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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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여행기 (2)
IP : 211.210.224.30   글 작성 시각 : 2004.08.04 16:32:44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아무 데서나 잘 자는 사람이다.
산속이나 버스 안이나 등만 대면 자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지.
올 여름 여행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도 잠자리였다.
지도를 보며 여행하다가 밤이 되면 가까운 모텔을 찾곤 했는데
무더운 날씨 탓인지, 관광지 인심 탓인지 마음 편히 자보질 못했다.
단 하루, 조용하게 단잠을 잔 건 천관산 아래 천관모텔.
늦은 밤 낯선 길을 헤매다가 발견한 모텔이라
선택의 여지도 없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투숙객이 없어 조용하기만 했다.
하긴, 이렇게 찌는 날 등산객들이 있을 리가 있나.
뒷날 아침, 네 식구의 빨래를 손세탁해서 옥상 위에 널어놓고
“산에 갔다 와서 빨래 걷어 갈게요. 방은 지금 비우고 갑니다.”
호기롭게 출발, 호남의 5대 명산(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이라는
천관산을 올랐다. 해발 723m, 온 산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 부위에 삐죽삐죽 솟은 기암괴석들이 천자의 면류관 같다고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7~8년전 가이드 산행으로 따라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산도 물도 여전하다. 변한 게 있다면 내 마음이랄까?
성철스님의 유명한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깊이 생각한다.
사물의 본질을 똑바로 보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중생은 언제나 사물의 본질보다 그 이상의 의미를 찾곤 한다.
장천재에서 연대봉 가는 길은 숨이 탁 막히도록 가파르고 힘들다.
고온다습한 날씨가 여름 등반으로는 악조건이다.
양근석, 정원석 등 이름도 다양한 기암괴석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김유신의 옛 애인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천관산.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천관녀를 단념하기 어려웠던 김유신.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려고 했는데
어느날, 말 위에서 잠든 유신을 태우고 애마가 천관녀의 집 앞에 이르렀다.
잠이 깬 유신은 자신도 몰래 애마가 여자의 집에 이른 것을 알고
단칼에 말 머리를 베어버렸다고 한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너무 잔인한 얘기 아닌가?
한때 그리도 사랑했다면서 그리도 잔인하게 사랑을 끝내야 했을까?
‘깊이 사랑한 사람이 가장 깊은 상처를 준다.’

정상을 빤히 바라보면서 올라가다가 너무 더워서 웃통을 벗는다.
벗은 옷을 꽉 짜니 물이 주르르 흐른다. 온몸이 땀이다.
천관산 정상은 연대봉(723m)으로 봉수대 모양이 남아있다.
날씨 좋으면 남쪽으로 한라산이 신비하게 나타난다는데
구름 많은 하늘 탓인지 한라산은 보지 못했다.
북쪽으로 영암 월출산 무등산으로 추측되는 산이 보이긴 한다.
정상석 부근에는 색깔도 고운 원추리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다.
지친 산길에서 가끔 이런 야생화를 만나면 온몸에 생기가 돈다.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이와 같다.
좋은 친구의 말 한 마디, 사랑한다는 고백, 어린 자녀의 재롱.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삶이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길가에서 문득 만난 야생화처럼
참으로 작은 것들이 우리 마음에 큰 위로를 준다.
정상석 뒤에 몸을 가리고 세미누드로 기념촬영을 했다.
정상에서 환희대까지 4Km는 광활한 억새밭.
우리 동네(영남알프스) 신불평원이나 사자평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5만여 평의 억새밭이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장관을 이룬다고.
능선길을 걸으면서 영화 ‘가시나무새’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사랑했던 여인의 관을 묻으러 언덕 위를 걸어가는 신부님.
롱샷으로 잡은 라스트씬과 주제곡이 너무 슬퍼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환희대를 정점으로 우리는 하산길로 접어든다.
올라올 때부터 배가 아프다는 아들아이 때문에 발걸음이 바쁘다.
금강굴 쪽으로 내려와 원점회귀하니 4시간이 지났다.
긴 산행은 아니었지만 힘들었다. 역시 여름 산행은 체력이 있어야!
하산해서 빨래를 걷으러 천관모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빨랫줄 가득 널어두고 간 4식구의 옷가지가 사라져서 주인을 찾았더니,
“아까 소나기가 와서 걷어놨당께~”
아줌마는 4식구의 옷가지를 가지런히 개켜 방안에 두었다.
시골 인심이 이래서 좋구나. 방값도 싸고, 조용하고, 빨래까지 걷어주니.



