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가 요양병원에 실려 갔다.

절대 요양병원에는 안 가겠다고 하더니 아사(餓死) 직전에 발견되어 입원했다.

남편이 있지만 소 닭 보듯 지내다 보니 아내를 보살피지 못했고, 자식도 둘이나 있지만 객지에 있으니 노모를 자주 보살필 수 없었나보다.

아들에게 발견될 당시 노부부의 상태는 심각했다.

고관절 수술 후 기어다니며 겨우 밥만 끓여먹던 시누이가 점차 운신을 못하게 되자 두 부부는 같이 밥을 굶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며칠을 굶었는지 퀭한 눈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어머니와 멀뚱멀뚱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보고

아들은 전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한다.

 

평생 앙앙불락이었던 부모였지만 어머니가 아프니 아버지가 돌봐주겠지 생각하고 아들은 햇반을 사놓고 갔다고 한다.

다급하면 전자렌지에 돌려서 드시라고 몇 번을 당부하면서.

그러나 아버지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손도까딱하지 않은 채 어머니와 같이 굶고 있었다.

하마터면 저녁 아홉시 뉴스에 나올 뻔했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70대 노부부 아사 상태로 사망, 한 달 만에 발견’ 이런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몸이 불편하고, 한 사람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두 부부.

평소 사이가 좋았다면 측은지심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여생을 보내고 있을텐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하긴 재작년에 시누이가 입원했을 때 남편이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집에 와서 밥 해야지 왜 병원에 누워있어?”였다니,

남편의 뇌리에 새겨진 아내는 ‘밥 해주는 사람’일 뿐이었던 것일까.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평생 객지로 떠돌면서 가끔 한 번씩 집에 들르는 정도였는데,

올 때마다 어머니와 싸우고 밥상을 뒤집어엎는 폭군이었다. 딸도 아버지가 무서워 빨리 집을 떠나고 싶어 일찍 결혼해버렸다.

 

불우한 가정이었지만 조카들은 곧게 자라 좋은 배필을 만났고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부모에게 별 일만 없으면 중산층의 반열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권에 들어 있었다.

조카들은 틈틈이 부모를 찾아와 문안을 확인했지만 노부부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그렇게 심각한줄 몰랐다고 한다.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는 아내 곁에서 밥 달라고 조르는 남편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자 아들은 혼자 남은 아버지를 어쩔수 없이 다른 요양병원에 맡겼다.

두 부부가 각기 다른 병원에서 서로를 원망하며 지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아들에게 간곡하게 이르는 말이

“너희 아버지가 죽어도 절대 내게 알리지 마라.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라.”

 

건강 상태를 보면 자신이 더 위태한데도 시누이는 남편이 먼저 죽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다리 관절이 굳어 바로 펴지도 못하면서,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미이라처럼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으면서.

장기 요양에 들어간 부모를 두고 조카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몇 년을 끌지, 간병비가 얼마나 들지,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 학비며 부모 간병비를 생각하니 앞날이 막막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조카들은 살던 집을 파는 게 어떠냐고 어머니에게 넌지시 여쭈었다.

낡고 허름한 주택이라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삭아 내릴테니 처분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비추었다.

 

시누이는 절대로 그 집을 팔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퇴원해서 그 집에 다시 들어가 살겠다는 것이다.

평생 그 집 한 채 간수하려고 얼마나 피나게 살았는지 자식들은 모른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그 집 못 판다. 내가 죽어도 그 집에서 죽을 거다. 그런 심산이었을까.

노욕(老慾)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몸져 누운채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재물에 집착하는 시누이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밀려든다.

자식들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지도 못하는 걸까. 몸이 아프면 판단력도 흐려지는 걸까. 목숨에 대한 애착이 이토록 집요한 것일까.

 

시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만 몇 마디 남기셨고, 시아버님도 돌아가시기 사흘 전까지 일을 하셨다.

두 분 모두 지병이 있었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편히 사시던 분이었다.

노탐이나 노욕을 모르고,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순명(順命)하고 사시던 분들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사셨으니 가는 길도 편안하셨다. 어느 자식에게도 크게 걱정 끼치지 않았고, 당신들 스스로의 삶을 깨끗하게 마무리하셨다.

기저귀를 갈아 차며 명줄을 이어가는 시누이에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사시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지금 그 말이 환자의 귀에 들리겠는가? 다 내려놓고 살아야 편안하게 가신다고 말하면 벼락같이 화를 내실 게 틀림없다.

내가 왜 죽어? 난 아직 멀었어.

가끔 시누이가 입원한 병실에 들러본다.

위생과 청결을 우선 순위에 놓아도 병실에 들어서면 환자들 특유의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병마를 받아들이고 천진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의 표정을 발견하는 날은 마음이 가볍다.

탁 놓아버린 사람의 자유로운 마음과 무구한 표정. 시누이도 머지않아 그런 마음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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