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번쯤 만나는 지인이 걸어서 국토 순례를 하던 중 울산에 들렀다. 

부산에서 출발, 동해안을 따라 고성까지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강화도까지, 

거기서 다시 서해안 따라 내려와 해남 땅끝마을을 찍고 남해안 따라 부산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것도 혼자서.

10키로가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종일 걷고 또 걷다가 날이 저물면 야영이나 민박으로 잠을 잔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무모한(?) 도전을 펼치는 그가 문득 낯설어 보였다. 환갑 지난 시니어가 국토대장정이라니,

 

그는 한 번뿐인 인생을 뭔가 의미 있게 살고파서 퇴직 후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가 걸어서 국토 한 바퀴, 두 번째가 제주 한달살이, 세 번째가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는 거라고 말했다.

심신이 건강한 사람답게 참 건설적인 포부를 갖고 있구나, 하고 눈부시게 그를 바라보았다. 

시쳇말로 범생같은 인생을 살아왔으니 여생도 모범적으로 살지 않겠는가. 

자신의 인생을 미리 설계해놓고 오차없이 그 설계대로 살아나가는 사람, 

그는 오래 전에 그려둔 라이프 사이클을 지금까지 잘 실현시키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적령기에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며 30년동안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계속해 경제적인 안정도 이루었다. 

국토대장정은 성공적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금메달을 달아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석달 가까이 계속된 강행군에 체중은 9키로나 빠지고 눈이 움푹 들어갔지만

그는 결국 국토대장정에 성공했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왠지 그가 더 낯설어 보였다.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너는 눈부시고 나는 눈물겹다.’는 표현이 딱 맞는지도 모르겠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한번쯤 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말한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소망 목록정도가 되겠지만, 젊으나 늙으나 버킷 리스트 운운하는 건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말을 유행시킨 외국 영화의 주인공도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이 아니었던가. 

버킷 리스트의 어원은'죽다'라는 의미의'양동이를 차다(Kick the Bucket)'란 영어 관용어라고 한다.

목을 매고 죽을 때 양동이 위에 올라가서 목을 밧줄에 걸고 양동이를 발로 차서 죽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국토대장정을 성공한 그는 제주 한달살이를 거쳐 지금 시골에 집을 짓고 있다. 

하나 하나 버킷 리스트 목록을 지워나가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우러러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아무 계획도 포부도 없이 살고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 아닌가. 

자유로운 영혼을 구가하며 어떤 것에도 구속되기 싫어했기에 지금까지 이란 걸 부정하고 살아왔다고나 할까. 

절도있는 생활, 성실무쌍한 삶의 자세, 계획적인 인생,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듯하다.

요즘 나는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처럼 살아있으니 살아간다는 심정이기도 하고

절해고도에 갇힌 무기수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특히 코로나 이후 더욱.

 

삶이란 게 알고 보면 끝없이 견디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통도 불면도 치욕도 다 견뎌내야 하는 것. 

업장(業障)을 다 닦을 때까지 다만 견뎌낼 뿐이라고. 이 얼마나 수동적이고 못난 인생인가. 

이 주제에 버킷 리스트라니 해외 토픽같이 남의 일로만 여겨질 뿐이다.

 

나라고 한때 포부가 없었을까만, 세파에 흔들리며 일찌감치 주저앉고 포기했으며

경쟁에 취약하고 인간관계도 서툴러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한 사람의 멘토도 갖지 못해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으니 늘 혼자 갈등하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젠 어딜 가도 실버세대임을 거부할 수 없는 나이. 새삼스럽게 젊은 척, 강한 척, 있는 척하기 싫다. 

나이 때문에 초라해질 필요는 없지만 우쭐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정신차리고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살다 가면 성공적인 삶이다.

 

환갑 넘은 나이에 버킷 리스트를 실행에 옮기는 삶을 보며

나는 문득 리스크에 발목 잡히지만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것들 하나씩 이루어가는 삶도 좋지만 위험에 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라는 생각.

작년에 59살 남동생이 희귀암 판정을 받고 무시무시한 수술을 거쳐 아직까지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두개골을 열고 눈 하나를 잃었으며 얼굴의 절반이 무너져버린 동생을 보며

인생 최대의 리스크는 건강이라는 걸 느꼈다. 

탄탄한 근육질의 상남자였던 동생이 60고개를 앞두고 무릎을 꺽을 줄 상상이나 했던가. 

골프광에 가까웠던 동생은 세계 골프 투어의 꿈을 하루 아침에 접고 말았다. 

돈도 명예도 목숨 앞에선 무의미한 것이다. 뭐가 더 중요하다고 서열로 따질 수 없는 절대 권력이 목숨이니까.

 

리스크는 ‘뿌리’를 뜻했던 그리스어 rizikon이 나중에 라틴어에서 ‘절벽’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단어에서 나온 말이 바로 risk(위험)다.

요즘 실버세대들이 떨고 있다는 두 가지 큰 리스크는 다름 아닌 자녀와 부모라고 한다.

나이 들고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부모의 노후자금을 축내는 자녀와

요양병원에 누워 유병장수하는 부모가 우리 세대의 최대 위험요소가 된 것이다.

나는 거창한 버킷 리스트를 꿈꾸기보다 큰 리스크 없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

적어도 동생들이 나보다 먼저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가족을 먼저 보내는 일 또한 인생에 큰 리스크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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