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 테헤란로, 폰카)

 

 

 

저기 보인다. 아들이 갇혀있는 회사 건물이.

테헤란로 양쪽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 숲으로 걸어 들어간 지 일 년 반,

그 사이에 아들과의 면회는 딱 세 번. 명절을 제외하고는 아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잘난 아들은 회사의 아들이라더니, 얼마나 잘나서 일 년에 얼굴 몇 번 보기가 어렵나.

오늘은 내 기어이 너를 탈옥시키리라.

모처럼 볼 일이 생겨 서울행 기차를 탄 에미는 염불보다 잿밥에 정신이 팔려 하루 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드넓은 초원을 뛰놀던 망아지였던 아들이 사회라는 코뚜레에 꿰어 샐러리맨이 된 지 일 년 반.

두고 온 초원이 그립지도 않은지 녀석은 한 번도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코뚜레가 불편해 몇 번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순응하고 받아들였다.

그래, 너는 언제나 평화주의자였지.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고, 현실 적응이 빨랐지.

초긍정 마인드로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는 낙관주의자.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은 네 생각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지.

저 빼곡한 빌딩 숲에 갇혀서 아직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았을까?

 

강남 한복판 넓고 번화한 도로를 빼곡하게 메운 차량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탄 듯하다.

스스로 움직인다기보다 어떤 기계장치에 의해 이동되는 듯한 느낌.

차가 달리는 게 아니라 흐르는 듯한, 사람이 걷는 게 아니라 떠다니는 듯한. 감정이나 감각은 배제되고 무표정하게 떠내려가는 느낌이랄까.

아니. 이건 내 편견일지도 모른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도시를 ‘시골’이라고 말하는 서울 사람들에 대한 질시,

서울에 산다는 것만으로 근거 없는 선민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폄하일지도 모른다.

깍듯하게 예의바르고 셈 빠른 도시 사람에 비해 느리고 뒤처진 자신을 미화하고픈 심리일 수도 있겠다.

 

아들의 퇴근을 기다리며 역삼역 지하철 출구만 쳐다본다. 간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죄수와 만나는 면회인처럼 애타게 목이 마르다.

정해진 시간 동안 무슨 얘길 해야 하나. 견딜만하니? 힘들면 엄마가 도와줄까?

탈옥을 도울 수 있는 무기도 없으면서 에미는 대책 없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아들을 초원으로 다시 돌려보내기엔 너무 늦어버렸는지도 모르는데.

 

“엄마!”

와락 나를 끌어안는 아들을 바라본다.

눈부시게 흰 와이셔츠와 딱 붙는 바지, 반질반질 윤나는 구두. 불현듯 녀석의 발을 씻겨주고 싶다.

하루 종일 딱딱한 구두 속에서 숨도 못 쉬고 구겨져있었을 열 개의 발가락을 풀밭 위에 뛰놀게 해주고 싶다.

발이 편하면 온몸이 편한 법, 족쇄같은 구두를 신고 너는 도심의 감옥을 살아내고 있었구나.

지평선을 바라보는 말의 눈동자처럼 먼 곳을 응시하던 눈에 빌딩 유리창을 담고, 아들은 명랑하게 일상을 이야기한다.

엄마, 우리 부서에서 월드컵 축구 내기를 했는데 내가 독일팀에 돈을 걸어서 이겼거든.

80만원을 땄는데 나보고 회식 쏘래. 그것도 소고기 회식으로 말야.

엄마, 바로셀로나 해변이 참 아름답대. 그래서 이번 휴가 때 스페인 가기로 했어. 집에는 추석 때 갈게.

 

그럼 그럼. 그래야지. 바로셀로나 해변에서 수상 스포츠도 즐기고 아름다운 아가씨들도 만나야지.

일 년에 한 번뿐인 휴가인데 집에서 보내긴 아깝지. 엄마 아빠랑 무슨 재미로 여행을 다니고 살가운 대화를 나누겠니.

생각해보니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너와 여행을 같이 다닌 기억이 없네.

새벽에 나가 한밤에 돌아오던 학창시절, 어쩌다 틈나면 잠이나 실컷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지.

어릴 땐 그리도 많이, 멀리 데리고 다녔는데. 평균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여행보다 공부가 우선이었던가 보다.

 

아들은 문득 지금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데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일, 일, 일에 묻혀 사는 상사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인생을 살다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아들에게

나는 ‘최후의 판단은 네가 하고, 책임도 네가 지는 거야’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아빠도 그렇게 살아왔어. 1년만 하고 그만둬야지, 3년만 버텨야지 그러다가 삼십 년이 가버린 거야, 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전철이 한강을 지나 서울역에 닿았다. 아들이 언제 퇴근할지 몰라 밤 11시 차표를 끊었는데 저녁 먹고 나니 시간이 남는다.

더위를 피해 카페로 들어가 시간을 죽인다. 팥빙수를 앞에 놓고 모자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반 년 만에 만나 저녁 한 끼 먹고 나니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니.

자주 보고 근황을 알아야 나눌 얘기도 많을 텐데, 서로의 관심과 눈높이가 달라졌다는 걸 문득 느낀다.

심야의 KTX에 나를 태워주고 아들은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선다.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이기 싫은 게다.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 게다. 넌 언제나 그랬지.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싫어도 미워도 말을 하지 않았어.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늘 맑고 밝았지. 정말 힘들었을 때가 딱 두 번쯤 있었다고 오늘 저녁에야 비로소 털어놓았던 녀석.

 

내려오는 차 속에서 아들에게 '술 많이 먹지 말고, 아침 굶지 말고, 빨래는 이리 저리 하고....' 카톡을 보냈다.

아들이 금방 답장을 보내왔다.

“ㅇㅋㄷㅋ”

오케이 댕규.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다. 초성만으로 소통이 충분한 아들을 내가 무슨 수로 따라잡으리.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성공했지만 내 아들 구하기는 수포로 돌아갔다.

발에 꽉 끼는 구두를 신고 살벌한 도심의 정글을 살아가는 녀석을 어떻게 구해내리.

천신만고 구출한다 한들 녀석은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행복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들에겐 아들의 삶이 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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