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을 가로지르는 첫 번째 다리, 태화교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주말 오후, 더군다나 휴가가 시작되는 7월 말이라 도심을 빠져나가는 차들로 거리는 만원이었다. 태화교를 건너야 공항버스를 탈텐데 신호등 앞에서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시간 5분, 차라리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게 빠르겠다 싶어 차를 버렸다. 쏟아지는 햇볕 속으로 태화강을 가로질러 달리며 평소 등산으로 단련된 다리에 자부심을 걸었다. 달려, 3분이면 될 거야... 아, 그러나 정말 태화교는 길고 길었다. 타임 아웃 직전의 골인처럼 공항 버스 출발 직전에 승강장에 도착했다. 5박6일의 일정이 험난하게 예감되는 순간이었다. 공항버스도 입석일 때가 있구나. 제주로 가는 여행객들로 버스 안은 콩나물 시루였다.
구름 위를 날아 제주 공항에 내렸더니 흰 모시 개량 한복을 맵시있게 차려입은 은주엄마가 나와 있다. 8년전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여자. 대학생 딸과 고3 아들을 데리고 관광 가이드로 생계를 유지하는, 제주 여자의 억척과 끈기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여자다.
제주의 첫인상은 가로수에서 느끼는 이국적 정취. 야자수는 물론이지만 키 큰 후박나무, 수형이 아름다운 담팔수, 육지에선 흔치않은 녹나무 등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것이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이들 나무 때문에 제주는 겨울이 더 신비스럽다고 한다.
협죽도(유도화)는 18년 전의 여름처럼 붉은 꽃을 잔뜩 달고 서 있다. 외국에서 협죽도는 독초로 알려져 있으며 야생동물이 내려오는 걸 막기 위해 고속도로 주변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잎은 버드나무요, 꽃은 복숭아라... 그래서 유도화란 이름이 붙었다지.
은주 엄마는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풍란을 키워 바람이 불 때마다 짙은 향기가 코로 스며들었다. 날아갈듯한 맵시의 하얀 풍란 꽃, 은주엄마의 하얀 모시한복 같다.
그녀가 소속된 렌트카 회사에서 크레도스를 빌려 사흘동안 제주를 한 바퀴 돌았다.
서쪽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돌아오는 여행은 순조로웠지만 무더운 날씨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18년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협재 앞바다는 선명한 초록이었다. 물 밑 모래 알갱이가 파도에 일렁이는 모습이 거울처럼 맑았던 그 바다... '꿈꾸는 섬'의 무대 비양도가 육지와 그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내 기억 속에는 꽤 멀었었는데.
협재 해수욕장 인근, 한림공원이 우리의 첫 관광지였다. 야자수 길을 걸어 문주란이 군락을 이룬 산책코스를 돌아 협재굴.쌍용굴을 통과했다. 용암 동굴이라 아기자기한 모습은 없다. 제주 특유의 구멍난 검은 돌, 제주석과 어우러진 분재들은 수령 2백년이 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노인들이 분재 앞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얘기하는 소릴 들었다. 나무는 수백 년을 사는데 인간은 백년 밖에 못 산다고 한탄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엔 백년도 너무 길다. 오래 산다고 좋으냐, 사람답게 사는 게 중요하지.
재암 민속마을에서 제주의 전통 가옥과 흑돼지를 보고, 아열대 식물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선인장, 잎 큰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덥다, 더워. 육지보다 더 덥네. 웬일이야?
육지에선 보기 드문 문주란이 키 낮은 돌담 아래 집집마다 웃고 있다. 참 아름다운 땅이야.
해안도로를 달려 수월봉을 찾아가는 데 이정표가 헛갈려 꽤 고생했다. 구불구불한 낭떠러지 해안도로를 후진해서 빠져나가기란... 더군다나 손에 익지도 않은 남의 차로...
저 멀리 차귀도가 바라보이는 수월봉은 널따란 초원과 해안 절벽이 인상적이었다. 거센 바람에 몸이 휩쓸린다. 평화로운 제주의 해안선과 붉은 밭, 까만 돌담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곳.
얕으막한 돌담 너머 일망무제의 푸른 바다가 영원으로 펼쳐진 곳, 제주의 서해안을 달려 송악산에 이르렀다. 가깝게는 가파도가, 멀리는 마라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넓은 초원과 구릉, 깍아지른 해안 절벽... 마주 보고 서 있는 형제섬도 인상적이었지만 건너편 창공에 우뚝 솟은 산방산이야 말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평야 한 가운데 갑자기 솟아오른 봉우리처럼 산방산은 저 홀로 우뚝하다. 어서 가자. 산방산으로....옛추억도 거기 있을 거야.
