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만한 오르막을 두 할머니가 걷고 있다.
앞선 할머니가 등이 더 굽었는데 걸음걸이는 더 빠르다.
낡은 가방을 들고 뒷짐을 진 채 종종걸음을 치는데 생각만큼 걸음이 안 나가는 모양이다.
“형님, 거기 서봐요! 내 말 들어보라니까! 자꾸 가지 말고, 응?”
뒤따르던 할머니가 힘겹게 허리를 펴며 소리를 지른다. 입에서 허연 김이 풀풀 난다.
앞장선 할머니는 한참 더 가다가 못이기는 척 멈췄다.
화가 나서 빨리 도망가고 싶은데 당신 몸은 따라주질 않고, 무엇보다 뒤따라오는 할머니가 마음 쓰였던 게다.
“걷기 힘든데 자꾸 가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내 말은.....”
뒤의 할머니는 앞의 할머니를 붙잡고 차근차근 말을 풀어놓는다.
좀 전에 노인회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앞의 할머니가 그 일로 삐친 모양이다.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는 굽어, 그만하면 세상만사에 너그러울 것 같은데 앞의 할머니는 도저히 분을 삭일 수 없는 모양이다.
삿대질까지 해가며 누군가를 성토하는데 뒤의 할머니가 달래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다. 형님, 내 얼굴 보고 참아요 참아요 한다.
허리 더 굽은 형님을 허리 덜 굽은 아우가 달래는 걸 보니 역시 마음 그릇은 나이에 비례하는 게 아닌가보다.
나이 들면 애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이 들수록 포용력이 넓어지긴 커녕 사소한 일에 서운해 하는 섭섭병이 생긴다고도 한다.
나이 많다고 넉넉한 것도 아니고 나이 적다고 옹졸한 것도 아니다.
나이가 면죄부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나이가 십자가가 되어서도 안 될 듯하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나 나이에 책임을 전가할 때가 많다.
나이 먹어가지고 왜 그래? 나잇값 좀 하지, 나이 들면서 창피하지도 않아?
무심코 내던진 말에 자승자박(自繩自縛) 당하는 날이 올 수 있다.
나이 들면 더 옹졸해지고 비겁해지고 무엇보다 자기중심적이 된다는 걸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나 자신은 안 그럴 것 같아도 그건 더 늙어봐야 알 일이다.
누군가 그랬다지 않은가.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