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그 여자를 만났다. 파도에 밀려온 미역을 줍고 있는 여자를.

햇살도 없는데 창모자를 깊이 눌러쓴 것이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기 싫었던 걸까.

 

 

 

 

가파른 벼랑을 내려와 미역을 주운 여자는 오늘의 수확을 머리에 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생미역을 마당에 부려놓고 그녀는 아침밥을 지을 것이다.

 

 

 

 

여성의 노동력이 없다면 오늘날의 농어촌은 존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해도 해도 끝없는 가사노동은 기본, 대부분이 남자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한다.

모질고 독한 것이 여자다. 아니, 어머니다.

 

 

 

 

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가 열무 맛처럼 담박했다. 잘 익은 호박 빛깔을 내었고 벼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 인사 같았고 떡집 아주머니의 손길 같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편안한 나의 사투리에도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인터넷 검색이 필요없었다

월말 이자에 쫒기지 않았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를 태운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 할머니의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고 우체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여유롭게 햇살을 받았다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고 신문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맹문재 '추석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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