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계단식 집들, 감천문화마을.
태극도 신도들이 집단촌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이 마을을 한국의 마추피추 혹은 산토리니라고 부른다.
불가사이한 종교의 힘을 떠올린다면 마추피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 산토리니를 떠올리기엔 무리가 아닐지.
다닥다닥 붙은 것 같지만 앞 뒷집이 일조권과 조망권을 사이좋게 나누고 있다.
집 앞에 마음 놓고 빨래를 널 수 있는 동네. 고추를 실에 꿰어 말리기도 하는 동네.
1960년대나 70년대 어디쯤에서 시간이 딱 멈춰버린 듯한 풍경이다.
적나라한 궁핍의 실체를 보는 듯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건너온 세월에 저런 풍경이 있었으니까. 저런 집에서 먹고 자고 사랑하고 싸우고 울었으니까.
아프리카나 중남미 저개발국가의 도시 빈민촌 개량사업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감천문화마을.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노인들이 위태로워 보이고...
한국전쟁의 여파로 수많은 피란민들이 내려와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야 했던 부산.
산기슭에 움막이나 판자집을 지어 집단으로 동네를 이루며 살았던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그래도, 그 좁은 골목길에 식물을 가꾸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이 노동이나 행상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라 주거환경은 열악하지만, 그들의 꿈마저 열악하진 않은 게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집 앞에 희망같은 넝쿨을 올려놓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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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집, 집, 집들.
마을이 유난히 알록달록한 것은 그때그때 페인트칠을 못해서 그런 거라고...
시멘트와 보도블륵 사이를 비집고 나온 저 강인한 생명력이라니!!!
철 지난 능소화가 마지막 정염을 발산하는데...
낯선 이방인이 불쾌한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나를 보는 저 녀석의 표정이 감천동 주민을 닮았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도 날것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