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내가 겁도 없이 개를 잘 만졌다. 동네 개는 한번씩 다 쓰다듬고 안아보고 그랬다는 거야.

한번은 개 꼬리를 잡고 흔들다가 개한테 얼굴을 물린 적도 있었어. 왼쪽 뺨에 꿰맨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지.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그때 버릇을 아직까지 고치질 못하고 기어이 일을 저질렀네.

저렇게 밝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 잊지못할 상처를 남기다니 내 불찰이 너무나 크다. 내 죄가 너무 무겁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 아무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운명이란 것이렇게 사람을 덮치는 게 아닐지.

손을 내미는 나를 녀석은 덥썩 물었고, 밀쳐내는 오른팔을 다시 물었다. 통렬한 아픔과 함께 피가 솟았다.

응급실로 후송되어 처치를 받고 돌아오면서 나 때문에 하루를 망친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상처가 깊긴 해도 동맥이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 다행이고, 오른손이 멀쩡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동안 너무 겁없이 살았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잊고 지냈다. 한쪽 손으로는 단추도 잠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부어있는 왼손 때문에 자판이 자꾸만 어긋나지만, 손가락에 이상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컴 앞에 앉았다.

 

 

 

 

 일진이 정말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수 좋은 날! 비몽사몽 잠결에도 놀라 깨면서 감사드렸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귀가길에 차 바퀴가 빠진 것도 감사한 일이다. 눈두렁으로 굴렀으면 어쩔 뻔했나!

비탈길을 내려오는 차 앞에 갑자기 어린애가 뛰어들기도 했다.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면해 모골이 송연했다.

나 때문에 여러 사람 불편하지 않기를, 나 때문에 여러 사람 걱정하지 않기를... 하루종일 빌고 또 빌었다.

"많이 아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내 귀에 속삭이던 7살짜리 천사 때문에 눈물이 났다.

 

 

 

 

 

 

 

길(路)에서 길(道)을 찾는 심정으로 길(行)을 나서보지만 막상 발걸음을 떼고 보면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다.

설령, 전부터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라 할지라도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 못한 나를 보는 것 자체로

상대가 심적 부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마도 나를 위시한 많은 환우들의 공통된 처지이리라.

그래서 자연 무심한 산이나 바다를 찾기 마련이다.<無無님의 '산처럼 물처럼' 중에서>

왜 자꾸 산에 가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윗글이 대답이 될수 있으려나. 나도 가끔, 어쩌면 자주 그런 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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