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병원 뒷골목에 그 가게가 있다. 상호는 다방으로 붙여놓고 칼국수와 커피를 함께 파는 집.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메뉴에도 불구하고 골목식당의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이외로 단골손님이 많다.

진한 멸치국물에 감자와 호박을 듬뿍 넣고 끓여낸 칼국수는 투박하고도 깊은 맛을 낸다.

테이블이라곤 네 개가 전부, 옛날 다방을 인수해 식당으로 개조한 실내는 90년대 시골 다방 분위기다.

늙은 기생처럼 나이 칠십에도 화장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마담과 촌스러운 조명등.

낡은 레자소파에 몸을 묻고 칼국수를 먹는 기분은 좀 특별하다.

번화가 뒷골목에 이런 집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해서일까.

가게 이름과 메뉴가, 주인 이름과 실내 분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집에 내가 단골이 된 지도 오래다.

목필균 시인이 ‘명자야 명자야 부르면 시골티 물씬 나는 명자가 달려 나올 것 같다’고 노래한

마담 명자언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청순해 보여서 아가씨꽃이라 불리던 명자꽃처럼

너무 순진해서 꺾여버린 그녀의 일생이 아프게 떠오른곤 한다.

 

눈부시게 희고 예뻤던 명자는 철모르던 시절에 남자에게 납치를 당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와 호형호제하던 거래처 상인에게.

트럭에 물건을 싣고 납품하러 오곤 하던 남자를 삼촌 삼촌하며 따랐는데,

어느 날 명자를 차에 태우고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막 초경을 시작한 나이의 명자는 한 번도 남자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삼촌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혀

그의 육체적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일찌감치 상처하고 전국을 떠돌던 장돌뱅이 남자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첩첩산골로 숨어들어 명자와 살림을 차렸다.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짓밟고 뭉개 자신의 탐욕을 채우면서도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달래고 위하고 겁주면서 서서히 길들였다.

“너도 내가 좋아서 따라온 거잖아. 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야.”

그는 명자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며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갖다 바쳤다.

명자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겼다.

 

외동딸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실종자 전단을 뿌리고 수소문한 끝에 명자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만삭의 몸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선 아버지를 보고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다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반가움에 앞서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보다 배은망덕한 죄인이라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의형제까지 맺을 정도로 믿었던 사람에게 딸을 뺏긴 아버지는 울분을 참지 못해 씩씩대다가

끝내 명자의 부른 배를 보고 주저앉았다. 경찰서에 끌고 갈 생각으로 결박 도구까지 준비했던 아버지는

모들 걸 포기하고 남자를 사위로 인정하고 말았다.

 

아버지뻘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살면서 그녀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면 몰라도 마지못해 끌려가는 삶이 갈수록 누추하고 불행한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이가 지적 장애만 없었더라면 일찌감치 집을 뛰쳐나왔을지도 몰랐다.

아픈 아이를 두고 차마 엄마이기를 포기하지 못했던 그녀는 그렇게 한 남자의 인질로 잡혀

30여년을 살아냈다. 자식들에게 한 번도 아버지의 부도덕과 폭행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영원히 비밀로 묻어두려 했던 남자의 만행은 그에게 새 여자가 생기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남자는 철면피처럼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여자야. 지금까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있어?

마지못해 잠자리에 응해준 거잖아. 도망가고 싶은데 억지로 살았잖아.”

 

명자는 그 한 마디에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걸 느꼈다.

무섭고 싫었지만 참고 살았는데, 아이들이 독립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남자는 나를 꿰뚫어보면서 복수를 꿈꾸고 있었구나.

명자는 모든 걸 버리고 집을 나왔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큰 아이가 오히려 엄마를 응원했다.

엄마, 지금이라도 엄마 인생을 사세요. 우린 알아서 잘 살게요.

어차피 우린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위해 살아온 가족이었어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식당 보조, 간호 보조, 장애인 보조, 요양보호사 등등을 전전하며 살다가

시루떡만한 방 한 칸 마련하고 마침내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된 것이 그녀의 이력이다.

도시의 뒷골목 대여섯 평짜리 가게에서 수제비를 끓이고 커피를 팔면서

그녀는 70평생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날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랑도 명자꽃 같은 것이리라.

흔해빠진 이름으로 다가왔다가 가슴에 붉은 멍울로 이별을 남기는 것이리라.’ <목필균 ‘명자꽃’ 中>

다닥다닥 붙은 꽃망울로 촌스럽게 피었다 지는 명자꽃,

‘평범, 겸손’이라는 꽃말이 명자언니와 많이 닮았다. 더 이상 곱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한때 우유 미인으로 소문났던 그녀를 만나러 가끔 병원 골목으로 접어든다.

“언니, 여기 칼국수 두 그릇!”

오늘 점심은 명자언니와 행복한 겸상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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