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만의 폭설이 내린 저녁. 남편은 새벽 2시에 겨우 퇴근했고 뒷날은 조간신문도 오지 않았다.

햇볕이 나면 눈이 금방 녹을 것같아 아침 일찍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저수지 주변의 설경에 넋이 빠졌다. 삭막한 겨울 풍경에 눈이 덮이니 이국적인 분위기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밟고 들어가 샷을 날렸다.

25년동안 살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설경은 처음이다. 그것도 바로 집 앞에서!

 

 

 

 

수십장의 사진을 화면에 띄운 뒤 골라내고 또 골라낸다.

이건 이래서 흠이고 저건 저래서 흠이고... 잘된 것보다 못된 것만 보인다. 어떨 땐 전부 골라내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글을 쓸 때도 나는 더하기보다 빼기를 많이 한다. 문장에 살을 붙이기보다 살을 발라낸다고나 할까. 

미사여구나 중언부언은 질색이다.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이 좋다. 사진도 그런 사진이 좋다.

 

 

 

 

사람도 깔끔한 성격이 좋지. 안과 밖이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솔직한사람.

믿는 도끼로 남의 발등 찍지 않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언제 이런 설경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명덕저주지 뒤로 우리 아파트 전경.

이사온 지 5년만에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이사오길 잘했어. 15년동안 살던 집 떠나오기 쉽지 않았는데.

 

 

 

 

강원도에선 폭설이 재앙인지 모르지만 남녘에서는 사뭇 즐거운 분위기다.

눈썰매에 아이를 태워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외국인은 "원더풀, 원더풀" 연발이다.

 

 

 

 

눈 녹기 전에 울산시내 설경을 담아 놓으려고 허겁지겁 산에 올랐다.

성내에서 염포산으로 이어진 길을 혼자 럿셀하면서 올라가는데 이마에선 비지땀이 흘렀다.

그러나 불과 한두시간 사이에 눈은 거짓말처럼 녹아버렸다. 아아, 이렇게 허망할 수가!!!

 

 

 

 

눈 오는 날 퇴근길. 재래시장 좌판 순대국밥집에 둘러앉은 남자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않을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오늘의 울산이 살아 숨쉬고, 또 우리나라가 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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