태풍주의보 때문에 용머리 해안으로 내려가지 못한 게 안타깝지만 산방굴사에서 물 한 모금 먹은 것으로 만족한다. 그 옛날 까마득해 보이던 해안선이 저리도 가까웠던가.
중문 관광단지는 그야말로 호텔 천국이다. 전국의 이름난 호텔 이름은 여기 다 와 있다. 하룻밤 숙박비가 최저 십수만원인데, 방이 없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잘 살았나...필드가 좋아 골프 치러 온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은주엄마가 적극 추천하던 주상절리 해안은 제주 해안의 백미였다. 현무암질 용암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곳. 용암이 물과 접촉해 식으면서 만들어진 육각형의 기둥이 참으로 특이했다.
제주의 지형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융기현상이다. 해식동, 해식애, 해식구가 융기의 증거로 제주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주상절리는 침상용암과 해식애가 잘 나타난 곳이라고 해야 할까. 바위 절벽에 와 부딪치는 파도가 정말 일품이었다.
60년만에 한번 꽃 피운다는 용설란. 쭉 뻗은 꽃대를 하늘로 세우고 양손 접시에 노란 꽃을 들고 있다. 생애의 마지막 안간힘으로 피워올린 노란 꽃. 저 꽃이 지고 나면 무시무시한 가시로 위압하던 용설란의 생애가 끝난다. 제 몸을 가장 뾰족한 가시에 찔리우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죽어간다는 가시나무새처럼. 가시를 찾아 날아가는 가시나무새, 꽃 피우기 위해 60년동안 가시를 키워가는 용설란... 생명의 아이러니가 여기도 있구나.
여행 첫날의 마지막 코스는 외돌개. 해안선 가까이 저 혼자 우뚝 선 바위가 옛날보다 키가 작아진 듯하다. 외돌개는 왕따바위라고 아들아이가 천진스럽게 표현한다.
서귀포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천지연 폭포를 보러 갔다. 담팔수가 자생하는 천지연 일대는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시민들로 활기를 띈다. 몸 길이 2미터까지 자란다는 무태장어가 사는 곳, 날씨 맑은 날에는 헤엄치는 모습을 육안으로 볼 수도 있다는데 검푸른 물이 두려워 감히 다가설 수가 없다. 웅장한 폭포, 그 아래 한가로이 노는 무태장어를 만나고 싶어 발뒤꿈치를 들어본다.
천지연 입구 이생진 시인의 싯귀가 돛에 새겨진 테우(뗏목)가 떠 있다. '실컷들 사랑하라 가슴이 있을 때. 죽은 뒤에도 네 사랑 간직할 가슴 있겠니' 정말 가슴에 닿는 말이다. 그래, 열정이 있을 때 실컷 사랑하자.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이야말로 뜨거운 생명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폭포는 실망스러웠다. 수량도 적었고 주변 경관이 너무 메말랐다. 그 옛날 내가 보았던 그 방대한 수량의 정방폭포는 어디로 갔을까? 해안선을 따라 돌며 그 옛날 바위 절벽에서 아슬아슬하게 폭포를 바라보던 자리를 찾아다녔다. 없다. 아무데도 없다. 파라다이스 호텔 해안 절벽 일대를 샅샅이 돌아보면서 옛 추억의 부재를 확인한다. 이승만의 별장이 있었다는 이 자리, 허니문하우스의 기억이 너무도 또렷한데 절벽 아래는 파도만 흉흉하다. 스물일곱 살, 내가 여기 왔을 때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가 바위였는데...
서귀포와 제주를 잇는 대표적인 도로, 제1횡단도로(5.16도로)를 따라 돈내코 유원지에 들렀다. 청명한 하늘 아래 의연하게 솟아있는 한라산의 위용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섬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바람과 구름을 온몸으로 다 막아주는 저 산, 한라산이 있기에 제주는 동서남북의 날씨와 기온이 다 다르다고 한다.