초행길의 시골마을 ‘관산’읍내를 걸어 병원을 찾았다.
아들아이는 ‘급성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제 녹돈 삼겹살로 저녁 먹은 후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단다.
녀석의 평소 식성을 보건대 차돌도 거뜬하게 삭일텐데
역시 무더운 날씨의 강행군이 문제였나 보다.
그래도 최소한 열흘에서 2주 정도로 잡은 여행 스케줄을 바꿀 순 없다.
관산에서 영동으로 나와 강진의 고려청자도요지를 찾아간다.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다. 강진은 남도 답사 1번지란다.”
아이들에게 주지를 시켰지만 녀석들 표정은 심드렁하다.
도암만을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다가 경치 좋은 전망대에 차를 멈춘다.
풀을 베던 아낙들과 나그네 한 사람이 한가롭게 그늘을 즐기고 있다.
목포에서 얼음공장을 한다는 남자는 인력이 모자라
자신이 직접 8톤 트럭으로 얼음배달을 갔다 오는 길이란다.
해박한 지식에다 청산유수 같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말 들어보니 전국 곳곳 안다닌 데가 없을 정도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얼굴에 새까만 눈썹이 평범한 사람 같지가 않다.
팔영산 산신령처럼 그 또한 ‘목포의 조르바’일까?
회사와 집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샐러리맨에 비하면
그들의 사유는 얼마나 깊고 또 넓을까? 조금은 부럽고 질투난다.
비행기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은 비행기의 빠르기만큼
세계가 좁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의 행동반경이 생각의 틀을 이렇게 바꾸어놓는 것이다.

고려청자도요지로 가는 길은 강, 바다, 산이 조화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유홍준 교수가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강진을 '남도답사 1번지‘로 명명한 이후
강진은 자연스럽게 서정시의 고향이며 남도 답사의 대표격이 되었다.
강진군 내 입간판이며 프랭카드, 조형물에 모두 ‘남도답사 1번지’를
강조하고 있어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전라도 지방은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다르다.
개발 위주가 아닌 보존 위주, 파괴 위주가 아닌 보호 위주.
세계적인 문화유산 반구대 암각화를 놓고 울산시가 벌이고 있는
사업을 보면 전라도 쪽과 많이 비교된다.
강진에서 마량항 쪽으로 바다를 끼고 30여분 달리면 고려청자도요지와 청자 박물관이 있다..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우리나라 중세 미술을 대표하는
고려청자의 생산지로서 가마터만 200여 기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국보급, 보물급 고려청자 40여 점이 모두
강진산이라니 우리나라 도자기 생산의 본바닥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은은한 비취색 몸매에 유려한 선. 화려한 듯하면서도 튀지 않는 매력.
강진에서 청자 문화가 유난히 발달했던 이유는 여러가지
사회적 여건과 자연환경 덕분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통일신라 후기의 해상 교통 발달로 인해
중국의 청자 문화 도입이 빨랐으며 수송로가 트여있었다.
강진 일대에서는 도자기 재료인 고령토가 많이 나왔고
산이 많아 도자기를 구울 때 쓰는 연료를 조달할 수 있었다.
청자박물관에 들러 청자의 역사와 제작과정을 둘러보고 옛가마터에서
불 때는 모습도 구경했다. 초벌구이가 끝나고 유약을 바른 도자기들이
가마 속에서 활활 타고 있었다. 8월초 시작되는 강진청자문화제 때
가마 속의 작품들을 꺼내 경매에 붙일 거라고 한다.
코 앞에 다가온 축제 준비로 강진군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다.
여행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들러보고 싶은 곳이다.
‘청자골 강진’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준 고장, 강진이 마음에 든다.


