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꽃이 돌아갈 때도 못 깨닫고 / 꽃이 돌아올 때도 못 깨닫고 / 본지풍광 그 얼굴 더듬어도 못보고
속절없이 비내리고 바람부는 / 무명의 한 세월 / 사람의 마을에 비가 내린다. <도종환 '낙화'>
끝물 철쭉을 보려고 이른 새벽 배내봉에 올랐다.
어스름 달빛에 서서히 드러나는 먼 산의 실루엣, 멀리서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
아뿔싸! 나홀로 등산객의 귀한 단잠을 깨우고 말았다.
영남알프스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배내봉.
정상에 서면 건너편으로 고헌산, 왼쪽으로 가지산 주능선이 하늘금을 이루고
뒤돌아보면 재약산 사자봉, 신불산 공룡능선과 영축산 마루금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한 줄기 바람이 꽃을 흔들듯 누군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길 바라던 때도 있었다.
고요한 풍경도 아름답지만, 바람이 흔들고 간 풍경은 좀 더 다채롭지 않은가. 때로는 상처도 꽃이 되니까.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연분홍 산철쭉이 한창이다.
내일 모레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꽃 지기 전에 가봐야겠다고 별렀던 터.
새벽 두시에 집을 나와 구절양장 산길을 넘어 배내재에 닿았다.
알싸한 수풀 향기, 새벽 이슬 내리는 소리, 열엿세 달은 달무리를 거느린채 서산으로 기울고.
팥배나무 한 그루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있다.
내 진정 혼신의 노력을 다해 꽃피운 적 있는가,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한적 있는가.
일행을 먼저 보내고 혼자 언양성당에 들렀다. 11시 울산역에 도착하는 아들을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
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언양성당은 울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없었지만, 소박하고 절제된 실내는 외경심을 불러 일으켰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문득 기도가 솟아나올 듯한...
5월은 성모의 성월이라 신자들이 머리에 화관을 씌워드렸나보다.
성모성월은 성모 마리아께 특별한 신심을 드리기 위해 봉헌한 달로서,
세계 도처의 신자들이 하늘의 여왕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달이다.
성당 뒤쪽으로 산을 올라 만난 성모굴, 신비롭고 아름다운 정경에 가쁜 숨을 고르며 셔터를 눌렀다.
아들아, 고맙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성스러운 공간을 배알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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