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해무의 습격을 받았다.
바다에서 꾸역꾸역 몰려온 해무가 조선소 야드를 삼키고, 대왕암을 삼키고, 동네를 삼켜버렸다.
모처럼 바다수영을 하러 갈까 하다가 접었다. 해무가 짙은 날은 바닷물이 차가우니까.
내내 골치 썩이던 일을 해결하고 나니 주위가 갑자기 조용하다. 모두들 휴가 떠난 모양.
나: 바다에 갈까? 남편: 요즘 해파리가 많다는데.
나: 여행 가자. 집에 있기 싫어. 남편: 윗 지방에 비 많이 온대. 우리 동네가 피서지잖아~
저물녘 해안길 따라 걷다가 슬도에 닻을 내렸다.
짙은 해무 속에 하나 둘 피어오른 가로등이 우주정거장 불빛처럼 신비롭다.
방파제의 낚시꾼들을 찍다가, 가물가물 사라지는 등대를 찍다가, 매직아워의 하늘을 찍다가...
갑자기 후두둑 쏟아지는 빗줄기에 깜짝놀라 카메라를 껴안았다. 파죽지세로 퍼붓는 비를 그대로 다 맞았다.
주차장까지 이백미터 남짓,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온몸은 비에 흠뻑 젖어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낭만의 대가는 혹독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보기는 사춘기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