강진 읍내로 나와 모텔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무슨 체육대회가 있다나 해서 읍내 모텔에 방이 없다.
영랑생가 근처 골목에서 방 하나를 잡고 쓰러지듯 누웠다.
무더위에 피곤이 겹친 데다 아픈 아이가 있으니 신경이 날카롭다.
아들은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한다. 허리를 구부리고 펴질 못한다.
아무래도 여행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땅끝 보길도까지 가자니 불안하다.
의료시설도 어떤지 모르겠고, 섬에 들어가서 무슨 일이 생길지...
“내일도 계속 아프면 집으로 돌아간다, 오케이?”
아빠가 결단을 내린다. 나는 마지못해 수긍한다.
얼마나 별렀던 여행인데 4박5일만에 돌아가다니? 속상하다.
“너희들은 아빠랑 집에 가고, 엄마 혼자 여행 좀 다니다 돌아가면 안될까?”
나 혼자라도 당초 예정 코스대로 다 밟아보고 싶다.
두륜산, 보길도, 진도, 월출산, 운주사, 담양....
입사 20년만에 모처럼 긴 휴가를 받았는데 이렇게 돌아갈 순 없지.
“4년만 기다려. 그때는 진수가 대학교 가니까 우리끼리 다시 오자.”
어린아이 달래듯 남편이 위로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어둡다.
켜면 시끄럽고, 끄면 더운 구닥다리 에어컨과 함께 하룻밤을 자고
뒷날 영랑생가를 보러 갔다.
‘북에는 김소월, 남에는 김영랑’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영랑은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시인이다.
1930년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했고
‘모란이 피기까지는’등의 시로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토속적인 언어로 순수 서정시의 경지를 개척한 영랑(김윤식).
그의 생가는 본채와 사랑채 2동이 남아있는데 뜨락에 모란이 풍성하다.
상량문을 보니 건립연대는 1906년, 거의 100년을 버텨온 건물이다.
사랑채에 영랑이 시를 쓰는 모습이 실물같은 인형으로 앉아 있다.
유명 작가의 생가를 보존하고 그의 업적을 홍보하는 건 좋은 일이다.
이런 일 역시 문화적 마인드가 없이는 곤란하다.
외국에는 워싱턴 스퀘어나 링컨 센터처럼 유명 정치인의 이름을 딴
시설물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것 같다.
하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 있어야 말이지.
영랑생가에서 링컨센타로... 내가 비약이 너무 심했나?
“아무리 네가 배가 아파도 강진에 온 이상 다산초당은 봐야 안되겠니?”
백련사 가는 길에 아들아이를 달랜다.
절입구의 동백숲이 이채로운 백련사는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백련사 동백이 보통 동백인가? 높이 5미터 넘는 건 보통이고
10여미터에 가까운 거목도 있다.
백련사 주위에 자라는 동백이 1500그루 이상이라니 봄날이 얼마나 황홀할까?
하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 백련사에는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만덕산 기슭의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불과 3Km,
동백나무 숲을 지나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가면
정약용이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왕래했던 흔적을 느낄 수 있을까?
아이들만 아니라면 걸어서 다산초당까지 갔다오련만... 안타깝다.

사는 곳 정처없이 안개노을 따라다니는 몸
더구나 다산이야 골짜기마다 차나무로다
하늘 멀리 바닷가 섬에는 때때로 돛이 뜨고
봄이 깊은 담장 안에는 여기저기 꽃이로세
(중략)
못과 누대 초라해도 이만하면 살만하지 <정약용>

정약용이 다산초당에서 지내면서 처음 지었다는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이 초당을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손수 못을 파고 꽃나무를 심고, 물을 끌어다 폭포수를 만들고
동암, 서암 2개의 암자까지 만들었다.
외가인 해남 윤씨들의 정자였던 이 초당에서
다산은 강진 유배생활 18년 중 10년을 보냈다.
10년동안 지은 책만도 목민심서를 비롯해 500여권이라니
요새 말로 하자면 감옥살이 하면서 저서를 낸 게 아닌가?
귀양살이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한세상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그는 후학을 가르치고
책을 썼을 것이다. 참으로 긍정적인 사람이다.
입구에서 다산초당까지 가는 길이 산길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반질반질 시멘트를 바르거나 인조계단을 깔지 않아서 다행이다.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한답시고 문화재 주변마다 시멘트를 바르는 게
나는 싫다. 문화재 복원을 하더라도 되도록이면 옛것을 남겼으면 싶다.
흙을 밟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옛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어야지
차를 타고 와서 몇 발자국만 걸어 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가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관심이 있으면 깊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볼수 있다는 말이다.
눈 앞에 있어도 아는 게 없으면 보지 못한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대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면 여태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떤 대상을 보면
보는 안목이 달라지고 생각의 깊이가 달라진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 사랑하면 저절로 보인다.

<2004년 8월3일>

출처 : 비공개
글쓴이 : 익명회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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