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꿩의 다리>

 

장마철, 반짝 맑은 하늘이 반갑다. 아까워서 집에 있을 수가 없다.

"요즘 뻐꾹나리가 피었을텐데..." 엊그제 누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오대산의 한국자생식물원, 포항 기청산식물원 등에서 뻐꾹나리를 보긴 했지만

야생 상태 그대로를 만난 건 대운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싶다.

 

                                                                                                                                                       <물레나물>

 

사진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서둘러 나섰을 걸, 집안 일 마치고 나섰더니 11시가 넘었다.

햇볕은 정수리에 쏟아지고, 고온다습한 공기는 피부에 쩍쩍 달라붙는다.

'이 넓은 곳에 뻐꾹나리가 오데 있단 말이고? ' 들꽃학습원에 들어서 한숨을 쉰다. 덥다, 너무 덥다.

 

                                                                                                            <울산들꽃학습원/울주군 범서면 서사리>

 

마침 회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꽃사진을 찍고 있다. 학습원 관계자인 듯하다.

"안녕하세요? 뻐꾹나리 폈어요? 어디쯤에 있어요?"

"뻐꾹채가 아니라 뻐꾹나리요? 못봤는데요? 저는 회사 출장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꽃보러 잠시 들른 거예요."

그러고 보니 회색 유니폼에 회사 명찰까지 달고 있다. 얼마나 꽃을 좋아하면 출장길에 일부러 들렀을까?

산에 다니다 보니 야생화에 빠져들었다고, 블로그와 카페 주소를 알려준다. 백발이 멋있는, 선하기 짝이 없는 얼굴.

 

                                                                                          <범부채>

 

뻐꾹나리를 찾아 드넓은 학습원을 혼자  뒤지고 다니는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빈 속에 수영하고 배가 고파 냉장고에 있던 메밀묵을 꺼내 먹었더니 그게 탈이 났나 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화장실 비스무리한 것도 없다. 차라리 산 속이라면 숲속으로 뛰어들기나 하지.

괄약근을 조이고 또 조이면서 두리번 두리번 화장실을 찾는다. 진땀이 다 난다.

인내의 한계를 느낄 무렵, 학습원 근처 민가의 푸세식 화장실을 발견했다.

카메라를 팽개치고 후닥닥 뛰어들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지퍼를 내리는 순간 눈 앞이 아득했다.

푸세식 화장실도 황송하기 짝이 없고, 주유소용 화장지조차 은혜롭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학습원을 둘러본다. 화려한 범부채며 나리, 노루오줌 등등 온갖 여름 들꽃이 화들짝 피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뻐꾹나리는 어디에도 없다. 꽃이 안 보이니 이름표를 보고 다니는데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집 식탁 위에 걸려있는 뻐꾹나리 사진. 그 꽃처럼 섬세하고 깔끔하게 핀 걸 만나고 싶은데...

 

                                                                                                                                                                      <왜개연>

 

후덥지근한 날씨에 풀모기는 왜 그리 나한테만 달라붙는지. 모기가 O형 피를 좋아한다던데 맞는 말일까?

서너시간 풀숲을 돌아다니면서 모기들에게 실컷 회식 시켜주고 나왔더니 온 몸이 가렵다.

땀으로 끈적대는 피부에 옷을 뚫고 달려드는 모기 공세... 눈물을 머금고 뻐꾹나리는 그만 잊어야 했다.

뻐꾹뻐꾹, 뻐꾹나리는 언제 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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