해발 300미터 이하에서 자라는 귤나무 등 해안식물대에서 2차 초지대, 낙엽 활엽수림대, 침엽수림대, 관목수림대까지 제주는 온갖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언젠가 한라산 겨울 등반 때 성판악 일대를 오르며 보았던 나무 이름이 '굴거리낭'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한라산을 동쪽으로 끼고 돌며 성판악을 지나 교래리로 들어섰다. 교래에서 삼굼부리로 가는 길, 울창한 삼나무 숲이 카렌다 속의 외국 풍경 같다. 길다란 이등변삼각형의 아름다운 수형이 길가에 도열한 모습이 이채롭다.
길 가 곳곳에 초보자를 위한 승마장이 있어 아들아이를 말에 태웠다. 손님 태우기에 길들여진 말은 어른,아이를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영물이었다. 천천히 코스를 돌아 손님을 안심시킨 뒤 뛰다시피 세 바퀴를 돌아 제 자리를 찾아오는 말. 길들여진다는 것의 서글픔을 느꼈다고나 할까. 나도 일상에 길들여져 살고 있구나. 편안한 것에 안주하고만 있구나.
산굼부리 분화구를 찾아간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폭렬공만으로 된 기생화산, 화산체가 거의 없는 마르형의 화구. 제주도에는 360여 개의 기생화산이 있는데, 산굼부리를 제외한 화산들은 대접을 엎어놓은 모양의 분석구로 비고가 100미터 내외지만, 산굼부리는 해발 약 400미터의 평지에 생긴 구멍이다. 깊이 100미터의 화구 안에는 붉가시나무, 서나무, 너도밤나무, 야생란, 양치류 등 420여 종의 식물과 노루, 오소리 등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고 한다.
성읍민속마을에 가서 제주도 토종 음식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300여 호의 마을 모두가 관광객을 위한 관람용 가옥인데, 뻔한 상술이 식상해서 정말 실망했다. 제주도의 전통 가옥과 생활풍습을 설명 듣고 억지로 차 한 잔을 얻어마시며 입맛이 썼다. 관광은 제주의 생명사업일텐데 이렇게 구태의연할 수가 있나.
그옛날 성읍에서 만났던 얼굴 까만 소년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뭍으로 갔을까, 아니면 그때처럼 이 마을 어디서 손님을 부르고 있을까.
도망치듯이 성읍을 빠져나와 성산으로 향한다. 섭지코지를 잠시 보고 신양해수욕장에 몸을 담갔다가 그 탁한 물에 실망하고 내일 아침 협재 해수욕장으로 가자고 결의했다.
성산포...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곳. 일출봉에서 내일 아침 뜨는 해를 보기로 하고 선착장에서 우도행 유람선을 탔다. 섬 속의 섬, 우도 8경을 기대하며 파도를 가르고 달린다.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를 뒤집어쓰고 으악 소리치는 사람들... 선장은 유머러스하게 우도를 안내한다.
해식동굴 속으로 유람선이 들어선다. 층층이 책을 쌓은 듯한 동굴벽 한가운데서 야호, 소리친다. 메아리치는 소리, 소리들. 물 속 바위들이 환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햇살. 우도를 반 바퀴 돌아 다시 성산 일출봉을 보여준 뒤 유람선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왔다. 일출봉 분화구 끝 왕관바위의 절묘한 아름다움, 절벽에 붙어 있는 푸른 잎들이 모두 풍란을 비롯한 야생란이라는 사실이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가마우지 새들이 해안가 바위에 앉아 사람들을 쳐다본다. 지금 누가 누굴 구경하는 거야? 가마우지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할 거야. 이 한심한 인간들아, 그 빼곡한 뱃전에서 내려와 바다에 발을 담가봐. 자연 속에 들어와서 자연을 느끼라구.
성산 일출봉이 눈 앞에 보이는 여관에서 짐을 풀었다. 빨래를 해서 온 방에 널어놓고 밤새 에어컨 켜놓고 잤다. 그 전날 서귀포에서 에어컨이 고장나 잠을 설쳤던 데 대한 설욕이다.
이튿날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나섰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데 나같이 박복한 사람이 일출을 보겠냐만, 하느님도 가끔 실수를 하실테니까 하고 기대한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모기들한테 즐거운 마음으로 헌혈하면서 일출을 기다렸지만, 무정하게도 구름이 동쪽 하늘의 절반이었다. 그 옛날 내가 보았던 원추리꽃이며 키 큰 풀들은 어디로 갔을까. 무심한 술패랭이가 이따금 눈에 띄고, 분화구 속은 이름 모를 잡목으로 우거져 있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정말 이게 아니었는데... 거센 바람에 옆으로 드러눕던 풀들은 자취도 없다. 옛날 기억은 정말 믿을 게 못되는구나. 노란 원추리도 사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환각이었을까.... 태풍주의보가 내렸던 그해 여름, 일출봉 정상은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심했다. 바람에 떠밀려 굴러 떨어질 뻔했던 그 자리가 여기였던가, 저기였던가.
