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혼수상태에 빠진 지 석 달째.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뒤 콧줄로 연명하다가 그조차 힘들어지자 산소호흡기 신세를 지게된 것이다.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도 동생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60년밖에 못 살고 이승을 떠난다는 게 못내 억울했던 것일까.

“올케, 힘들지? 니가 잘못했다고 빌어봐. 잘못은 내 동생이 많이 했겠지만 니가 용서해달라고 빌어.

자식들 걱정하지 말고 어서 떠나라고 부탁해.”

2년 동안 병마와 싸우다 죽음의 강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동생이 너무 안타깝고 기가 막혀

올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의식이 없어도 귀는 열려있을 거라고, 다 용서하고 떠나라고 말해보라 일렀다.

누워있는 사람보다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더 걱정스러웠다.

올케는 50대 중반, 슬하에 1남1녀가 있고 아직 숙제가 많이 남았다.

 

병원에 있을 때 연명치료거부 서약을 해두라고 내가 그만큼 일렀건만,

동생도 가족들도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가망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다는 건 고문일텐데.

무의식 상태로 오래 누워있는 것만큼 가혹한 일이 또 있을까?

2년전 비강암 진단을 받은 동생은 독성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어 마지막 수단으로 수술을 결심했다.

두개골을 열고 오른쪽 안구 적출, 코뼈와 잇몸까지 도려내는 18시간의 수술을 이겨내고 살아났지만

끈질긴 암세포는 침샘으로 전이되고 얼굴 전체로 점점 세력을 넓혀갔다.

동생이 정확한 진단명을 받기 전까지 주위 어느 누구도 비강암이란 암이 있는 줄도 몰랐다.

콧속에도 암이 생긴다니 금시초문이었다.

 

독성항암제 - 방사선치료 - 수술 - 표적항암제 - 면역항암제 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했지만

동생의 얼굴은 괴사가 진행되었다.

미간에 생긴 혹이 빨갛게 부풀어 진물이 흐르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동생은 방사선치료 과정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일어나 치료를 중단했는데

뒤에 알고 보니 방사선을 거부하는 암은 독종 중에 독종이라 수술해도 소용없다고 한다.

과잉진료였는지 실험 대상이었는지 덕분에 동생은 1년 이상 명을 이어갔지만

끝내 백약이 무효인 상태로 지금 코마(coma)에 빠져있다.

그 험한 고생을 하고도 회복할 수 없다니 도저히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는 것일까.

 

엄마가 딸 셋 끝에 낳은 2대독자 동생은 집안의 온갖 혜택을 다 받고 자랐다.

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다. 최고학부를 나왔고 만능 스포츠맨에다 낚시, 골프, 등등 놀기도 실컷 놀았다.

부모 기대를 가장 많이 받은 외아들이 부모 속을 가장 많이 썩혔고 끝내 남은 누이들을 걱정시키고 있다.

그는 이제 쇠망(衰亡)의 기운에 들어선 것일까. 문득 복진타락이란 말이 떠오른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이란 지은 복(福)만큼 받아 써 다하면(盡)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떨어지게 된다(墮落)는 뜻이다.

모든 중생은 업(業)에 따라서 천상에 가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는데,

설사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는다고 해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 버리면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떨어지게 된다.

인간의 수명이나 부귀영화도 쇠망(衰亡)의 운에 들어서면 재운도 수명도 끝나는데

불가에서는 그것을 두고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 하는 것이다.

복이 다하면 고통속에 타락하니 자신이 지은 복이 끝나기 전에 새로운 복을 지으라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복덩이로 불리던 동생은 마침내 자신의 몫을 다 받아 써버린 걸까.

바닥이 드러난 줄도 모르고 마음껏 복을 누리다가 한방 크게 얻어맞고 누워버린 것일까.

새로운 복을 지을 시간도 없이.

2년동안 투병하면서 동생은 어릴 때 받았던 관심의 몇 배를 더 받았다.

친인척, 직장 동료, 주변 지인들.... 그 많은 우려와 근심을 뒤로 한 채 마침내 의식불명에 빠져버렸다.

미이라 같은 모습으로 중태에 빠진 동생을 고통없는 세상으로 보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요양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뗄 수 없다는 거다.

뇌사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산소호흡기를 떼는 건 살인행위라고.

코마(의식불명)는 뇌는 살아있으나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상태이고,

뇌사는 뇌는 죽고 심장만 뛰고 있는 상태로서 인공호흡기로도 보통 1달을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뇌사 판정이 곧 사망인 셈이다.

동생에겐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죽음에 대한 대비가 없었는지.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

무슨 미련이 남아 저렇게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무슨 억하심정이 그의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참 어렵다. 

'名色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남자  (0) 2023.05.14
사돈  (0) 2023.01.05
나홀로 섬에  (0) 2022.07.16
신발을 위한 사색  (0) 2022.04.26
여인과 바다  (0) 2022.03.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