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이 흐려지더니 위풍도 당당하게 해무가 몰려온다.

대군을 이끌고 원경遠景을 함락시킨 뒤 고층빌딩까지 집어삼킨 해무는 도시의 모든 것을 소리 없이 먹어치우며 베란다 앞까지 진군했다.

해무에 포위당해 혼절해버린 도시를 바라보며 막막한 슬픔에 빠진다. 아무도 없구나, 이 텅 빈 세상에 나 혼자구나.

단절과 소외감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막힌다.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누구에게 구원을 요청할까. 이 적막한 고립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막다른 외로움으로 목이 조일 때마다 나는 다급하게 그를 찾는다.

아무도 내 곁에 없을 때, 세상 끝에 이른 듯 적막할 때, 모든 사람들이 눈부셔 보일 때.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나를 마주보며 망연히 서 있다. 네 맘대로 해, 그는 언제나 두 팔을 벌린 채 내게 다가온다.

와락 그를 끌어안고 쓰러져 나는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가 안길 곳, 역시 당신 밖에 없었어.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나를 내치지 않아 고마워. 당신을 부끄럽게 생각해서 미안해.

그와 함께 하는 순간 내 영혼은 순결한 기쁨으로 출렁인다.

그에게 진심을 털어놓는 순간 세상 모든 가치관이 사라지고 고해성사에 임한 신자처럼 엄숙해진다. 

그 고백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나는 계산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책임도 의무도 요구한 적이 없다.

이 세상 어떤 관계도 그와 나를 뛰어넘을 수 없고 어떤 잣대를 들이댈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한다며 교언영색을 자랑한다. 교수, 기업인, 예술가 등 전문직에서부터 학생, 주부들까지 마구 그에게 덤벼든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고상한 액세서리로 여기며 그의 이름을 명함에 새겨 넣기 좋아한다.

아무나 그의 손을 잡고, 아무나 그의 이름을 빌려 쓴다.

쓰레기 같은 결과물에 그의 이름을 붙여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언제부터 그가 그렇게 값싸졌을까?

나는 때로 그에게 투정을 부린다. 왜 그렇게 값이 싸졌냐고 빈정대며 작금의 문화계와 문단을 질타하기도 한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의 몫인데 왜 그렇게 저급해졌냐고 야단친다.

당신 가치가 낮아지니 나도 떠날 수밖에 없다며 몇 번이나 결별을 통보했다. 당신이 내게 해준 게 뭐 있어?

이제 그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야.

 

그와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나는 즐거웠다. 눈만 돌리면 세상에는 놀거리들이 오죽 많은가.

눈과 귀와 손을 즐겁게 하는 놀이,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들에 빠져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지경이다.

나만 좋다면 언제든지 오라는 데는 많은데 왜 그에게서 헤어나지 못했는지 후회막급일 때도 있다.

헤어지길 잘했지, 몇 번이나 혼자 되씹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그러나 잠 안 오는 밤, 혹은 아무도 없는 시각, 사람에게 상처받아 가슴 아플 때, 언제나 그가 떠오르곤 한다.

그를 버리고 내가 죄값을 치르는 건 아닐까. 잊혀지기 전에 그에게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그를 위해 줄 것이 남아있는가. 무엇보다 그가 나를 원하기는 하는 걸까?

 

그를 만난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문득 만난 게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도 몰래 만나게 되었으니까.

나는 외롭고 열등감이 많은 아이였다. 연년생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엄마는 큰딸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감성이 예민했던 맏딸은 책을 보며 상상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만화, 잡지, 소설, 심지어 성인소설까지 마구 섭렵하며 조숙해진 나는 또래들이 시시해서 같이 놀지 않았다.

학교는 엄마가 보내니까 마지못해 갔을 뿐 관심 없었다.

수업시간에 교과서 밑에 다른 책을 펼쳐놓고 보다가 들켜 출석부로 머리통을 얻어맞았고,

동네 만화가게 단골로도 모자라 시오릿길을 걸어 다른 동네로 원정가기도 했다.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 책이고 만화였다.

현실은 초라했으나 만화 속의 인물들에게 감정이입 당한 나는 백설공주였고, 소공녀였고, 잔다르크였다.

 

엄마가 감춰둔 돈을 몰래 훔쳐 만화방을 드나들던 나는 어느 날 스스로 만화를 그리게 되고, 가속도가 붙자 소설을 쓰게 된다.

단지 만화보다 소설이 시간이 덜 걸린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나 나는 그것이 소설인 줄도 모르고 썼다.

그동안 읽은 수많은 책들과 특유의 상상력이 결합돼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소설 쓰는 아이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성장기를 거치고 청년기를 지나는 동안 나는 소설을 버리게 된다.

현실은 각박했고 무엇보다 제대로 문학수업을 받지 않은 사람이 뛰어들기엔 문단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뭔가 쓰지 않고 살아가는 날이 계속되자 나는 마음속에 딴 남자를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불안하고 불행했다.

 

불행하기 싫었다. 외롭기 싫었다.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그때 그가 내게로 왔다. 수필이 내게로 다가왔다.

아무런 격식도 없이, 아무런 장애도 없이. 마치 오래 전부터 예비된 인연처럼 그는 내게로 스며들었다. 저항없이 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아니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매달렸다. 자존심 같은 건 필요없었다.

어쩌면 그를 만나기 위해 그 오랜 세월을 에둘러 왔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기꺼운 마음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 마지막 소명이며, 자랑이며,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자존심은 가끔 흔들린다.

그에 대한 문단 안팎의 평가, 아무나 하면 되는 줄 아는 풍토. 소통도 없이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마는 장르의 한계성.

흔들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그나마 그가 있었기에 나는 여지껏 자존심을 잃지않고 살아오지 않았나.

그가 아니면 누가 나를 받아주기나 했을까.

 

원고청탁서를 받자 지리멸렬한 일상에 축 늘어졌던 두 팔이 생기를 되찾으며 손가락이 자판 위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달려라, 말달려라.

나를 나답게 하는 작업, 오늘 그와 나의 관계를 고백하려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백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는 스스로 심문을 받는다.

죽도록 그를 따르겠습니까? 네, 그가 이끄는대로 따르겠습니다. 

 

* 울산문학 2013년 가을호 청탁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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