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줄근한 도심 뒷골목에서 그를 만났다.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에 변변한 간판도 없는 그의 일터는 눈 밝은 사람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낡은 담벼락에 ‘로렉스 수리’라는 글자만 없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갈 뻔했다.

후미진 골목 안쪽에 동굴처럼 들어앉은 그의 일터는 때가 잔뜩 낀 반투명 유리문 안쪽에 두 평도 안 되는 공간을 갖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실내에 양쪽으로 잡동사니가 쌓여있어 사람 들어설 자리조차 옹색했다.

“사라져가는 직업을 사진에 담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허락해주시면 시계 수리하는 모습을 찍고 싶은데요. ”

문을 열고 그의 의향을 묻는데 담배 냄새가 훅 끼친다.

수년, 아니 수십 년 담배연기에 절어있는 곳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

촉수 낮은 백열등 아래 니코틴 냄새 가득한 곳에서 오늘 나는 그를 찍어야 한다.

삼십 년 넘게 시계 수리를 해 온 그의 삶을 담아야 한다.

 

고치던 게 있었는지 그는 말없이 내게 앉으라는 시늉만 하곤 머리에 쓴 특수현미경으로 시계 부속을 들여다본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실내에는 낮은 촉수의 전등만 희미하게 들어와 있고 작업대에는 눈부신 조명을 밝혀놓았다.

극명한 불빛에 드러난 시계와 그의 손을 보는 순간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왼쪽 다섯 개 손톱이 성한 게 하나도 없었다.

심한 무좀을 앓은 사람의 그것처럼 손톱이 절반쯤 패이고 기형적으로 변한 모습.

“수 십 년 동안 독한 화공약품을 만졌더니 손이 다 망가졌어요. 강력 본드가 손톱을 죽였죠.”

시계 부속들이 워낙 정밀해서 장갑을 끼고 만지면 감각이 떨어진다.

핀셋을 잡은 오른쪽 손은 그나마 온전한 편인데 화공약품을 자주 만지는 왼쪽 손은 험상궂기 짝이 없다.

 

카메라의 앵글을 그의 손에 맞추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타 들어간 손톱과 주름진 손이 파인더에 가득찼다. 흉하고 못생긴 손이었지만 거룩해 보이는 손이었다.

저 손을 거쳐간 수많은 시계들은 세상의 시간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아나로그에 밀려 서랍에 처박혀 있을까.

실내에는 희귀한 모양의 탁상시계와 벽시계, 손목시계 부품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다.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지만 아직도 아나로그 시계를 쓰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그의 말로는 오래된 괘종시계나 부모의 유품으로 받은 시계를 수리해 가는 사람도 더러 있고,

하루에 몇 초씩 늦는 시계를 꼭 고쳐달라며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물자가 흔한 시대라 집집마다 서랍 속에 시계가 몇 개씩 굴러다니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엔 시계가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입학 졸업 생일 등 축하선물로 손목시계가 최고였고, 학생 잡지의 현상공모엔 탁상시계가 빠지지 않았다.

내가 처음 가져본 시계는 월남 갔다 돌아온 외삼촌이 선물했던 세이코시계로 하얀 스텐레스 시곗줄이 유난히 반짝이던 기억이 난다.

때 탈까봐 자주 만지는 것조차 아까워하던 그 시계는 열세살짜리 소녀에게 과분한 사유재산이었다.

연년생 동생들이 나를 가장 부러워했던 순간도 아마 세이코시계를 가졌던 그때였을 것이다.

 

사진을 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매료 이상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천착을 느낀다.

낡아가는 것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애착으로 사양길을 걷고있는 소재를 찾아헤매곤 한다.

산동네 빈민촌, 단청이 벗겨진 암자, 오래된 우물, 수백년 생 고목, 백살을 넘긴 사람...

그러다 사양사업이나 관련 종사자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시계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는 고급 예물시계나 외제 시계 수리 전문이라는 명함으로 도심의 뒷골목을 지키고 있다.

한때는 번화가에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디지털에 밀려 사양의 길을 걷게 되었으리라.

 

좁은 공간이라 원하는 앵글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거룩한 그의 손을 담은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해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수리에 집중하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자리에 앉아 실내를 찬찬히 둘러본다.

시계수리용 공구가 즐비하게 걸린 벽, 명품시계 부속들, 그가 가장 아낀다는 독일제 아론선반... 그 끝에 컴퓨터 모니터가 켜져 있다.

처음 들어설 때 보지 못한 이유는 실내에 가득찬 담배 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활자라면 본능적으로 읽어내려가는 내 눈에 모니터의 글이 다가왔다. 무심코 읽어 내려가다 나도 몰래 시선을 돌렸다.

진부한 연애소설에 야설을 가미한 듯한 인터넷 게시물.

일 없는 시간에 저 고독한 남자는 오소리굴 같은 일터에서 혼자 컴퓨터와 놀고 있었나 보다.

 

삼십 년 넘도록 시계만 들여다보고 살았던 그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노는 것도 시계가 있는 이 공간에서 해결하고 있나 보다.

시계수리와 연관된 일 외에는 별다른 사회적 관계도 없어 보인다. 그만의 둥지에서 그만의 방법으로 살고 있는 고독한 영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류를 따라 변해 가는데도, 자신의 영역이 점점 줄어드는 걸 알면서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고,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자리. 그 자리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시계명장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왠지 편안했다.

세상 흐름에 뒤쳐졌다는 생각에 조금씩 불안했던 자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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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 꼭지 올려놓고 저는 잠시 여행 떠납니다.

다시 돌아와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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