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근심이다. 라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달을 자주 보면 근심이 생기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달을 자주 보지 않았다. 힐끗, 잠시 쳐다보고 못 본 척한 날도 많았다.
늦은 밤 어머니 등에 업혀 외가에서 돌아오던 어린 날, 휘영청 뜬 보름달을 못 보게 어머니는 내 머리 위에 스웨터를 덮어주셨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알았다. 어머니는 그때 아마 울고 계셨을 것이다.
당신이 우는 걸 어린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옷을 덮어주었을 것이다.
걷기 싫어 앙탈을 부리는 철부지 딸을 등에 업고 어머니는 심신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학대에 가까운 시집살이와 지아비의 방황 때문에 죽으려고 금계랍을 세 번이나 털어 먹었다는 어머니는
눈물과 한숨 속에 살아온 당신의 일생을 생각하며 달을 근심으로 해석하셨는지도 모른다.
근심 걱정이 많아 달을 보고 울었으면서도, 근심이 많아서 달을 본다고 하지 않고 달을 보면 근심이 생긴다는 엉터리 주술(呪術)을 만들다니.
죄없는 달에게 자신의 근심을 덧씌운 어머니의 뜻도 모르고 달을 슬픔으로 받아들인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나.
한평생 근심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까짓 근심이 두려워 달을 보지 않다니.
일신의 안락을 바랬던 자신이 뼛속 깊은 속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달픈 삶을 살아내며 낮에는 울 틈도 없이 바빴을 어머니는 식구들 모두 잠든 밤에야 밖으로 나와 달을 보았을 것이다.
달님, 달님, 저 좀 살려주세요. 도저히 이 집에선 못 살 것 같은데 어쩌면 좋습니까.
천리 만리 도망가고 싶어도 어린 것들이 넷이나 딸려 아무 데도 못 갑니다. 달님 달님, 저 좀 살려주세요!
그 시절 어머니에게 유일한 대화 상대는 달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달 보며 한숨 짓고 눈물 흘리던 어머니는 어느날
스스로가 처량한 생각이 들어 달을 보면 근심이 많아진다고 비겁한 핑계를 만들어내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평생 달을 쳐다보고 사셨던 것 같다. 고단한 살림을 내려놓은 노후에도
예불을 위해 새벽달을 보며 사찰을 찾으셨으니, 스스로의 주문처럼 어머니는 평생 근심을 떠나 살 수 없으셨나 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질 무렵 어머니는 외가에서 제일 영리한 외삼촌에게 사업 자금을 끌어다 주었다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당시 외삼촌은 근동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나 있었고 정치인들과 교류할 정도로 인맥이 좋았다.
아버지에게 아무런 비전을 느끼지 못한 어머니가 외삼촌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만만하던 외삼촌의 사업이 망하자 빚쟁이들이 집으로 몰려오고 외삼촌은 서울로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모든 걸 끌어안은 어머니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평생을 돈에 쪼들리며 살았다.
외삼촌의 빚을 대신 갚아주며 당신은 쌀밥 한번 편하게 먹지 못했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외삼촌 집을 찾았는데 차마 대문에 들어설 수가 없더라고 했다.
판자촌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데, 지붕이 곧 내려앉을 듯 초라한 집이더란다.
동기간에 돈 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더라고,
그러니 너희들도 절대 형제간에 돈 거래는 하지 말고 보증도 서지 말아야 한다고 어머니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돈 받으러 갔다가 집에 올 차비까지 외삼촌에게 보태주고 온 어머니는 이후 현실에서 완전히 손을 놓았다.
성실하게 열심히 산다고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후 삶의 애착을 버렸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어머니는 패배주의자가 된 것이다. 당신이 하면 뭐든지 실패하고 만다는 생각에 모든 의욕을 잃은 듯했다.
어머니는 더 이상 달을 보지 않았다. 달은 근심이라는 스스로의 주문에 걸려들어 일생을 망친 것처럼 달을 애써 외면했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따위의 세시풍속은 우리집에선 통하지 않았다.
계수나무도 토끼도 사라진 지 오래고, 늑대가 사람으로 변하는 환타지도 믿지 않았다.
달은 오래전 아폴로12호가 접수했으며 지구로부터 약 4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떠 있는 하나의 위성일 뿐이었다.
달은 낭만도 주술도 통하지 않는 엄연한 실존이었다.
어머니의 패배의식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나는 매사에 낙관적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을 봐왔기 때문에 비관이 강했는지도 모른다. 결혼이 두려워 서른 살이 되도록 남자를 정하지 못했고,
다음 세대까지 불행을 물려주기 싫어 아이를 낳기도 싫었다.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도 아닌데 구태여 자식을 낳아 포화상태의 지구에 인구를 보탤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짙었다. 실패가 두려워 덤비지 못했고, 덤벼들기도 전에 포기할 때도 많았다.
잘 되던 일도 내가 나서면 그르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심지어 주식이나 아파트도 내가 사면 값이 내리고, 내가 팔면 값이 올랐다.
언제나 자신이 가장 잘나고, 옳고,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못해 눈이 부셨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믿는 만큼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만만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이 어딜 가나 주도적인 행세를 하는 세상이었다.
자기비하보다 자아발전이 세상살이에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걸 깨달았다. 비관과 패배주의는 루저를 만들어낼 뿐이었다.
성격이 습성을 만들고 나아가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운명이란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성의 결과이니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타고난 기운 즉,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아, 그런데 그 오랜 습성과 고착된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가 말이다.
언젠가 터키를 여행하던 중 가파도키아에서 본 슈퍼문이 생각난다.
이른 새벽 열기구를 타기 위해 사륜구동차를 타고 산길을 넘어가는데, 마지막 언덕바지에서 커다랗게 떠오르는 달을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밝고 환한 달, 슈퍼문이었다. 한 순간 전율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찾았다.
급히 배낭을 열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차는 언덕을 넘어서고 있었다.
스톱, 스톱, 슈퍼문!!!
외치는 순간 차는 내리막길로 달음질쳤다.
새벽 그 시간을 놓치면 열기구를 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뜨기 전 대기가 차가울 때 열기구를 띄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달을 놓친 게 나는 두고두고 억울했다. 열기구를 못 타더라도 그때 그 달을 찍었어야 하는 건데.
행운이라는 건 그렇게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걸 알았는데도 말이다.
이제 달은 내게 더 이상 근심도 걱정도 아닌 하나의 피사체에 불과하다.
저 피사체에 어떤 메시지를 입히면 어울릴까, 팔월 한가위 달을 보며 나는 아름다운 은유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