내려오는 길에 수평선 멀리 빨간 물풍선처럼 떠 있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아, 허망한 일출이여. 그래, 기회란 기다리는 사람에겐 오지 않는 법이다. 스스로 찾아야 하고, 잡아야 하지.
다시 협재로 가자. 그 맑은 물에 몸을 담가야 제주에 온 보람이 있지 않겠나. 오조리 시인의 집을 지나 제주를 향해 차를 몬다. 내 추억의 증거를 찾으러 협재로 가자.
두 시간을 달려 협제, 그 아름다운 바다에 몸을 담갔다. 그러나 정말 무참하게도 그 바다 또한 옛바다가 아니었다. 물파래가 둥둥 떠다니는 바다 속, 유리같이 맑은 물은 어디로 갔을까. 안타까이 이리 저리 헤엄쳐 보아도 18년 전의 바다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의 저편에 있는 추억들은 희미하게 낡아가고, 재생의 가능성을 찾아온 나에게 제주는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다. 아름다운 날들은 아주 잠시라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거라고 말한다. 나는 18년전 아름다운 풍광을 잊지 못할 뿐이다. 함께 왔던 일행도 에피소드도 그립지 않다. 사진으로 남아있는 추억 속의 풍경이 그리울 뿐이다.
마지막 여행 코스로 제주 민속박물관을 골랐다. 은주 엄마를 불러내 가이드를 부탁했다.
광목천에 땡감으로 염색한 갈옷, 제주 사람들의 노동복이 지금은 생활한복으로 변했다. 특유의 질감과 색상. 5년쯤 지나면 그 옷도 희멀겋게 변한단다. 사랑이 변하듯이.
제주의 토속적인 생활 풍습과 자연환경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느낌으로 박물관을 둘러보며 내일 한라산을 오르자고 제의했다. 당초 예정에는 없던 거였지만, 돈네코에서 본 한라산의 모습에 반해 무조건 산에 가기로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리목에서 윗새오름까지는 완만한 돌길. 쭉쭉 뻗은 소사나무와 구상나무 아래 조릿대가 빼곡한 숲이다. 7.5Km를 걸어 해발 1750m의 윗새오름. 서늘한 바람 속에 한라산 정상이 줌렌즈를 당긴 것처럼 눈앞으로 확 다가온다. 아, 저 깎아지른 서북벽의 위용이여, 한 겨울 적설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찔한 절벽이라지. 오르고 싶다. 가서 만져보고 싶다. 내 다리로 오르고 싶다. 자연휴식년제로 묶여있는 길이 안타까울 뿐.
윗새오름에서 멋진 남자를 만났다. 24년동안 한라산에서만 살아온 신용만 씨. 제주 도청에 근무하는 사진사로 '한라산의 식물'같은 책을 내기도 했단다. 한라산 일대를 속속들이 누비며 생태계 파괴 현장이며 식물의 서식 상태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그. 얼마나 자유로울까. 혼자서 길 없는 길을 찾아 온 산을 누비겠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울 그 사람. 돈네코로 하산한다기에 따라가고 싶다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그는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다.
구상나무 군락지를 걸어 영실로 하산 코스를 잡는다. 전설 속에 살아있는 오백나한은 제주민의 척박했던 생활을 대변해준다.
그 옛날 오백 명의 아이들을 거느린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나간 뒤, 어머니는 솥에 물을 끓이며 솥전을 닦다가 발을 잘못 디뎌 솥안에 빠졌다. 형제들은 어머니가 빠진 줄도 모르고 죽을 끓여 먹었는데, 맨 나중에 먹은 막내가 어머니의 뼈를 발견했다. 아들들은 불효를 뉘우치며 오백나한이 되었다던가...
제주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한라산 등반, 정말 기분 좋았다. 지난 사흘 제주 여행을 다 주어도 오늘 하루 한라산 등반과는 바꾸지 않으리라. 그리고, 내 여기 다시 오리. 반드시 저 한라산 서북벽을 올라 정상에 서리. 그날을 기약하며 영실 주차장에 내려오니 반가운 글귀가 표지판에 써 있다.
"폭삭 속았수다."('수고 많이 하셨습니다'의 제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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