 말했지. 태화루가 전국에서 제일 맛있다고.

내 입맛에 익숙하니 맛있는 거겠지. 술도 묵은 정이 좋은가봐.

노을 지는 서편 하늘을 등지고 녹산항을 떠난다.

아아, 이제야 돌아가누나. 님 계신 울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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