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래 동네는 꽃이 지고 있는데 산 위에는 철쭉이 한창이란다.
능선을 바알갛게 물들이는 철쭉꽃을 보러 새벽같이 나선 길,
합천호 푸른 물에 제 그림자를 담그고 있는 황매산을 찾아간다.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합천호에 잠기면
세 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수중매라 불리는 황매산(1,108m).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수년 전만해도 심심산골 아무도 찾지 않는 오지였다.
산행 코스는 황매정사에서 모산재를 거쳐 황매산 정상을 밟고
중봉 하봉을 거쳐 삼봉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황매정사 입구에서 모산재를 올려다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 전시장, 한 눈에 바라보기가 벅차다.
말굽형으로 이루어진 바위능선 가운데에 영암사가 있어서
영암산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모산재.
"신령스런 바위산"이란 그 뜻처럼 바위 능선이 사뭇 신령스럽다.
연두빛 수풀 사이로 들머리를 잡자 금방 시작되는 바위 군락.
쏟아지는 땡볕 아래 네 발로 기어, 혹은 연인에게 매달리듯 산을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시선은 연신 오른쪽으로 간다.
거대한 화강암 슬랩 중간에 아찔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어디 뿌리내릴 곳 없어 그 척박한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을까?
조망이 탁 트이는 곳에 올라 산아래 마을을 내려다본다.
발 아래 대기저수지의 푸른 물빛과 평화로운 마을 정경이 조화롭다.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모산재 북동릉의 백미는 황포돛대바위.
거대한 삼각형 바위가 정말 돛대 같다. 색깔도 누르스름한 게 꼭 황포돛대다.
5~6m 높이의 세모꼴 기암, 그 오른쪽으로는 수십 길 절벽 아래로
대기저수지, 황매정사, 영암사 지붕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땀을 식히고 다시 고도를 높여 암릉을 타니 무지개터.
무지개터를 지나 잠시 숲터널을 통과하니 모산재 정상이다.
숲 터널에서 정상까지 오는 길에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을 만났다.
이 명당에 묘를 쓰면 그 자손이 왕이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마을에는 가뭄이 들어 살수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이 자리에 몰래 조상의 묘를 썼으므로
마을에서는 묘를 쓰지 못하도록 물웅덩이를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모산재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지고
그 위에 황매산 정상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와우~~~ 산에 불 났네. 꽃불 났어!"
황매산 정상을 보며 걷는 길, 건너편 능선은 온통 철쭉꽃밭이다.
밋밋한 산사면에 넓게 물든 분홍빛 카페트는 내 눈을 현혹한다.
연초록 잎들의 관목 사이로 분홍빛 정열을 발산하는 꽃, 꽃, 꽃...
철쭉제단에서 베틀봉을 지나 황매산 정상까지 철쭉이 만개했다.
황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에서 한 여자가 전화를 걸고 있다.
"너무 너무 좋아서 전화했어요. 정말 너무 좋아요."
그 여자는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하고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나만 보기 너무 아까워요...)
사랑은 그런 것이다.
좋은 걸 보면 함께 보고 싶고, 맛있는 걸 보면 함께 먹고 싶고.
황매산 정상(1108m)에 서니 발아래 합천호가 시원하게 누워있다.
가뭄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아 정경은 별로였지만 그런대로 눈맛이 좋다.
저수지 물에 잠겼던 산사면이 지금은 황토색으로 드러나 있지만
물이 가득 차면 대단한 경치를 연출할 것이다.
정상에서는 저 멀리 가야산이 조망되고, 그 앞의 의상봉, 미인봉까지 보인다.
합천호를 내려다보며 문득 충주호를 배경으로 솟아있던 월악산이 생각난다.
어느 해 가을, 만수봉 릿지에서 바라보던 월악산 영봉은
마치 수반에 담긴 한점의 명품 수석 같았다.
산은 물을 만나야 살아난다던가?
합천호의 물은 황매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황매산 정상 바로 아래에 드넓게 펼쳐진 황매평전에는
얼룩무늬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마치 대관령의 축소판 같다.
주봉에서 중봉, 하봉까지 시원한 눈맛을 즐기며 한가롭게 내려온다.
삼봉까지 내려가려던 계획을 접고 하봉 직전에 하산하기로 했다.
모산재의 암릉미와 만개한 철쭉 등등
황매산의 진수를 다 봤으니 더 걷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하산길 숲속에는 취나물이 카페트로 깔렸다.
