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계곡에 붙은 고유명사 중 가장 그럴듯한 이름, 용소골.
그야마로 용이 살았을 것 같은 시퍼런 용소가 기괴함을 자아낸다.
수년 전만해도 교통의 오지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응봉산, 그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용소골은 남한에 마지막 비경이 분명하다.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울진의 경계에 자리한 응봉산을 오르기 위해 덕구온천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두 시.
선잠에서 깨어나 바라본 하늘은 한꺼번에 쏘아올린 폭죽처럼 찬란한 별꽃들이 허드러졌다.
별빛에 의지해 산길을 걷기엔 너무 이른 시간. 해드랜턴에 드러나는 숲은 청신하게 살아있다. 알싸한 수풀 향기가 한순간 내 몸의 바이오리듬을 되살렸다.
잠든 숲을 깨워 나무와 눈 맞추며 오르는 산길, 응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하이킹 코스처럼 편안했다. 가파르고 위험한 길에 스릴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다소 지루할 정도로.
정상에서 일출을 볼 요량으로 가다 쉬다 하면서 능선에 붙었다. 저 멀리 히붐하게 밝아오는 새벽이 겹겹이 둘러싸인 산과 산 아래 깃든 마을을 정답게 내놓는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주변 산세를 관망한 뒤 작은당귀골로 내려섰다. 가파른 내리막 끝에서 말로만 듣던 용소골 계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용소골에는 제대로 된 등산로가 거의 없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그대로 통과해 절벽에 붙었고 수십미터 낭떠러지 위를 기었다.
계곡의 물 속에는 다슬기가 까맣게 붙어 있는데, 고기들은 사람을 피해 달아날 줄도 몰랐다. 이승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때묻지 않은 자연 앞에서 나는 처녀지에 온 듯한 착각마저 느꼈다.
어림잡아 백 여 미터는 될 듯한 절벽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는 그 절벽들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태고적 용암이 분출된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 그야말로 자연미의 극치다.
길 없는 길을 찾아 계곡을 걸으며 배낭을 머리에 이고 가슴팍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넜다. 빠른 물살이 온 몸을 훑어갈 땐 팽팽한 긴장과 스릴이 느껴졌다.
아, 이 짜릿한 느낌. 살아있는 순간의 행복.
물을 건너 닿은 바위에는 이따금 광맥이 보였다. 그 옛날 중석광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가파르고 위험한 협곡에 누군가 발파작업을 시도했던 듯 군데군데 억지로 뚫어놓은 듯한 길이 이곳의 사연을 짐작케 한다.
덕풍마을 민박집 주인 말로는 이곳이 산판길이었다는데, 깊은 산중에서 나무를 메어내 마을로 나르느라 그랬는지 계곡 중간중간에 휘어진 레일이 어색하게 버려져 있었다.
천불동, 칠선계곡 그 어느 곳도 용소골에 견줄 수 없다. 설악이나 지리산이 높다 하여 두 계곡을 손꼽지만 사람의 발길에 이미 닳을대로 닳아 이젠 저자거리의 여인처럼 평범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용소골은 아직 처녀였다. 가끔 그녀를 흠모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살짝 잡혀줄 뿐, 그녀의 입술도 그녀의 가슴도 열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정하게 여민 그녀의 앞가슴인지도 몰랐다.
앞서 간 등산객들이 나무에 묶어놓은 시그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용소골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등산로가 없다시피 해서 신발을 신은 채로 물속을 걸어야 했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너 절벽을 올라야 했다.
시퍼런 용소가 입을 벌리고 있는 절벽 위를 게걸음으로 통과했다. 자일을 걸어둔 사람이 고맙기 짝이 없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시퍼런 용소에 그대로 빨려들어가 버릴 듯하다.
발 아래 검푸른 물을 내려다보며 아슬아슬한 낭떠러기 절벽 위를 걷는 기분이라니... 위험이란 때로 인간에게 자극적인 쾌감을 주나 보다. 계곡을 통과하는 데 여섯 시간이나 걸렸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물 속에 서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아,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남아있다니!"
이름난 계곡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짓밟아 자연은 점점 훼손당하고 있는데 아아, 그래도 용소골만은 용케도 살아남아 있었구나. 덕풍마을 민박집에 들러 막걸리 한 되를 청했다.
점심을 먹고 있던 주인은 수박 한 통까지 덤으로 주며 김치 안주를 내놓았다. 막 버무린 강원도 김치의 질박한 맛이라니.
손님에게 술을 내고도 술값 계산에 신경 쓰지 않는 민박집 주인이 너무나 친근하고 정답다.
덕풍에서 풍곡계곡으로 내려오는 길, 해는 중천에 떠 있고 하얗헤 바랜 비포장도로는 후끈후끈한 지열을 내뿜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물 속에 풍덩 몸을 던졌다.
차고 맑은 기운이 온몸에 퍼지면서 한순간 절정을 느꼈다. 황홀한 전율이 왔다.
초가을 뙤약볕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물 속을 유영하는 내 몸은 청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여름의 휘날레는 너무나 찬란해 눈물이 난다.
