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우리 땅 맞어?"
썬플라워호 선상에서 독도를 바라보며 아주 단순한 의구심이 들었다. 목마른 사람 앞에서 '물 줄까?' 깐죽대는 것처럼 독도는 나를 약오르게 했다. 눈 앞에 두고도 갈 수 없다니...
포항에서 뱃길 217Km 울릉도, 울릉도에서 다시 82Km를 달려 독도- 무려 네시간을 쾌속선으로 항진해 마침내 닿은 그 섬에서 나는 분노와 허무를 느꼈다. 인터넷에서 읽은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닌 13가지 이유'가 생각났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우기던 그 가수는 한때 출국 금지를 당하고, 노래마저 금지곡이 됐다던가?
깍아 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섬 독도에서 약소국의 비애를 안고 울릉도로 돌아왔다. 웃통 벗은 독도수비대가 어쩐지 서글퍼 보였고, 후미 갑판의 기념촬영도 심드렁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독도는 '허가'를 받아야 발 디딜 수 있는 '우리 땅'이었다.
독도 앞 해상에서 고래 두 마리를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고래잡이가 곧 허용된다고 하더니 과연, 내 눈앞에 뛰노는 고래를 본 것이다. 장생포항에서 포경이 재개되길 기다리는 고래잡이 어선이 생각난다. 참고래, 귀신고래처럼 큰 놈이 아니라도 동해안에 고래가 돌아온 건 얼마나 다행인가?
독도에 대한 나의 배신감은 이틑날 울릉도가 말끔하게 씻어주었다.
포항에서 망망대해를 두시간 넘게 달리던 끝에 아스라히 수평선 끝으로 떠오르던 섬, 울릉도의 첫인상은 수반 위에 올려진 명품 수석 한점이었다. 첫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성인봉이며, 정상에서 가파르게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줌렌즈를 당긴 듯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오징어 말리는 냄새가 비릿하게 풍기는 도동 항구. 배에서 내리면서 나의 첫 마디는 감탄사였다. 어쩌면 물빛이 그렇게 맑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제주도나 홍도에 비길 게 못된다.
집어등을 단 오징어배가 수십척 정박해있는데도 부두에는 그 흔한 기름띠 하나 없었고, 물 속이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흙 한점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린 향나무가 육지 산의 소나무처럼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아름드리 후박나무와 바위 틈에 올망졸망 붙어있는 해국이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해안 절벽으로 길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미쳤을까? 기묘한 형상의 바위를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면 용암이 흘러내린 듯한 해벽이 막아서고, 그 구비를 돌아가면 신비스러운 바위 동굴. 바위 문을 지나다 물 속에서 커다란 거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와 등에 해초를 잔뜩 달고 이제 막 뭍으로 오르려고 머리를 내민 거북 형상의 돌이었다.
군데군데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오징어 내장을 미끼로 손바닥만한 전갱어를 낚아 올리는 사람, 제자리에서 회를 떠 먹는 사람,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는 사람...
뒷날 새벽 성인봉 등반에 나섰다. 해발 984m, 도동항에서 4.3Km 거리. 육지의 산들과는 달리 해발 제로(0)에서 시작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올랐다. 잘 정비된 등산로 좌우로 울창한 활엽수, 그 아래엔 고비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성인봉에 자생한다는 '명이'를 찾아 이리저리 둘러본다. 100여년 전, 울릉도에 처음 온 사람들이 그것을 먹고 명을 이었다 해서 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산마늘 종류라고 한다. 넓적한 잎을 절여서 장아찌처럼 먹는데 그 맛과 향이 참으로 독특하다.
생각보다 순탄한 길이라 2시간만에 정상에 닿았다. 일곱시, 해는 하늘 높이 떠올랐고,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끔 착시를 일으켜 바다로 빠진다더니 그 말이 실감난다. 바다를 하늘로 착각해 투신하다니... 아, 얼마나 황홀한 실종인가?
하산길은 나리분지 쪽으로 잡았다. 5월까지 잔설이 남아있다는 나리분지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울릉도를 반 바퀴 돌았다. 평평한 길은 거의 없고 산간도로를 개척해 놓았는데 구절양장 휘어져 돌아가는 길을 운전기사는 곡예에 가까운 솜씨로 차를 몰았다.
차창 밖 경치를 볼 욕심으로 맨 앞자리에 앉았던 나는 태화령을 넘어가면서 거의 졸도할 뻔했다. 차가 급경사 내리막으로 쏟아지는데 얼마나 경사가 심한지 급전직하로 추락할까봐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산드라블록이 출연했던 영화 '스피드'보다 더 아슬아슬했다. 내리막 체감 경사도는 75도쯤, 청룡열차보다 무섭고 바이킹보다 아찔했다.
오후엔 유람선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나는 선장이 자랑하는 울릉도 3경보다 단 1세대가 살고 있다는 죽도가 마음에 들었다. 고립의 자유를 선택한 그는 누구일까? 1만 여명이 살고 있다는 울릉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와 살고있는 그의 삶이 궁금하다.
해안선을 따라 기기묘묘한 바위가 늘어선 울릉도의 풍광은 홍도보다 해벽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섬마다 독특한 미학과 정서가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포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까지 한 시간 이상이 남아서 바다수영을 하기로 했다. 오징어회를 못먹을 지언정 저 맑은 물에 어떻게 몸을 담그지 않을 것인가? 수심 10m 이상 환하게 보이는 물 속에는 해초가 아름답게 우거지고 이름 모를 고기들이 떼지어 다녔다.
잠수 교육 받은 덕분에 물속 깊숙이 들어가 해저의 신비를 즐겼다. 이럴줄 알았으면 스노클(스킨다이빙 용 숨대롱)을 갖고 올걸. 수경만 끼고 바다 속을 구경하자니 숨이 짧다.
배영으로 물 위에 둥둥 떠서 울릉도의 하늘을 본다. 누군가 노래했지 '저 바다에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부러운 듯 쳐다본다. 들어와 보세요. 물이 참 따뜻해요!
수평선으로 헤엄쳐 나가며 마지막 여름 바다의 낭만을 온몸으로 느꼈던 울릉도 여행. 덕분에 돌아가는 배가 지루하지 않았다. 늦여름, 섬 여행에서 한아름 행복을 안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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