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사람을 보면 그 남자가 생각난다. 첫사랑을 잊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그 남자가.
"자르고 나니 잊혀지던가요?"
"아니, 오히려 더 생각났지요. 세수할 때도, 밥 먹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손을 쓸 때마다 생각났지요."
왜 그랬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실연의 상처가 너무 깊고 아파서 그는 가혹한 자해(自害)로 그 아픔을 상쇄하고 싶었을 게다.
피 끓던 시절의 사랑은 그 남자의 손가락에 영원한 장애를 남기고 사라졌지만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둑알을 쓸어 담을 때 새끼손가락이 짧아서 좀 불편할 뿐이죠 하하하!"
호탕하게 웃던 그 남자는 정말 그녀를 다 잊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뭉툭한 손가락을 보여줄 만큼 상처가 무뎌졌을까?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 것을, 그러나 잊지 못하는 세월은 얼마나 더디고 아프더란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미친 듯 일에 파묻히고, 술을 마시고, 산에 오르고, 수다를 떠는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대개 행보다 불행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사랑보다 상처나 증오를 더 깊이 간직한다고 한다.
행복은 당연하고 불행은 억울한 것, 그래서 인간세상을 고해(苦海)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불행을 잊기 위해, 슬픔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가혹하게 자신을 학대하거나 아픔을 상쇄해줄 또 다른 대상을 찾는다.
그것이 종교일 때는 맹신에 이르기 쉽고 사람일 때는 사련(邪戀)에 빠질 수 있으며 과도한 운동일 때는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40대 중반에 남편을 잃은 내 친구는 저녁마다 라켓볼을 치러 다녔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분과 본능을 감당할 수가 없더란다.
‘야속한 사람! 왜 당신은 나를 버리고 먼저 가버렸지? 내가 당신에게 무슨 죄를 지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당신의 몸이 그리운 거지?’
미친 듯이 공을 때리고 나면 체증이 내려가듯 울분도 욕망도 조금씩 가라앉더란다.
"그래서 다 잊었지던? 미련도, 원망도, 욕정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던 그녀는 결국 새 남자를 만났고 더 이상 라켓볼을 치지 않는다.
어떤 방법으로든 감정을 억눌러 삭이고 싶었지만 삐죽삐죽 새어나오는 본능을 견딜 수가 없었으리라.
고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고독의 심연에 빠져드는 것처럼 상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수록
상처가 더 깊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건지도 모른다.
뿌리치고 도망가지 말고 껴안고 뒹굴다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탁 차고 오를 수 있을 텐데.
잊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벗어나려고 바둥거리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가면 잊혀지는데,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