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그 남자가 교실에 나타났다.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데 엉겁결에 손가락 끝만 잡고 말았다.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곁을 지나쳐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남자는 또 다른 학우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놀란 듯 그의 손을 맞잡는 모습이다.

아니, 저 남자가 보름 전에 아내를 잃은 사람 맞나? 의아한 눈빛으로 서로들 묻고 있었다.

아내의 초상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문화교실에 나온 것도 이외거니와, 평소 모습 그대로 담담한 얼굴이라는 게 다소 배신감이 느껴졌다.

남자들은 마누라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더니,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40년 가까이 함께 살던 아내가 갑자기 떠났는데 어떻게 그 충격에서 금방 헤어날 수가 있었을까.

혹시 저들 부부도 흔히 말하는 ‘쇼윈도우 부부’였을까. 설사 그랬더라도 그렇지, 어떻게 한 달도 안 돼서 문화교실에 나왔을까.

아무리 정이 없었어도 기본적인 애도기간을 거쳐야 하는 거 아닌가.

 

미묘한 심경으로 앉아있는데 수업이 시작되기 전 그 남자가 교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내의 빈소를 찾아준 학우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그간의 사정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그날도 헬스클럽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여보, 배고파. 밥 줘. 씩씩하게 소리치며 아내를 불렀더니 그녀는 침대 위에 오두마니 앉아 힘 없는 소리로 대꾸했다.

여보, 이상해요. 나,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는 아내를 안아 소파로 옮겼는데 문득 그녀의 아랫도리가 젖은 걸 발견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내를 다시 살피니 그녀는 소파에 픽 쓰러져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119를 부르고 심폐소생술을 써봤으나 아내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약 한 첩 먹어보지도 못하고, 주사 한 방 맞아보지도 못하고 단 몇 분 사이에 아내는 이승을 떠나버린 것이다.

지병 하나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고 평소 등산을 즐기던 소탈한 아내였다.

그녀는 저승사자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고 남편에게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

 마지막 순간, 온 몸의 구멍이 열리며 오줌을 흘린 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삼남매 모두 장성해 분가하고 두 내외가 취미생활을 즐기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던 부부였다.

 

조증(mania)이 느껴질 정도로 밝고 쾌활하던 그의 얼굴은 다소 수척해지고 어깨도 약간 내려앉은 모습이다.

좌중을 압도하던 호탕한 웃음이며 너스레도 없어지고 사뭇 조용하게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뒷줄에 앉아서 나는 그의 등판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남자는 아직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하다. 갑작스런 충격이라 실감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남아있는 게 두렵고 싫어서 무조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잠시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두려움을 잊어버리려고. 상실감을 지워버리려고.

그러나 며칠 뒤 들려온 소문은 나를 완전히 배신하고 말았다. 그 남자가 은행에 나타났더라는 것이다.

조용히 나타난 게 아니라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내 명의의 예금을 인출하려는데 왜 자식들의 동의가 필요한지 그 남자는 따져 묻고 있었다.

“자식들은 다 출가해 저그들 살림을 살고 있단 말이오. 우리 마누라 돈은 내 돈이란 말이오. 왜 은행에서 못준다는 거요?”

“어르신, 그래도 고인의 재산은 상속법에 따라야 합니다. 자녀들의 동의가 없는 한 인출할 수 없습니다.”

버럭버럭 화를 내며 은행을 나서는 그 남자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 눈을 피했다.

‘밥을 굶는 것도 아닌데 세월이나 좀 지나면 돈을 찾든지 하지 않고 쯧.’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면전에서 그런 얘길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전처럼 헬스클럽에 나가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고, 노래교실에 출근 도장을 찍었으며, 문화교실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드물게 보는, 참 씩씩하고 쿨한 남자였다. 더 이상 아무도 그의 씩씩함에 대해 입을 대지 않았다.

고개를 빠트리고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하는 것보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우는 소리 괴로운 소리 해봤자 듣는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서 너 달쯤 흘렀을까, 일상을 빠르게 회복한 그 남자가 문화교실에 나와 고향으로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분가한 자녀들이 집 주변에 살고 있는데 웬일일까?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아 말 안하려고 했습니다. 실은 우리 아들이 제 엄마 돈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제 엄마 생전에도 야금야금 돈을 빼내갔고, 그 일로 속을 무지 썩어왔지요. 아내는 그러니까, 홧병으로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마누라 죽은 지 며칠 만에 은행에 나타났다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아들이 제 엄마 돈을 다 빼내 갈까봐 내가 선수를 쳤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됩디다.

여러분은 나처럼 자식한테 당하지 마세요. 다들 즐겁게 사시고, 자식들한테 다 주지 마세요.”

 

두서없는 말로 작별인사를 건네며 교실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더없이 참담하고 쓸쓸해보였다.

희희낙락 즐겁게 사는 것 같던 그 남자에게 그런 괴로운 사연이 있었구나.

그는 아내에게 아들에 대한 애착을 끊으라고 무수히 말했지만 아내는 듣지 않았다.

모든 걸 다 주고 싶어했던 아내는 다 주지 못해 홧병이 났고, 말 한 마디 없이 이승을 떠나버렸다.

아내와 자식 사이에서 삼각관계로 우울했던 그는 밖으로 나돌며 현실을 잊은 척 지냈는데 결국 아내의 판정승으로 끝나버린 셈이다.

 

내막도 모르면서 그 남자를 백안시했던 게 미안해 숨고 싶었다.

상속 문제로 부모와 등을 지거나 심지어 존속살인까지 벌어지는 세태라는 게 실감났다.

최근 우리나라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사전 증여보다 사후 상속하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부모세대가 그만큼 현명해진 것이다.

그 남자는 자식들과 더 이상 불편해지기 싫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떠나온 지 수십 년 된 고향을 다시 찾아간들 반길 사람도 없으련만 아들에게 기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나보다.

“열 자식 있으면 뭐하겠소. 효도하는 자식 하나만 있으면 되지.”

그는 떠났어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학우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너무 잔인한 농담이고, 한 자식이라도 부모 가슴 멍들게 하지 않으면 축복받은 인생이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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