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분이 제5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10월2일 시상식에서 찍은 필자의 사진과 대상 작품을 올립니다.

 

 

 

<제 5회 천강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

 

거미

 

                     박 동 조

 

 

스산한 가을바람이 종일 불었다. 오전 내내 거미 한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줄을 엮기에 근사한 그물을 짜는 줄 알았다.

숲속 나무 사이에 높이 걸려있던 은빛 바퀴모양 거미줄을 기대했으나 거미줄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얼기설기 엮어놓아 하루살이 한 마리도 걸릴 것 같지 않다. 거미는 지쳤다는 듯 꼼짝하지 않는다.

몰아치는 바람에 거미줄이 끊어질 듯 낭창거려도 여전히 미동이 없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자도 기척이 없다. 순간 내심장이 멎는 듯하다. 얼른 다가가 귀를 대어본다.

하루살이가 날갯짓하는 소리만한 숨소리가 가랑가랑 들린다.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을 쓸어내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건 간병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걸대에 걸린 혈액 봉지에서 남자의 몸속으로 방울방울 피가 흘러들고 있다.

남의 피를 수혈 받지 않으면 목숨을 잇지 못하는 저 남자도 한때는 근사한 은빛 저택을 갖고 싶어 했다.

부자가 되어 아내와 자식을 호강시켜 주리라는 꿈을 꾸었다.

병상에 누워 남의 피로 연명을 하는 시간이 오리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숲속에서 보았던 은빛 거미줄은 얼마나 근사했던가. 드높이 드리운 거미줄에는 거미보다 더 큰 나방 두 마리가 걸려 대롱거렸다.

밤새 송알송알 맺힌 이슬이 나뭇잎 사이로 비껴든 이른 햇살에 보석인양 반짝였다.

보석으로 둘러싸인 저택의 가운데에서 여덟 개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먹이를 노리던 거미는 제왕처럼 당당했다.

시 그르고 때늦어, 다른 거미들은 땅속으로 나무틈새로 몸을 숨기는 계절에

궁색한 거미줄 몇 가닥 엮어놓고 도르르 몸을 말고 있는 창밖의 거미가 가년스럽다.

딴에는 있는 힘을 기울여 한 공사였으리라 생각하니 가슴 속에서 찌르르 연민이 솟는다.

 

남자에게는 세상이 내 손안에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패기와 자신감으로 무서운 게 없었다.

사업체를 꾸리고부터 꿈은 이루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잡으려 다가가면 멀어지는 무지개처럼 꿈은 번번이 저만큼 달아났다.

그럴수록 마음은 바쁘고 몸은 분주했다. 빨리 꿈을 이루려고 달음박질쳤건만 매번 엇길로 들어서 막다른 골목과 부딪쳤다.

인생길에서 엇길은 한 번 들어서면 되돌아 나오기가 쉽지 않은 미로다. 한 걸음을 내딛었다가 두 걸음을 물러서기가 예사였다.

남자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고서야 세상은 해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때는 이미 청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젊음이 사라지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도 남자에게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가족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려는 마음은 도무지 땅으로 내려놓지 못했다. 그게 ‘조리전 주인 마음’인 것이 문제였다.

조리전은 장사가 되지 않는 점포를 일컫는 말이다. 현대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게다. 그러니 마음에서 불이 나고 피가 바짝바짝 말라갔다.

그에게 세상이란, 나방과 곤충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숲이 아니었다. 단단한 아스팔트길과 콘크리트 건물로 우거진 정글이었다.

 

거미가 깨어나면 못다 지은 집을 마저 지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완성을 한다손 치더라도 근사한 집이 되기는 애초에 글렀다.

도시의 건물 모서리에 터를 잡은 것부터가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잠깐의 햇볕조차 들지 않는 북쪽 벽이 아닌가.

바야흐로 가을의 끝자락이다. 길 건너에 마주보이는 옹벽의 담쟁이는 갈색이 짙어졌다. 한두 이파리는 하마 지고 있다.

방송의 일기예보는 내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했다. 지상의 곤충들은 오늘 밤쯤 땅속으로 깊이 몸을 숨길 것이다.

거미줄에 닿은 소슬한 바람의 파동으로 추위가 다가오리라는 걸 알아챈 숲속의 거미도 은빛 저택을 비웠으리라.

콘크리트 건물의 칠 층 모서리에 주소지를 정한 저 거미는 어디로 몸을 숨길까.

 

남자가 잠에서 깼다. 거미에서 눈을 돌린 나는 얼른 다가가 손을 잡고 손등을 쓰다듬는다. 무척이나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다.

한때는 이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사랑을 했고, 한때는 이 사람만 없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도한 열정, 과도한 보호가 힘에 부쳐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남자와 나를 이어주는 자식이란 줄이 나를 당겼다.

나는 한 발짝도 줄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는 이 사람이 없으면 정글 같은 세상과 맞설 자신이 없다.

이승과 저승의 기로에서 지금 그는 어디로 가는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일까.

 

수혈이 끝났다. 호스에 남은 한 방울의 피까지 몸속으로 흘려보낸 뒤 공기가 들지 않도록 호스를 잠근다. 남자의 눈에 희미하게 생기가 돈다.

누군가의 헌혈이 그를 이승으로 데려온 것이다. 남자에게 거미의 얘기를 들려준다.

날씨가 춥다며 거미를 걱정하는 나를 그는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남자의 마음에 이는 파문을 짐작하고 있다.

한낱 미물을 두고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이 생뚱맞은 것이다. 거미를 남자와 동의어로 바라보는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기웃 내다본다. 두어 시간이 지났으니 어디로든 거미가 피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밖을 기웃거리던 나는 그 자리서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이 벌어졌다.

좁쌀보다 더 작은 거미들이 오글오글 붙어서 거미의 몸을 파먹고 있다.

거미는 제 몸을 가족의 먹이로 내 걸기 위하여 그리도 부지런히 줄을 게워냈던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먹이가 떨어지면 자신의 몸을 새끼에게 내어주는 거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온몸으로 진저리를 쳐도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나는 몸을 돌려 남자에게 다가가 가랑거리는 가슴에다 얼굴을 묻는다. 

 

 

 

 

시상식을 기다리며 의령 한우산에서.

 

 

 

 

 

 

 

 

 

 

 

 

오백살짜리 모과나무가 서 있는 의령 충익사. 홍의장군 곽재우와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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