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봉 철쭉 보러 갔다 쪽박차고 내려오는 길, 등산로 한 가운데 시주함이 놓여있다.

스님들은 땀을 흘리며 염불을 하고, 중생들은 들은척 만척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야흐로 초파일이 가까웠나 보다.

탁발 장소를 등산객들이 몰리는 하산길로 정한 스님들의 기지가 놀랍다. (월12일 남원 운봉.)

 

철쭉 보러 갔다 바람 맞았다고 투덜거리는 내게 R선생 왈,

"우리네 인생이 언제 십문칠 딱 맞아서 살았나요, 대충 맞춰가면서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잖아요."

꽃철에 딱 맞춰 산에 가리라는 생각을 버려야겠지. 대충 맞춰 가서 꽃을 보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그래야겠지.

그런데도 나는 왜 이렇게 허탈하고 억울한가 몰라.

날씨는 덥고, 길은 멀고, 시야는 뿌옇고, 꽃은 하나도 안 피고... 최악이었다.

 

 

5월11일 보현산, 나도바람꽃

 

 

노랑무늬붓꽃

 

 

은방울꽃

 

 

 

흔적 / 신경림

생전에 아름다운 꽃을 많이도 피운 나무가 있다.
해마다 가지가 휠 만큼 탐스런 열매를 맺은 나무도 있고,
평생 번들거리는 잎새들로 몸단장만 한 나무도 있다.
가시로 서슬을 세워 끝내 아무한테도 곁을 주지 않은 나무도 있지만,
모두들 산비알에 똑같이 서서
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바래가고 있다.
지나간 모든 날들을 스스로 장미빛 노을로 덧칠하면서.
제각기 무슨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5월15일 태화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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