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는 느닷없이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제3자 앞에서.

너무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 대꾸할 말을 잃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순발력이 많이 떨어진 게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우습게 보여?"라고 화를 냈어야 하는 건데.

순간적으로 나는 매우 배려심 깊은 사람이 되어, 내가 화를 내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얼버무리고 말았다.

 

시 외곽에 사는 그가 모처럼 모임에 왔길래 차나 한잔 하자고 3명이 자리에 앉았는데

잡다한 얘길 나누다 그가 불쑥 한다는 말이,

"지우당은 성질이 못돼서 옆에 사람이 오래 못 붙어 있어요. 아마 내가 가장 오래 붙어있을 걸요~"

나는 동석한 사람 때문에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 관대한 척, 대범한 척,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니야, 내 옆에 남아있는 사람 아직도 많아~"

 

며칠동안 분해서 잠을 설쳤다. 내가 믿었던 사람이 나를 저 정도로 보고 있었단 말이야?

옥(玉)을 주고 돌을 돌려받은 것처럼 분하고 억울하고 속이 상했다.

사람 사이가 늘 좋을 수는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에게 그런 공격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한때 잘나가던 그가 늙고 힘빠진게 가여워서 늘 내가 먼저 전화하고 챙겼다.

 

복사꽃을 봐도, 유채꽃을 봐도, 연두빛 새순을 봐도 그가 준 상처가 낫지 않았다.

오랜 지기여서 서로의 장단점을 알만큼 아는데, 말 안해도 다 느끼는데, 왜 그는 처음 본 사람 앞에서 나를 무안주는가?

무심코 나온 말이라기엔 너무 잔인한 직설. 그는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일까?

이십년 우정이 흔들리는 걸 느끼며 내내 심기가 편치 않아 괴로웠는데

먼곳에서 온 블친 한분께 내 얘길 털어놓았더니 단번에 해결(?) 해주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분이라 그런지, 사람 사이에 풀리지 않는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간단하게 풀어주었다.

나를 비난한 그 사람의 언행은 방어기제인 '투사(projection}'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투사: 자신의 바람직스럽지 않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그 감정이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으로 보이게 하는 과정.

 흔히 볼 수 있는 투사행위로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여운 감정 때문에 우려될 때

오히려 그 사람을 적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는 경우.

 

나를 공개비난한 그에게 심리학 책을 선물로 보내야겠다.

프로이트, 융, 아들러 심리학까지 다 읽어보라고 권해야겠다.

하긴, 백 수레의 책을 읽은들 뭐하나. 옥(玉)을 받고 돌(石)을 돌려줄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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