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命理學)에 일가견을 가진 분이 지우당(地旴堂)이라는 아호(雅號)를 주셨다.

예술가나 학자들만 가지는 별호(別號)를 나도 갖게 되었으니 부끄럽고 송구하다.

지우당에서 地는 자연을 상징하고 旴는 카메라와 펜을, 堂은 뿌리내림을 상징한다.

굳이 해석하자면 땅 위를 펜(카메라) 하나로 평정(平定)하는 여자라고나 할까.

내 사주에는 五行상 土와 火가 상당히 약한 상태에 있다고 한다.

능력을 갖추고도 깊은 산 속에서 한숨 쉬고 있는 선비의 형상이라고나 할까.

조정에서 불러주기만 기다리는 선비에게 작명하신 분은 火와 土를 적극 불어넣어주셨다.

장고(長考) 끝에 내 사주(四柱)의 부족한 기운을 보충해 호를 지어주신 그 분은

이름이 끼치는 심리적 작용을 말씀하셨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이름을 선택해 쓴다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라고.

 

유명한 일화로 백범 김구는 옥중에서 새로운 결심으로 자신의 이름 龜를 九로 고치고,

호를 白凡이라고 자작(自作)했다. 白丁의 白자와 凡人의 凡자를 딴것이다.

가장 미천한 사람까지 모두 애국심을 가져야겠다는 것이 자신의 소신임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한 글자로 된 이름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은데다가 성명학적으로 좋지 않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 한들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겠나 하는 생각에 밀려 번번이 개명(改名)을 포기하곤 했다.

이름은 사물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반환점을 돌아선 내 인생에 아호는 새로운 이미지가 되리라 믿는다.

아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는 당사자의 취향이나 인생관이 들어있으므로

한번 아호를 정하면 그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불교도가 자기 수양의 목표로 법명(法名)을 갖는 것과

천주교도가 성인의 이름으로 영세명을 정해 성인을 본받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어떤 성명학자는 이름을 ‘기능성 의류’에 비유했다.

비가 오는데 평상복을 입었을 경우와 기능성 등산복을 입었을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비를 안 내리게 할 수는 없지만, 기능성 등산복을 입으면 비에 덜 젖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아호가 남은 인생에 내릴지도 모르는 비를 대비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으로 아호변(雅號辯)을 쓴다.

작명해주신 분의 염원처럼 내가 펜 하나로 땅 위를 평정할 수는 없다 해도

남은 세월 큰 과실없이 인간노릇 무사히 마치고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속담에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는 말이 있듯이 동지가 지나면 새해를 맞는 것과 다름 없다.

부끄러운 일 많았던 날들 지워버리고, 새해를 맞으면서 새 뜻으로 산뜻하게 출발하고 싶다.

본명보다 닉네임이 대세인 사이버에 지우당을 새 이름으로 등록하며, 개명 이후 내 측근에 무엇을 둘지 생각한다.

 

측근이라는 말 참 정겨워

측근, 측근, 하다 보면

무슨 큰 백이나 지닌 듯 턱없이 배짱 두둑해지고

까닭 없이 측은지심 생겨나기도 한다

내 측근에는 누가, 누가 있나

나는 누구, 누구의 측근인가

사는 동안 측근만큼 든든한 게 어디 있으랴

그러나 다정(多情)도 병이 되는 양

측근이 화 부르고 독 낳기도 하니

사람아, 사람아,

꽃과 나비 나무와 새

비와 바람과 눈

그리고 하늘과 구름과 음악과 시(詩)를

평생의 측근으로 두어 살면 어떻겠는가  <이재무 ‘측근,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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