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도 보였다. 산비탈을 활활 타고 오르는 저 진달래 꽃불이.
빨리 가서 저 꽃불 속에 함께 타오르고 싶었지만 인파가 장애였다.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조연현은 진달래를 그렇게 슬픈 꽃으로 불렀다.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무대가 되었다는 창원 천주산(639m). 결혼 28주년을 맞은 두 내외가 저 산을 올랐다.
왕복 3시간, 달천계곡 바위틈엔 어느새 매화말발도리가 하나 둘 피고 있었다.
뿌연 연무 속으로 창원, 마산 시가지가 한 눈에 굽어보이는 정상. 창원은 내 청춘의 한때를 묻은 곳이다.
논두렁 밭두렁 넘어다니던 길이 지금은 공장 건물로 빼곡하고, 황량하던 벌판은 도심으로 변했다.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이 창문 넘어 도망간다'고 말하던 새신랑은 오십대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
근면성실하게 사는 게 삶의 가장 큰 덕목인 줄 알고, 멋 부릴 줄도 과대포장 할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나: 오늘(4월14일)이 블렉데이라고 너그 아부지가 짜장면이나 먹자카네.
아들: 옴마, 그건 싱글들이 먹는 기다!!!
오래 전부터 사고 싶어 딸막거리던 카메라(니콘 D600 + 24~70렌즈)를 영입했다.
큰돈 쓰는 게 미안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결혼기념 선물 고마워요~"
빈대도 낯짝이 있나보다 ^^*
내 손을 떠나게 될 헌 카메라로 익숙한 풍경들을 담아본다.(현대중공업 출근길)
세상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것들이 너무 많다. 살아갈수록 새록새록 느껴지는 것들.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 고맙고, 걸을 수 있어 고맙고, 쓸 수 있어 고맙고.
무엇보다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꼬박꼬박 모이를 물어나르는 남편이 가장 고맙다.
이른 아침 일터로 출근하는 가장들이 다 고맙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무더기로 핀 앵초를 만났다.
산다는 것도 그런 거 아닌가 몰라. 무념 무상으로 하루 하루 지내다 보면 어느새 눈 앞에 꽃밭이 펼쳐지는 것.
때로는 눈비 오고 바람도 불겠지만, 묵묵히 견디며 살다보면 재 넘어 새로운 꽃밭을 만나기도 하는 것.
도종환의 詩처럼 "내게 온 것은 모두 축복이었다" 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