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베트남,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훌쩍 떠나고싶어 갔는데 여행 내내 마음이 즐겁지는 못했습니다.

불행한 역사를 가진 두 나라의 모습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밀림 속에 잠들어있던 신화, 크메르의 미스터리를 사진으로 만나볼까요?

 

 

앙코르톰 남문을 통과하여 가장 먼저 만난 바이욘 사원.

12세기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립된 불교사원이죠.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 왕국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캄보디아의 광개토대왕입니다.

그는 참족(베트남)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직계가 아님에도 왕권을 이어받았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자신의 권력을 수호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겠죠.

 

 

힌두교를 믿던 사회에  대승불교를 장려한 자야바르만 7세는

중생구제, 빈민 구제 정책을 펴면서 '내가 곧 관세음보살이다"라고 했답니다.

크메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유산과 치적을 남긴 지도자.

바이욘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하노이에서 캄보디아 시엠립까지 비행기로 3시간.

러시아산 쌍발 여객기는 와당탕거리며 활주로를 내달렸습니다.

찜통같은 날씨에 화장실 냄새 풀풀 나는 비행기...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그러나 정글 속에서 만난  사원들은 그 모든 고통을 상쇄시켜주었습니다.

 

 

코끼리 테라스.

국빈이 오면 영접하던 곳이라네요.

현지 낮 기온 36도~38도... 국빈 대접 받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대요.

타 죽는줄 알았습니다.

 

 

열대무화과나무(스펑나무)가 휘감고 있는 따프롬사원.

 

 

 

 

거대한 뿌리가 휘감고 있는 것은 크메르인의 잊혀진 역사일지도...

 

 

 

 

장엄한 신비, 앙코르와트.

앙코르의 다른 사원들은 정문이 동쪽인데 반해

앙코르와트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캄보디아나 우리나라나 동쪽은 양이자 생명,

서쪽은 음이자 죽음이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사원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수리야는 힌두교에서 태양신을 의미한다.

태양신인 수리야바르만이 죽었으니 당연히 정문은

태양신이 가신 서쪽이다.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있는 스님들.

스님, 덥지 않으세요?

 

 

 

앙코르와트의 긴 회랑.

 

 

 

호텔 로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

실로폰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음악이었죠.

 

 

 

원달러~ 원달러~ 피리를 파는 캄보디아 소녀.

 

 

 

톤레삽 호수의 아이들.

 

 

 

동양 최대의 호수 톤레삽. 비행기에서 보면 드넓은

황토 벌판 같습니다.

물 속에서 배를 끌고있는 아이들.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도 분노도 없습니다.

천진난만 순진무구!!!

 

 

 

누가 이 소년의 팔을 가져갔을까요?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들.

캄보디아 극빈층과 베트남 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두 민족이 미묘한 자존심 싸움을 한다네요. 참 눈물겨운 자존심입니다.

 

 

 

킬링필드의 잔해들.

폴포트 정권은 170만명의 양민들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손바닥에 굳은 살이 없다는 이유로...

당시 캄보디아 국민들 7명 중에 1명이 죽었답니다.

 

 

 

시엠립 민속촌 풍경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구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ㅠㅠㅠ

출처 : 세월-영남알프스및 울산근교산
글쓴이 : 이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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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을 꼬박새고 새벽 6시 개표소에 당선증을 받으러 갔다.

동구 출마자 중 최다득표(46.1%)로 당선된 우리 후보!

당선증을 받는 후보의 사진을 찍는데 손이 떨렸다.

 

두 번 다시 선거판에 뛰어드는 일은 없겠지만,

지난 2달의 경험은 나에게 즐거운 해프닝이었다.

내가 후보자를 도운 이유는 무엇보다 상품이 좋았기 때문이고,

여성이었기 때문이고, 그녀가 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2달 선거 캠프의 에피소드 몇 개를 남겨본다.


<<응원가를 로고송으로>>

‘무조건’이란 노래가 5.31선거 로고송으로 인기 짱이었다.

유권자가 부르시면 무조건 달려가겠다, 무조건 나를 찍어달라...

