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봄 바다를 보러 자주 나간다.

겨우내 적막했던 해변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마음이 다급하다.

겨울 바다를 찾는 방랑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겐 왠지 눈길 주기가 미안해 모른 척 지나쳤다.

고독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는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하지만 봄 바다는 다르다. 초록이 짙어가는 물빛과 어서 오라고 부르는 듯한 파도,

갯바위에 붙은 해초류에 생기가 돌고 갈매기의 비행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이때쯤이면 해변에서 만나는 방랑자들이 동족처럼 반갑다.

 

해변의 봄은 미역 냄새와 함께 온다.

물가에 다다르기도 전에 훅 끼치는 미역 냄새. 비릿하고 향긋한 그 냄새에 오감이 활짝 열리고 군침이 돈다.

아니나 다를까 해변에는 미역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동네 아낙들이 둘러앉아 미역줄기를 골라 발에 너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배로 건져온 미역들을 다듬어 가지런히 널어서 햇볕에 잘 마르게 비스듬히 세워둔다.

햇볕이 좋으면 사흘만에 마른 미역으로 변신하는 물미역.

그러나 가만히 두어도 절로 마르는 게 아니라 수시로 뒤집어주고 보살펴야 상품이 된다.

겨우내 일거리가 없어 지루했던 아낙들이 모처럼 일당 챙기는 봄날. 수다는 덤으로 따라온다.

창 넓은 모자로 햇볕을 가리고 마스크까지 꼈지만 살아온 세월이 있어 어둔한 말도 눈치코치로 알아듣는다.

 

“자, 미역 귀다리 하나 묵어보소.”

때론 생미역 한 줄기, 때로는 미역귀 하나를 이방인들에게 쥐어주기도 하는 아낙들.

차마 먹고 싶단 말을 못했던 사람들은 횡재한 기분으로 그 자리에서 넙죽 받아먹는다.

쫄깃하고 향긋한 맛. 바다를 품고있는 짭쪼롬한 맛이다.

해안가 마을을 돌아 봄바다 순례를 하고 돌아오는 길, 몽돌밭에 미역을 널고 있는 여인을 만난다.

파도에 떠밀려온 미역을 주워 말리는 것이 집에서 먹으려나 보다 했는데 찾는 사람이 있으면 팔기도 한단다.

해변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꾸려나가는 그녀는 낚시 미끼와 라면, 과자 등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풍에 검게 그을린 피부, 파마가 풀려 산발이 되다시피한 머리.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옷과 무릎까지 오는 장화.

그녀는 몽돌밭에 퍼질러 앉아 미역을 뒤집어주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알고 지낸 지 오래지만 서로 깊은 얘기는 나누지 않는 사이.

어쩌다 한번 마주치면 ‘잘 지내죠?’ 한 마디로 안부가 끝나는 사이.

서로 류(類)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건성으로 알고지냈다고나 할까.

“못 본지 이태나 됐네요. 집안엔 별일 없고?”

작정하고 다가앉아 그녀의 작업을 도우는 척 말을 걸어본다.

가끔 지나치는 그녀의 가게가 오래도록 문이 닫혀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구멍가게를 접은 것도 같다. 소일거리 삼아 푼돈 벌어 쓴다던 여자가 왜 가게를 접었을까?

 

지난 겨울 남편이 황천길로 가버렸다고 그녀는 덤덤하게 말했다.

미워했지만 결코 죽기를 바라진 않았는데 병을 얻어 가버렸다고 한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그녀에게 남기고.

바다 사나이였던 남편은 밖에 여자를 두고 있었다. 처음엔 몰래 만나다가 나중엔 아예 두 집 살림을 했다.

남편이 이혼을 원했지만 그녀가 허락해주지 않았다. 남편을 뺏긴 여자로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 홀로 계시던 시어머니가 노환을 얻어 운신을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몸피가 줄어 검불처럼 가벼워진 노인을 안고 울었다.

밥을 씹어 시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리고 식어가는 몸을 자신의 체온으로 안아서 데웠다.

점차 생기가 돌아온 노인을 바닷가 집으로 모시고 와서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딴살림하던 남편이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양심이 남아있었는지 아내는 버려도 어머니는 버릴 수 없었던 건지.

 

낮은 지붕 아래 소박한 꿈을 일구며 살던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평화는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바깥 여자와 살면서 얻은 병이 남편을 친 것이다.

무쇠 팔 무쇠 다리를 자랑하던 남자는 중증 치매의 어머니를 남기고 석달을 앓다 떠나버렸다.

그녀는 가게를 접었다. 어떤 생계수단도 그녀에겐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아이 같은 노인을 보살피며 바닷가에서 해초를 주워 말리는 일이 이제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현대판 같다.

천신만고 끝에 잡은 고기는 상어 밥이 되고 마침내 빈 배로 돌아온 노인,

사랑을 찾아 떠난 남편이 돌아왔으나 불귀의 객이 되고 끝내 홀로 남은 그녀.

봄 바다를 보러갔다가 ‘노인과 바다’를 보고 온 느낌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 상어에게 고기를 뺏기고 빈 배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가 언제인지를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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