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 울고 말 안 듣는 애들에게 어른들이 하던 말, "디비리 모티에 갖다 내삐린데이~"

디비리 모티가 어딘지는 몰라도 어마무시하게 겁나는 곳인줄 알고 울음을 뚝 그쳤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무서워하던 디비리는 진주 남강이 휘돌아가는 곳에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진주의 적벽으로 불리는 디벼리를 진주 말로는 '디비리' 모퉁이는 '모티'라 불렀다.

'디'는 '매우', 또는 '크다'는 의미, '비리'는 '벼랑'을 의미하는 경상도 말이다.

 '큰 벼랑'을 의미하는 지역말에서 유래한 디비리는 상대동 상평동 사람들이 시내로 오가는 지름길이었다.

큰물이 지면 디비리가 잠겨 선학산 남서쪽 고개를 넘어 시내로 통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저 험악한 벼랑에 아이를 갖다 내버린 부모들이야 없었겠지만 어린시절 자주 듣던 디비리 모티를 다시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13년만에 친구를 만나 디비리 모티를 걸었다. 장마를 앞두고 남강댐에서 수문을 열었는지 강물은 도도하게 불어있었다.

13년의 간극을 메우기는 쉽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아는 게 있어야 물어보지. 그냥 듣기만 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13년만에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버린 그녀는 전혀 미국스럽지 않았다.

 헐렁한 바지에 늘어진 티셔츠, 예나 지금이나 화장기라곤 없는 얼굴, 특유의 팔자걸음도 그대로였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넘어온 흔적이 아무 데도 없어 놀라웠다. 모든 걸 내려놓고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이 저럴까?

한국이 싫어서 떠났던 남편, 미국이 싫어서 떠나온 아내. 두 사람은 더 이상 가족이 될 수 없겠지.

아흔살 노모와 함께 고향에서 남은 생을 살겠다는 그녀를 아무도 말릴 수 없으리라.

 

 

 

문득, 나도 진주 가서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년을 살았던 진주를 나는 너무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진주도 제대로 모르면서 바깥 세상을 동경하고 먼 곳을 돌아돌아 여기까지 왔다.

돌아가야 할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으니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

모든 걸 접고 돌아간다면 진주가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울산보다 조용하고 아늑하고 사람들이 순하다.

진주 근처로 가서 조용히 엎드려 살까. 텃밭 일구면서 지리산 둘레길이나 걷고 그리저리 살다 가면 안 되겠나.....

'牛溲馬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이 낮아졌다  (0) 2014.07.20
기죽지 말고  (0) 2014.07.06
마지막 모험  (0) 2014.06.06
가볼까, 장미여관으로  (0) 2014.05.19
단절  (0) 2014.05.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