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가까이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있는 k언니를 만났다.

방광암 수술 후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은 남편이 암이 재발해 재수술을 거쳐 기적적으로 살아났는데

이번엔 폐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니 한쪽 폐가 하얗게 사라지고 없더란다.

      " 이젠 보내야지 우짜겠노, 인연 맺고 살아온 세월이 40년인데, 인연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지."

      며칠째 그 말이 뇌리를 맴돌고 있다. 사랑도 아니고 측은지심도 아니고 '인연에 대한 예의'라니.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인생을 너무나 가볍게 건너온 언니는 저 세상에 가서 말할 거라고 했다.

       "하느님, 저 참 잘 살아왔어요. 그렇지만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힘든 삶이 아니면 잘 살아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없다는데

       아, 나는 누구 앞에 가서도 잘 살아왔다고 말할 용기가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네.

      

      안자(顔子)가 죽은 뒤 공자는 그렇게 말했다지.

      싹이 났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이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잘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인생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인생도 있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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