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도 제대로 못 보고 가을을 배웅하누나.
<가거라, 사랑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이 길을~> 유행가 가사가 참 그럴듯하지 않은가.
26년동안 살아온 울산에서 내가 안가본 곳이 있었다니! 울산 전역을 360도 파노라마로 돌아볼 수 있는 돗질산에 올랐다.
이병철 회장이 정상부에 별장을 짓던 중 큰 구렁이가 나와서 죽고, 이후 포크레인 기사도 이유없이 죽어 공사를 중단했다고 한다.
죄가 있다면 기가 센 땅에 별장을 지으려던 재벌 회장인데, 왜 애꿎은 노동자가 죽었단 말인가.
하긴, 옛 고분을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전망 좋은 터는 기가 센 경우가 많다. 기가 센 땅에는 아무나 살기 어렵다. 기가 센 사람도 아무나 함께 살기 어렵다.
이름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돗질산을 남암지맥의 끝으로 친다.
정족산에서 갈라진 남암지맥이 문수산, 함월산을 거쳐 돗질산 아래 태화강으로 스며든다는 얘기.
돗질산 밑에는 사카린사건으로 박대통령에께 빼았겼다 90년대 중반에 되찾은 삼성정밀화학 공장이 있다.
이병철 회장 별장터를 마주보고 있는 학수암은 고려시대 절터로 유추되나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바닷가 쓰러져가는 창고가 화려한 갤러리로 변했다... 읍천항
한 사람의 굴곡진 삶을 들여다보고 온 날. 지금까지 무사하게 살아온 날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대문도 없는 집, 눈만 뜨면 파도가 문 밖으로 달려드는 그 집에 그녀가 살고 있었다.
거래은행에서 VVIP손님으로 대접받던 그녀가 어부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며 일당 2만5천원으로 살고 있었다.
한동안 술에 쩔어 바닷가를 헤맸다고 한다. 죽으려고 세 번이나 입에 약을 털어넣었다고 한다.
그 모진 세월을 넘어 그녀는 살아남았다. 이젠 길 가의 빈병이 예사롭지 않고, 버린 종이상자도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수근대던 이웃들도 이젠 허물없어져 생선도 갖다주고, 야채도 나눠먹는다네.
나, 망했어요. 망해서 여기로 굴러온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아무 것도 걸릴 게 없더란다.
괜히 고상한 척, 잘난 척, 있는 척, 가면 쓸 필요 없다. 다급하면 가면 쓸 여유도 없어지겠지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