그야마로 용이 살았을 것 같은 시퍼런 용소가 기괴함을 자아낸다.
수년 전만해도 교통의 오지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응봉산, 그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용소골은 남한에 마지막 비경이 분명하다.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울진의 경계에 자리한 응봉산을 오르기 위해 덕구온천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두 시.
선잠에서 깨어나 바라본 하늘은 한꺼번에 쏘아올린 폭죽처럼 찬란한 별꽃들이 허드러졌다.
별빛에 의지해 산길을 걷기엔 너무 이른 시간. 해드랜턴에 드러나는 숲은 청신하게 살아있다. 알싸한 수풀 향기가 한순간 내 몸의 바이오리듬을 되살렸다.
잠든 숲을 깨워 나무와 눈 맞추며 오르는 산길, 응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하이킹 코스처럼 편안했다. 가파르고 위험한 길에 스릴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다소 지루할 정도로.
정상에서 일출을 볼 요량으로 가다 쉬다 하면서 능선에 붙었다. 저 멀리 히붐하게 밝아오는 새벽이 겹겹이 둘러싸인 산과 산 아래 깃든 마을을 정답게 내놓는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주변 산세를 관망한 뒤 작은당귀골로 내려섰다. 가파른 내리막 끝에서 말로만 듣던 용소골 계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용소골에는 제대로 된 등산로가 거의 없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그대로 통과해 절벽에 붙었고 수십미터 낭떠러지 위를 기었다.
계곡의 물 속에는 다슬기가 까맣게 붙어 있는데, 고기들은 사람을 피해 달아날 줄도 몰랐다. 이승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때묻지 않은 자연 앞에서 나는 처녀지에 온 듯한 착각마저 느꼈다.
어림잡아 백 여 미터는 될 듯한 절벽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는 그 절벽들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태고적 용암이 분출된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 그야말로 자연미의 극치다.
길 없는 길을 찾아 계곡을 걸으며 배낭을 머리에 이고 가슴팍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넜다. 빠른 물살이 온 몸을 훑어갈 땐 팽팽한 긴장과 스릴이 느껴졌다.
아, 이 짜릿한 느낌. 살아있는 순간의 행복.
물을 건너 닿은 바위에는 이따금 광맥이 보였다. 그 옛날 중석광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가파르고 위험한 협곡에 누군가 발파작업을 시도했던 듯 군데군데 억지로 뚫어놓은 듯한 길이 이곳의 사연을 짐작케 한다.
덕풍마을 민박집 주인 말로는 이곳이 산판길이었다는데, 깊은 산중에서 나무를 메어내 마을로 나르느라 그랬는지 계곡 중간중간에 휘어진 레일이 어색하게 버려져 있었다.
천불동, 칠선계곡 그 어느 곳도 용소골에 견줄 수 없다. 설악이나 지리산이 높다 하여 두 계곡을 손꼽지만 사람의 발길에 이미 닳을대로 닳아 이젠 저자거리의 여인처럼 평범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용소골은 아직 처녀였다. 가끔 그녀를 흠모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살짝 잡혀줄 뿐, 그녀의 입술도 그녀의 가슴도 열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정하게 여민 그녀의 앞가슴인지도 몰랐다.
앞서 간 등산객들이 나무에 묶어놓은 시그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용소골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등산로가 없다시피 해서 신발을 신은 채로 물속을 걸어야 했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너 절벽을 올라야 했다.
시퍼런 용소가 입을 벌리고 있는 절벽 위를 게걸음으로 통과했다. 자일을 걸어둔 사람이 고맙기 짝이 없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시퍼런 용소에 그대로 빨려들어가 버릴 듯하다.
발 아래 검푸른 물을 내려다보며 아슬아슬한 낭떠러기 절벽 위를 걷는 기분이라니... 위험이란 때로 인간에게 자극적인 쾌감을 주나 보다. 계곡을 통과하는 데 여섯 시간이나 걸렸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물 속에 서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아,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남아있다니!"
이름난 계곡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짓밟아 자연은 점점 훼손당하고 있는데 아아, 그래도 용소골만은 용케도 살아남아 있었구나. 덕풍마을 민박집에 들러 막걸리 한 되를 청했다.
점심을 먹고 있던 주인은 수박 한 통까지 덤으로 주며 김치 안주를 내놓았다. 막 버무린 강원도 김치의 질박한 맛이라니.
손님에게 술을 내고도 술값 계산에 신경 쓰지 않는 민박집 주인이 너무나 친근하고 정답다.
덕풍에서 풍곡계곡으로 내려오는 길, 해는 중천에 떠 있고 하얗헤 바랜 비포장도로는 후끈후끈한 지열을 내뿜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물 속에 풍덩 몸을 던졌다.
차고 맑은 기운이 온몸에 퍼지면서 한순간 절정을 느꼈다. 황홀한 전율이 왔다.
초가을 뙤약볕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물 속을 유영하는 내 몸은 청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여름의 휘날레는 너무나 찬란해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