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현관 앞에 먼지를 둘러쓰고 있는 자전거를 깨워 차에 실었다. 계단에 묶여있던 아들 자전거도 함께.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대기는 더없이 깨끗하고 바람은 달았다. 이유는 단지 그거였다.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동천에서 태화강 상류를 따라 선바위까지 왕복 32키로-  아무 생각없이 달렸다, 둘이.

강변에는 개양귀비 요염하게 피어있고, 이팝나무 가로수엔 쌀밥을 솥째로 부어논 것처럼 흰 꽃이 소복하다.

5월의 신록을 온몸으로 느끼며 바람을 가르는 재미에 빠져 이순(耳)의 남편이 소년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손이 저렸고, 나중엔 엉덩이뼈가 아팠지만, 고통을 지불해도 좋을만큼 멋진 라이딩이었다.

 

저녁에 누우니 온 몸의 세포들이 깨어나 아우성쳤다. 서툰 자전거로 먼길을 달렸으니 안쓰던 근육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엄살 부리지 마, 이것들아. 너그들한테는 당근보다 채찍이 나아~

살살 달래도 들을까 말까한 몸을 뒷날 다시 자전거에 얹었다. 어제보다 엉덩이가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동천강 상류를 따라 경주로 이어지는 길은 아카시아 터널이 장관이었다. 오늘은  시 경계까지 가볼꺼나.

그러나, 향기로운 그늘 속을 한 시간쯤 달렸을 때 깨달았다. 엉덩이가 천근 만근이라는 사실을.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몰랐구나 내가. 아무래도 채찍은 무리였나봐.

 

인후염에 임파선까지 부어 병원을 찾았더니 과로가 원인이라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매사 분수껏 살 일이다. (사진 5월9일 선바위)

 

 

 

5월24일 태화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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