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낮은 산죽이 정답게 몸을 비벼대는 산길을 걷는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낙엽송 숲도 지나고, 천태만상의 인간 세상처럼 잡목이 우거진 길도 걷는다.
산을 오르면 어느새 가슴속에 알 수 없는 희열이 차 오른다. 티끌 세상 온갖 잡념은 점점 잊혀져 가고 산에 머무르는 그 순간만은 나도 자연이 된다.

언제나 저항 없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산이 좋아 틈만 나면 산에 간다.
다 버리고 싶으면서도 끝내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산은 말없이 포옹해준다.
「산은 말없음표로 억 년, 사람은 느낌표로 일 년」

내원사를 품에 안은 천성산, 하산 길에 들렀던 金鳳庵금봉암의 어느 하루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마른 잎이 수북수북 쌓인 비탈길을 낙엽스키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던 길에 만났던 암자.
통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으로 벽을 바른 작은 암자에는 碧栖籠벽서롱이라는 낡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인기척을 내도 소리가 없는 것이,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것일까?
햇살이 놀고 있는 작은 쪽마루가 앉기를 권하는 듯했지만 임자 없는 집에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져 주춤거리고 있는데, 신발장 위에 하얀 종이가 눈에 띈다.

'쌀은 부엌에 있고, 물은 암자 뒤에 있습니다. 먼 길 오셨으니 따끈한 차 한잔에 쉬어 가십시오.'
집주인의 필적 끝에는 두어 달 전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추신으로 군불을 때면 방이 아주 따뜻하다는 말과, 녹차는 벽장에 넣어 두었다는 말까지 곁들여 있었다.

그리고 스님의 편지 옆에는 등산객들의 필적으로 보이는 편지 네댓 장이 나를 새로운 감동에 젖게 했다.
'등산길에 잘 쉬어 갑니다. 인연이 있어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비가 와서 스님 우산을 잠시 쓰고 갑니다. 맑은 날 돌려드리러 오겠습니다.'
'인도 가셨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부디 좋은 여행되시고 성불하십시오."

금봉암 빈 암자에는 듣는 사람 없는 얘기가 편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사람의 발길이 쉽지 않은 곳.
집주인은 문도 잠그지 않고 길을 떠났다.
오가는 사람이 쉬어 가라고 다구를 가지런히 차상 위에 올려놓고서.

그 믿음이 고마워서 누군들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집주인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나는 찻물을 끓였다. 작설차를 마셨다.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 먼 계곡의 물소리. 어린 새들이 가늘게 칭얼대는 소리…
기우는 햇살도 잊어버리고 나는 금봉암에 마냥 앉아 있었다.

보름달이 한 번 떴다가 졌다.
산은 완전히 알몸이라 좋았다.
숲이 우거졌을 때는 산의 몸매를 볼 수 없지만, 옷을 벗어버린 겨울산은 산세를 확연히 드러낸다.
숨어 있던 바위와 골 깊은 계곡, 장쾌한 능선까지.

두 번째의 천성산 등반에서 나의 일행은 내원사에서 결재 중인 스님 두 분을 만났다.
도시락을 먹고 더운물을 마시던 중에 지나가던 두 비구니를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이다.

해맑은 얼굴의 童顔동안에 티없는 표정의 묘수스님은 금봉암에 군불 때러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비워 둔 암자지만 가끔 가서 청소도 하고 불도 지펴야 한다고.
우리는 금봉암의 내력을 얘기 들었다. 내원사의 부속 암자로 신라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토굴을 보수해 지은 작은 암자. 암자 뒤로 산을 조금 오르면 바위굴이 있고, 그 바위 속에서 석간수가 흘러 나와 식수로 쓰이는 곳.

금봉암 스님이 인도로 떠나기 직전에 어떤 여인이 암자를 찾아와 머리를 깎겠다고 하더란다. 자신은 속세에 염증을 느꼈으며, 미련도 후회도 없이 수도승이 되어 평생을 혼자 살고 싶다고 눈물로 애원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가만히 그녀를 달래어 부엌에서 공양주 일이나 거들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보라고 타일렀다 한다.
아무 말 없이 며칠을 잘 지내던 그 여자는 그러나 닷새도 견디지 못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속세에 정리하지 못한 일들이 남았을까. 아니면 두고 온 인연들이 그리웠을까.

산사에는 가끔 머리를 깎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대개는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하산하는 경우가 많단다.
修道人수도인은 어떤 사명감을 띄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묘수스님은 말했다.
속인들은 현실을 도피해 산 속에 와서 일시적인 위안을 느낄 따름이지만 스님들은 수도생활이 자신의 운명임을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 받아주고 말없이 그 자리에 선 산처럼 수도인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일까?
세상살이 힘겨울 때마다 어디 절에나 들어가 숨어 살아볼까 하고, 마치 목가적인 생활을 꿈꾸듯 쉽게 얘기하던 일들이 부끄러워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 몫의 운명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나는 왜 갖지 못했을까? 남의 포켓 속에 든 행복을 훔쳐보며, 언제나 덤으로 더 가지고 싶은 욕망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모든 걸 버리고, 또 잊어버리겠노라고 산사를 찾아왔다가 며칠을 못 견디고 떠나는 사람들. 나도 결국 그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일 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뜻 깊은 얘기를 나누고 우리는 음력 열 엿새 달을 보러 금봉암으로 오마는 약속을 했다.
인적 끊긴 암자의 대나무 평상에 앉아 만월을 완상하는 것도 운치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속세 사람, 더군다나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켜줄 것인가 반신반의하면서도 우리는 정월 열 엿샛날 금봉암을 찾았다.
겨우내 산비탈을 굴러온 낙엽이 수북수북 쌓인 길을 밟고 금봉암에 들어서니 활짝 열린 문이 우리를 반긴다. 굴뚝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루는 이제 막 닦은 듯 윤기가 돈다.

'군불을 지폈으니 따뜻한 방에 쉬어 가십시오. 저희는 공양주라 저녁 지을 시간이 되어 내원사로 돌아갑니다.'
바삐 쓴 글씨 끝에는 묘수라는 법명이 적혀 있었다.
좀 일찍 올 걸 하는 후회와 함께 신발장 위를 보니 그 사이 또 두어 장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마음이 괴로워 들렀다가 하룻밤 묵고 갑니다.'
'우산 갖다 드리러 왔습니다. 스님 오시는 대로 부산에 들러 주십시오. 전화 0000.'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산 속.
주인을 향한 대화는 오로지 편지로만 가능할 뿐인데, 불확실한 수신에 기약 없는 발신을 믿는 그들은 얼마나 선량한 사람들일까?

매캐한 연기가 스며드는 금봉암 군불 땐 방에 앉아 우리는 차 한잔을 마셨고 촛불을 밝혔다.
밤이 깊어지자 물소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달빛은 기어이 촛불을 껐다.
가만히 암자를 벗어나며 나도 한 장의 편지를 써 두었다.
'티끌 세상 때를 조금이나마 벗고 갑니다. 세상살이 힘겨울 때마다 다시 오겠습니다.'

'名色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아침 까치소리  (0) 2005.07.14
감똘개 필 무렵  (0) 2005.07.14
봄눈  (0) 2005.07.14
매혹  (0) 2005.07.14
사양  (0) 2005.07.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