뭐 대충 그런 내용이다.

타 후보보다 특이하면서도 친밀하게 어필할 수 있는 노래가 뭘까?

수많은 노래 중에 거북이의 ‘빙고’를 물망에 올려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가사를 고쳐놓고 보니 아무래도 다른 후보가 쓸 것 같아서 찝찝했다.

인터넷을 써핑하다가 마침내 응원가 한곡을 뽑았다.

월드컵 분위기에 맞춰 응원가를 개사해 로고송을 만든 것이다.

힘찬 리듬에 기호와 이름이 반복적으로 들어가 마음에 들었다.

온 동네 아이들이 우리 후보 응원가를 부르고 다녔다. 대성공!!!


<<현수막 전쟁>>

후보들의 주문이 일시에 밀리는 바람에 현수막 기계가 서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현수막을 기다리고, 게시장소 선점을 위해 눈치작전.

5월18일 0시부터 거리에 현수막을 달수 있는데,

거의 모든 후보가 회사정문 근처와 시장주변을 노리고 있었다.

누가 빨리 좋은 자리에 현수막을 다느냐.

초저녁부터 교대로 자리 지키기 신경전 끝에 새벽 2시에 작업 끝.

5월18일 아침 목 좋은 자리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사이좋게 걸려있었다. 많은 곳은 무려 8개씩이나!


<<선거전의 꽃, 유세차량>>

1톤 트럭을 개조해 유세차량을 만드는데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후보의 친척이 뼈대를 만들어준다기에 믿고 기다렸더니

내가 그린 도면대로 만들기는 어렵다나?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머리를 짜낸 끝에

목재소에 가서 합판과 목재를 사서 목공소에 맡겼다.

(목재로 유세차량 뼈대 만든 후보는 우리 밖에 없더라.)

다음 공정은 후보자 사진 등을 실사 코팅해서 뼈대에 붙이는 작업.

그런데 그 공정이 왜 그리 오래 걸리는지 애간장이 탔다.

내일 아침부터 당장 동네를 돌며 거리유세를 해야하는데

전날 저녁까지 유세차가 완성되지 않았다. (꼴까닥 넘어갈 뻔했다.)


<<홍보물>>

홍보물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는데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낡았다는 것을. 내가 너무 고답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변화에 앞서 가면 살아남고, 변화에 역행하면 도태된다.

나는 시류를 무시하고 내 방식으로 문안과 디자인을 만들었다.

집으로 배달된 타 후보의 홍보물을 보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모든 광고에서 비주얼 디자인이 대세다!


<<신경전>>

본격적인 선거전에 접어들자 상대 후보 진영에서 태클을 걸어왔다.

우리 후보의 발언에 대해 사무실을 항의방문(?)하더니

하루는 길거리에서 그쪽 사무장이 나에게 하는 말,

“그쪽 유세차량에 스피커가 4개나 달린 거 불법 아니오?

우리가 고발하기 전에 철거하는 게 좋을 것이오.“

아니나 다를까, 뒷날 단속반에서 사진을 찍고 차를 발칵 뒤집었다.

선거법상 스피커가 1개라야 된다나?

명함 주다가 고발당하고 사진 찍혀 단속반에게 항의했더니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점잖게(?) 경고했다.

“바쁘실텐데 선관위에 한번 오시고 싶습니까?”


<<유권자는 왕이다!>>

어느 날 유권자를 자칭하는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후보 명함을 돌리고 싶으니 100장만 갖다 주세요.”

“감사합니다만, 선거법상 후보자 외는 명함을 못돌리는데요.”

그녀는 전화를 탁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전화해서 하는 말,

“내가 후보랑 잘 아는 사이라니까요.

후보가 요새 우리 가게에 통 안와서 전화했어요.

내 표가 100개는 돼요. 후보에게 전해줘요. 명함 가져오라고.“

아예 으름장을 놓는다. 이걸 어떻게 달래야 하나?

“그러시지 말고 저희 사무실에 한번 나오시면 어떨까요?”

“알았다!!!”