두어 걸음 걷고 나물 뜯고, 서너 걸음 걷고 또 뜯고
하산길이 무척이나 더뎠지만 배낭에 채운 산나물처럼
내 가슴은 행복으로 가득찼다. <2004년 4월 29일>
능선을 바알갛게 물들이는 철쭉꽃을 보러 새벽같이 나선 길,
합천호 푸른 물에 제 그림자를 담그고 있는 황매산을 찾아간다.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합천호에 잠기면
세 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수중매라 불리는 황매산(1,108m).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수년 전만해도 심심산골 아무도 찾지 않는 오지였다.
산행 코스는 황매정사에서 모산재를 거쳐 황매산 정상을 밟고
중봉 하봉을 거쳐 삼봉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황매정사 입구에서 모산재를 올려다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 전시장, 한 눈에 바라보기가 벅차다.
말굽형으로 이루어진 바위능선 가운데에 영암사가 있어서
영암산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모산재.
"신령스런 바위산"이란 그 뜻처럼 바위 능선이 사뭇 신령스럽다.
연두빛 수풀 사이로 들머리를 잡자 금방 시작되는 바위 군락.
쏟아지는 땡볕 아래 네 발로 기어, 혹은 연인에게 매달리듯 산을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시선은 연신 오른쪽으로 간다.
거대한 화강암 슬랩 중간에 아찔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어디 뿌리내릴 곳 없어 그 척박한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을까?
조망이 탁 트이는 곳에 올라 산아래 마을을 내려다본다.
발 아래 대기저수지의 푸른 물빛과 평화로운 마을 정경이 조화롭다.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모산재 북동릉의 백미는 황포돛대바위.
거대한 삼각형 바위가 정말 돛대 같다. 색깔도 누르스름한 게 꼭 황포돛대다.
5~6m 높이의 세모꼴 기암, 그 오른쪽으로는 수십 길 절벽 아래로
대기저수지, 황매정사, 영암사 지붕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땀을 식히고 다시 고도를 높여 암릉을 타니 무지개터.
무지개터를 지나 잠시 숲터널을 통과하니 모산재 정상이다.
숲 터널에서 정상까지 오는 길에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을 만났다.
이 명당에 묘를 쓰면 그 자손이 왕이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마을에는 가뭄이 들어 살수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이 자리에 몰래 조상의 묘를 썼으므로
마을에서는 묘를 쓰지 못하도록 물웅덩이를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모산재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지고
그 위에 황매산 정상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와우~~~ 산에 불 났네. 꽃불 났어!"
황매산 정상을 보며 걷는 길, 건너편 능선은 온통 철쭉꽃밭이다.
밋밋한 산사면에 넓게 물든 분홍빛 카페트는 내 눈을 현혹한다.
연초록 잎들의 관목 사이로 분홍빛 정열을 발산하는 꽃, 꽃, 꽃...
철쭉제단에서 베틀봉을 지나 황매산 정상까지 철쭉이 만개했다.
황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에서 한 여자가 전화를 걸고 있다.
"너무 너무 좋아서 전화했어요. 정말 너무 좋아요."
그 여자는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하고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나만 보기 너무 아까워요...)
사랑은 그런 것이다.
좋은 걸 보면 함께 보고 싶고, 맛있는 걸 보면 함께 먹고 싶고.
황매산 정상(1108m)에 서니 발아래 합천호가 시원하게 누워있다.
가뭄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아 정경은 별로였지만 그런대로 눈맛이 좋다.
저수지 물에 잠겼던 산사면이 지금은 황토색으로 드러나 있지만
물이 가득 차면 대단한 경치를 연출할 것이다.
정상에서는 저 멀리 가야산이 조망되고, 그 앞의 의상봉, 미인봉까지 보인다.
합천호를 내려다보며 문득 충주호를 배경으로 솟아있던 월악산이 생각난다.
어느 해 가을, 만수봉 릿지에서 바라보던 월악산 영봉은
마치 수반에 담긴 한점의 명품 수석 같았다.
산은 물을 만나야 살아난다던가?
합천호의 물은 황매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황매산 정상 바로 아래에 드넓게 펼쳐진 황매평전에는
얼룩무늬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마치 대관령의 축소판 같다.
주봉에서 중봉, 하봉까지 시원한 눈맛을 즐기며 한가롭게 내려온다.
삼봉까지 내려가려던 계획을 접고 하봉 직전에 하산하기로 했다.
모산재의 암릉미와 만개한 철쭉 등등
황매산의 진수를 다 봤으니 더 걷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하산길 숲속에는 취나물이 카페트로 깔렸다.
두어 걸음 걷고 나물 뜯고, 서너 걸음 걷고 또 뜯고
하산길이 무척이나 더뎠지만 배낭에 채운 산나물처럼
내 가슴은 행복으로 가득찼다. <2004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