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울릉거리는 울릉도. 십 수 년 전의 추억을 찾아 나선 길은 내게 씁쓸한 후유증을 남겼다.

옛사랑과 추억의 장소는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패키지 여행으로 선택하는 울룽도를 머리 속 지도 한 장으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한 바퀴 돌았고,

일 년에 50일 정도만 가볼 수 있다는 독도를  밟고 왔는데도 왜 이렇게 허망하고 미진한 기분이 들까?

그 유명한 따개비칼국수에 따개비가 열 마리도 안 들어있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육지의 두 배라서일까,

배멀미에 시달리며 독도까지 갔는데 지척에 보이는 등대까지도 올라가지 못하게 하던 출입금지 팬스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 전 내 기억 속의 울릉도는 열길 물 속이 환히 보이던 신비의 섬이었다.

도동항 주변으로 올망졸망 모여있던 배들, 손님을 부르던 여관 주인들, 육지의 식생과는 너무도 달랐던 성인봉 가는 길의 식물들,

낚싯줄을 던지자마자 미끼를 물고 올라오던 순진한 고기들, 모든 것이 참으로 맑고 순수해 보였는데.

인구 만 명이 사는 울릉도에 차가 5천대라니 그야말로 섬이 가라앉을 지경 아닌가. 섬 전체가 경사도 높은 산지라 사륜구동 택시만 다니던 때가 언제였던지.

올해 일주도로가 완전 개통되었다는 소식에 환호하며 울릉도를 찾았지만 도로는 편도 소통으로, 한 차선이 가면 한 차선은 기다려야 하는 구간이 많았다.

그 불편한 도로를 달리면서도 관광버스 기사님은 독도를 지켜주는 것이 울릉도 사람들이니 울릉도에 와서 돈 많이 쓰고 가시라.”고 연신 강조했다.

머지않아 사동항에 비행장이 생기고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올 거라는데, 그런 마인드로 관광객을 맞이해도 되는 걸까 

나의 기우와는 달리 울릉도는 한 겨울을 제외하곤 관광객으로 넘치는 모양으로

대다수의 주민들이 그닥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무뚝뚝하게 손님을 맞았다. 살갑게 대하지 않아도 관광객이 많이 몰려오니까 그렇겠지만.


섬 한 바퀴를 도는 관광버스에 줄줄이 오르던 사람들, 삼선암, 거북바위, 촛대바위 등등 해안마다 인증샷을 찍던 사람들,

특히 독도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애국자로 보일만큼 독도를 칭송하고 있었다.

독도에 발 딛는 순간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난다고도 했다. 그 눈물나는 독도에 서 있을 시간은 단 30.

그것도 계류장에만 머물러야지 섬 위로 올라 등대까지 가보지도 못한다니..... 이유는 쓰레기 무단 방치라는 거였다.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이 쓰레기를 마구 버렸기로서니, 미리 안내하고 계도하면 된 것을 출입금지로 막아버리다니,

군사정권 시대의 사고방식이 아직 남아있는 건 아닌가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울릉도 자유여행을 통해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은 활기 넘치는 저동항 풍경이었다.

전날 잤던 D리조트의 럭셔리한 잠자리를 마다하고 저동항 허름한 모텔에 든 것은 이른 새벽의 항구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화려한 일출은 없었지만 바다에서 돌아온 배와, 그 배에서 쏟아지던 생선들,

오징이를 받아 그 자리에서 내장을 꺼내 대꼬챙이에 꿰는 여인들로 어판장은 아연 활기가 넘쳤다.

요즘 오징어가 제철은 아니지만 관광객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일정량만 잡는 거란다.

그 흔한 오징어가 언젠가부터 어획량이 줄어들어 값이 여간 비싼 게 아니었다.

하긴, 울릉도 호박엿이 유명하다는데 여행 중에 호박 모종 한번 보지 못했다.

그 옛날 섬 사람들이 먹고 명을 이었다는 명이나물과 부지깽이나물이 지천이었고, 어딜 가나 섬바디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동행했던 친구는 성인봉을 향해 떠나고 혼자 남아 발길 닿는대로 걸었던 하루는 참 여류롭고 편안했다.

조망이 트이는 곳마다 그녀는 사진을 찍어 전송해왔고, 나는 해안 경치를 회신했다.

그녀는 산에서 나는 바다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던 시간들이 행복으로 남았다.

오래전 내가 다녀오면서 놓친 곳이 몇 군데 있어 혼자 휘적휘적 찾아가보았지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였다. 사람도 자연도 한결같기는 어려운 모양인가.

그러나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내 나이쯤 되면 무엇에든 격렬하게 공감하거나 낙망하지 않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울릉도 최고의 조망은 우리나라 10대 절경에 든다는 태하향목전망대였다. '태하'는 옛 우산국의 도읍지이자 울릉도 개척민이 첫 발을 내디뎠던 곳이다.

태하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반기는 숲길을 걸어가니 한 순간 눈 앞이 탁 트이며 전개되던 풍경!

울릉도 북면을 향해 이어지는 기암절벽과 해안선이 시선을 압도해 감탄사마저 잊었다.

그 해안의 물빛이 너무도 투명하여 천길 낭떠러지인데도 투신의 유혹을 느낄 정도였다. 저런 물빛의 바다에 빠진다면 영혼조차 에메랄드 빛이 되지 않을까.

전망대 근처 단독가구에 사는 노인은 줄장미를 심어 가꾸면서 내게 말했다.

누군가 찾아오면 보여줄 게 없어서, 꽃이라도 보라고..... 이제 내 평생 남은 일은 이것 뿐이라우.”

생애 말년을 누군가를 위해 살수 있다면 그 또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한 마디, 꽃 한 송이, 누군가를 위해 줄수 있는 그 마음이 천국 아닌가.


사흘동안 내가 걸었던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그 옛날 섬사람들이 넘어 다녔다는 행남옛길이다.

털머위, 섬기린초, 후박나무 등이 자생하는 고갯마루는 짙푸른 상록수림으로 우거져 원시림을 방불케 하더니

항아리같은 도동항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깎아지른 V자 협곡 사이로 코발트색 바다와 하얀 등대가 나타났다.

조릿대 터널과 곰솔 군락을 지나 약초냄새 그윽한 행남마을 흔적과 그 길 따라 오솔길 걸어 수직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

그리고 울릉도의 어업전진기지 저동항을 만났다.

방파제와 한몸이 된 촛대바위는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 때문인지 더욱 애잔해 보였다.


육지에서 울릉도로 가는 가장 짧은 뱃길이 후포항이라 차를 후포에 두고 갔더니 돌아오는 길이 만만찮았다.

낯선 지리에다 한밤중 비는 퍼부어 내리고..... 배멀미 후유증에 심신이 지쳤지만 이를 악물고 악셀레이터를 밟을 수 밖에.

추억 속의 울릉도를 아름답게 누비고 싶었는데 고생 바가지로 끝났다. 이래 저래 울릉도는 이번 생에 다시 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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