또 전화를 끊는다. 잠시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야, 이년아! 너 나이가 몇 살이야? 말하는 게 그게 뭐야?”

“..... 제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요?”

“너같은 년은 후보에게 말해서 모가지를 잘라버려야해!”

“............!!!!!”

“너같은 년 때문에 표 떨어진단 말이야. 알았어?”

살이 벌벌 떨렸다. 가슴이 두근두근, 간이 콩닥콩닥.

(에휴, 내가 어쩌다가 선거판에 뛰어들었던고 ㅠㅠㅠㅠ)

 

<<열심히 하겠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절해보긴 처음이다.

당초 계획은 필드에 안나가고 사무실에만 있으려고 했는데

지역구 범위에 비해 운동원 숫자가 너무 적어 현장에 나갔다.

새벽 6시30분부터 1시간반동안 출근인사,

저녁 6시부터 2시간동안 퇴근인사.

새벽같이 일어나 유권자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건 괜찮지만

퇴근길 회사 정문 앞에서 인사하기는 정말 고역이었다.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작업복들과 오토바이의 행렬.

신호등을 기다리는 오토바이에서는 시커먼 매연이 쏟아지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내딴엔 최선을 다해 웃음을 지었는데

후보자가 나중에 말했다.

“언니, 아무래도 언니한테는 체질이 아닌가봐!”


새벽같이 집에서 나와야 하니 우리 식구들 건사가 말씀 아니었다.

남편은 6시반에 아들을 깨워 회사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밤늦게 퇴근해 반신욕을 하고는 침대에 눕는 즉시 곯아떨어졌다.

꿈도 없는 달콤한 잠. 그래서 깨달았다.

육체의 고단함은 정신의 평화를 주는 거라고.


....살다 보면 전혀 뜻하지 않던 일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축제는 끝났다. 나는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다시 보는 지역작가와 작품]그래도 세상은 살아볼만 하다
강옥 수필가 내마음의 금봉암 - 현실서 체득한 삶의 진실
[2006.04.13 22:46]

신변잡기적 소재보다 현실의 체험과 사실을 바탕으로 수필을 쓰는 수필가 강옥씨.
수필가 강옥(50)씨의 문체는 짧고 간결하다. 쉽고 편안하게 읽힌다. 현란한 수식어로 군더더기를 만들지 않고, 대신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는 수필이 문학에서 멀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신변잡기적 소재와 손 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의 '클리셰(진부한 표현)'를 든다. 수필이 고민의 흔적없이 너무 쉽게 쓰여지고 있다는 것. 그는 왜 고민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한편의 글에 나름의 주제를 담으려고 한다.

첫 수필집 <내 마음의 금봉암>(울산사람 산문선1, 1999년)은 현실에서 체득한 삶의 의미와 진실을 담았다. 잊고 싶은 기억과 젊은 날의 방황, 가난한 시절 등을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이미 삶의 일부가 된 사실을 굳이 외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표제작 '내 마음의 금봉암'은 천성산 내원사 한 암자인 금봉암 주지 스님과 등산객들의 따뜻한 마음을 그렸다. 등산객들에게 암자를 개방한 스님이나 자기 집처럼 암자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이나 요즘 보기 힘든 상황을 연출한다. 각박한 세상 한켠의 훈훈한 미담을 통해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등단작인 '파래소 인연'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완전한 삶을 성찰한다. 그는 파래소 폭포에서 자신에게 물을 청해 마신 사람의 익사 소식을 TV 뉴스에서 접한다. 짧은 인연에 설레던 마음은 어느새 괴로움으로 바뀌고 성찰로 확장된다.

'나에게 물을 청해 마시던 그 건강한 얼굴, 불과 몇분 뒤로 다가온 죽음을 모른채 물 한 모금이 다급했던 그, 나 또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언제 어디에 인생의 암초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장 눈 앞의 갈증을 씻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건 아닐까?'('파래소 인연' 부분)

강옥씨는 1956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파래소 인연'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에 앞서 1993년 제8회 청구문화제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이사, 울산수필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사진=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출처 : 늦깎이사랑
글쓴이 : 맑아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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