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저건 무슨 글자야?"
"사.원.모.집."
"그게 무슨 뜻이야?"
"나도 몰라."
"그럼 저건?"
"옷 수선."
"수선이 뭐야?"
"모올라."
"왜 몰라?"
"모르니까 모르지."
재경이는 동생 재민이와 손을 붙잡고 가다가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두 아이 앞에 있는 알림판에는 광고 딱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재민이는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제 누나가 신기해서인지 눈에 뜨는 글자마다 모조리 읽어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엔 가게 간판을 읽느라 한창 신이 났던 재경이는 매일 똑같은 동네 간판을 읽자니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알림판에 붙어었는 글자들을 읽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벽에 붙어있는 글자들은 재경이가 뜻을 알수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에는 아이를 잃어버리고 다니는 어른들이 많은지 군데군데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는 종이도 붙어있었습니다.
"누나, 저건 약국이야 그렇지?"
재민이는 가끔 눈에 익은 간판을 가리키며 어림짐작으로 글자를 알아맞추기도 했습니다.
"맞아, 우리 재민이가 최고야."
재경이가 이렇게 추켜세우니까 재민이는 우쭐우쭐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만치 시장 입구가 보였습니다.
"엄마다!"
재민이는 엄마를 보는 순간 쌩하고 누나를 앞질러 갔습니다. 재경이도 질세라 뒤따라 뛰었습니다.
"왜 또 나왔니? 엄마 금방 들어갈텐데.."
엄마는 시장 바닥에 펴놓았던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습니다. 양말, 속옷, 손수건, 장갑... 엄마의 보따리 속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들어갑니다. 뭉치면 한보따리지만 바닥에 펴놓으면 커다란 가게가 되곤 하는 엄마의 물건들입니다.
"엄마, 오늘도 아빠 못만났어요?"
엄마가 보따리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경이는 어제 불어본 말을 또 물어보았습니다. 그 말은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물어본 말이었습니다.
몸이 아파 늘 집안에 누워계시던 아빠가 집을 나가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가신 뒤 엄마는 두 아이를 놔두고 아빠를 찾기 위해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집 저집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혹시라도 아빠를 만날까 했던 엄마의 기대는 번번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머리 속에는 시장이 떠올랐습닏.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아빠도 언젠가는 한번쯤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는 떠돌이 장사를 그만두고 시장에다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스빈다.
그렇지만 오늘도 엄마는 어빠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빠랑 숨바꼭질하면 술래가 정말 혼날거야."
재경이는 아무도 몰래 꽁꽁 숨어버린 아빠가 얄미운 생각이 들어 말했습니다.
온가족이 술래가 되어 아빠를 찾고 있지만 아빠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엄마 술래는 아빠를 꼭 찾아내고 말걸"
엄마는 싱긋 웃었습니다. 엄마는 집 나간 아빠가 조금도 밉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자, 이제 그만 자야지."
엄마가 이불을 깔자 두 아이는 엄마의 양쪽 옆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엄마, 나보고 누워."
"아니야, 멈아 나보고 누워."
잘때마다 두 아이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실갱이를 했습니다. 서로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자려고 이불 속에서 야단들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투면 엄마는 천정만 보고 잘테다."
그러면 두 아이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습니다.
"엄마, 오늘은 내가 텔레비전을 볼 차례야."
재경이는 엄마가 재민이쪽으로 누워 있으니까 제 쪽으로 돌아눕도록 엄마의 젖가습에 손을 넣으며 말했습니다.
"텔레비전이라니?"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어젯밤에 잘적에는 내가 라디오만 들었잖아요. "
그래도 무슨 소린지 몰라 엄마는 갸우뚱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자는 날은 내가 텔레비젼 보는 날이고, 재민이 보고 자는 날은 라디오 듣는 날이래요."
재경이의 말에 엄마는 호호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텔레비전은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지만 라디오는 듣기만 하지 볼 수는 없습니다. 엄마가 가운데서 한쪽으로 돌아누우면 한 사람은 재미있는 텔레비전을 볼수 있지만 한 사람은 라디오만 듣게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엄마가 너희들에게 재미있는 텔레비전을 공평하게 보여주어야겠구나."
엄마는 두 아이의 손을 한데 모두어 꼭 잡았습니다.
다음날,
산동네는 언제나처럼 햇님이 가장 먼저 놀러와서 따스한 햇살로 아이들을 불러냈습니다.
"누나, 오늘은 일찍 오는거지?"
재경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하루종일 혼자 놀게되는 재밍이는 심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고무줄놀이 안하고 그냥 올게."
동생과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을 하고 재경이는 언덕길을 내려갔습니다.
오늘은 재경이가 좋아하는 미술시간이 들어있습니다.
"오늘은 아빠의 얼굴을 그려보도록 하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아이들에게 도화지를 한장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재경이는 제가 좋아하는 노란 크레파스를 집어들었습니다.
"잘 그린 그림은 벽에다 붙여줄게."
선생님은 아이들 옆을 지나다니시며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셨습니다.
교실 뒷벽에는 지난번에 아이들이 그린 엄마의 얼굴이 붙어있었습니다.
재경이는 열심히 아빠를 그립니다.
아빠를 못본지도 1년이 지났지만 재경이는 아빠의 모습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술 취한 아빠의 얼굴을 온통 빨간 크레파스로 색칠을 했고 또 어떤 아이는 아빠의 얼굴에 커다란 안경을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선생님을 졸라 교실 벽에다 제 그림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재경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아빠의 그림을 가만히 가지고만 있었습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재경이는 가장 먼저 교실문은 나섰습니다. 어쩐지 재경이는 굉장히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나, 누나!"
재민이가 구르듯이 달려나오며 누나를 반겼습니다.
재경이는 미술 시간에 그린 아빠의 그림을 동생에게 펴보였습니다.
"아빠다. 우리 아빠다!"
재경이는 그 그림 위에다 검정 크레파스로 이렇게 썼습니다.
"아빠를 찾습니다."
재민이는 금방 꽈리눈이 되어 제 누나를 쳐다봅니다.
"재민아, 저어기 벽에다 이걸 붙이러 가자."
"정말?"
재민이는 역시 누나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는 큰길가의 알림판에다 아빠의 얼굴을 붙였습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 옆에 나란히 '아빠를 찾습니다.'크레파스로 그려붙인 아빠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오가는 사람 모두 한번씩 아빠를 쳐다봅니다.
두 아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활짝 웃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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