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쏟아지는 날, 나주에서 홍어애탕을 먹어본 적이 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붓는 눈발에 놀라 잠시 쉬어갈 겸 들어선 곳이 마침 그 식당이었다.
이른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실내엔 손님 한 명 없고, 낮은 지붕처럼 편안한 표정의 주인이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내다보고 있었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나는 망설임없이 홍어애국을 주문했다.
그 식당에는 홍어를 주재료로 하는 메뉴가 서너 가지 더 있었지만
시린 속을 따끈한 국물로 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였다.
영산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홍어애국은
보리 싹을 잘라 된장에 잰 뒤 홍어 간을 넣어 끓인 음식이다.
나주의 대표음식으로 홍어를 잘 아는 사람들은 감춰놓고 먹었다는데
깜짝 놀랄 만큼 특별한 맛을 느끼진 못했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먹으면서 나는 하필이면 왜 홍어 간을 식재료로 선택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애’는 간(腸)을 뜻하지만 내장을 뭉뚱그려 말하기도 한다.
생명 유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대표성을 갖고 있는 단어다.
그래서일까. 애 쓴다, 애 타도록 보고 싶다, 애 끓는 마음, 애 마르다 등의 관용구에는
안타까워 속상하고 죽을 만큼 힘들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고 심신의 고통을 애둘러 나타내기도 한다.
오늘같이 눈 비 오는 겨울날에는 왠지 홍어애국이 먹고싶다.
맛도 모르고 먹었던 그 뜨거운 국물이 애타게 생각난다.
홍어의 애간장으로 만든 음식, 거기엔 한 생명의 애마른 세월이 들어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