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스코트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을 읽고

최근에 법정스님이 새 책을 내시면서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되도록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고, 말도 많이 안 하려고 한다. 사람이 싫어서 피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싶어서이다."
이즈음 내 심사가 스님 생각과 같다. 주위에 사람 많은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마음 맞고 뜻이 통하는 사람 한두 명이면 족하다. 그마저도 없으면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게 나을 터.
어떤 사람은 평범하게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함께 울고 웃는 삶이 좋지 않으냐고 반문하겠지만 '조화로운 삶'식으로 말한다면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시골로 들어온 것은 삶으로부터 달아나기를 꿈꾸어서가 아니며 삶에 더 열중할 수 있기를 바란 때문이다. 의무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더 가치있는 의무를 찾고자 한 것이다.삶은 우리 모두가 몸 바쳐서 벌여 나가는 사업과 같은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앞두고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요즘 많이 생각하게 된다.
'조화로운 삶'은 이런 나에게 단순하고 충족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주었다.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 생명의 순리에 맞게 지극히 평화로운 삶을 살다 간 헬렌니어링과 스콧니어링 부부. 번화한 도심을 버리고 시골로 들어간 그들이 조화로운 삶을 위해 세운 몇가지 원칙은- 채식주의를 지키며, 노동은 하루에 반나절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쓰며, 한해의 양식이 마련되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조화로운 삶'은 헬렌(1904∼1995)과 스코트(1883∼1983) 니어링 부부가 1932년 뉴욕을 떠나 버몬트의 숲속으로 삶터를 옮긴 후 20년동안 살아온 모습을 담은 책이다.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를 등지고 그들이 선택한 삶은 건강한 노동에 기반을 둔 촌부의 삶, 그야말로 영혼이 충만한 삶이었다. 삶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들-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느라 하루에 한 시간도 자기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경종이 될 것 같다.
노후를 낭만적인 전원생활로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복잡한 현대문명에 뒤섞여 살기 피곤해서 그 대안을 모색하다 보니 이 책이 마음에 와 닿았다. 현실적으로 이들 부부처럼 살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10여년 후 내 노후의 모델로 삼고 싶은 마음이다.
헬렌과 스코트가 숲속에서 산 세월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 비뚤어진 세상에서도 바로 살 수 있다는 본보기로서,
- 사회와 만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서,
- 지금의 사회 질서에 대해 얼마쯤 바람직한 대안으로서,
-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열심히 산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
- 자기 일과 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슬기롭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로서.
어떤 일을 하는 보람은 그 일이 쉬운가 어려운가 또는 그 일에 성공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인내, 그 일에 쏟아붓는 노력에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10년 후를 위해 나도 마음 속에 작은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위해, 내 영혼이 충만한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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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박물관에서  (0) 2005.08.07
개관 이틀째를 맞은 고래박물관을 찾아간다.
도로표지판에 고래박물관 가는 길을 표시해놓아 반갑다.
2차선 길 좌우로 한쪽엔 고래고기 파는 낮은 집들이,
반대편엔 고래박물관이 우뚝 서있어 이채롭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발길 닿기가 힘든 장생포,
고래박물관 덕분에 나는 오늘 191번째 유료관람객으로 장생포에 왔다.

살풍경한 공장 건물들이며 길가의 낡은 집들이 쇠락해가는 장생포를 실감케 한다.
부흥을 꿈꾸기엔 너무 늦었다는 느낌,
옛날의 영화를 돌려달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고래박물관의 압권은 아무래도 브라이드 고래뼈 표본.
죽은 고래를 2년동안 모래 속에 묻어 살을 발라낸 뒤
고열의 물에 담가 기름을 빼고 고래뼈를 조립했다고 한다.

길이 12.4m의 거대한 고래뼈에 압도되어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는 내 가슴이 콩당거린다.
장생포 앞 바다에서 금방이라도 귀신고래가 물 위로 솟구칠 것만 같다.
영상관에서 보는 귀신고래의 유영 장면과 울음소리는 왠지 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고래 울음소리가 어쩐지 사람과 비슷하다.
억눌린 슬픔을 호소하는 듯한 울음소리.
돌아가야 할 바다를 잃어버린 고래의 울음소리다.
오츠크해에서 1만7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동해로 회유해야할 귀신고래는
지구 환경의 변화로 어디선가 길을 잃고 말았다.

영상관을 나오면서 왠지 미진한 생각이 든다.
시설에 비해 자료가 빈약한 느낌이랄까?
짧은 영상을 연속으로 돌리며 귀신고래를 그리워하는 게 최선일까?
다큐멘터리가 없으면 ‘모비딕’이나 ‘프리윌리’같은 고래 관련 영상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잠시 둘러보고 가는 박물관이 아니라 오래 감상하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박물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고래를 소재로 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 같다.

또 박물관 한 켠에 고래 관련 서적(소설, 시집, 동화 등)을
전시해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근래에 나온‘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처럼 대중적인 책도 좋고
전국 시인들이 참여한 ‘고래시집’도 괜찮지 싶다.
고래가 인간과 얼마나 밀접한 동물인가,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를
관람객들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녹슨 작살과 함께 염분에 얼룩진 항해일지에는
00시 고래 발견, 00시 명중, 금일 0마리 포획 등의 글씨가 눈에 띈다.
포경을 생업으로 삼았던 선원들의 글씨엔 굵은 땀방울이 느껴진다.
반구대 암각화에 각인된 사람과 이 항해일지를 쓴 사람 사이엔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
그 맥이 장생포의 역사이고 울산 역사의 한 부분이다.
고래도시 울산의 근거도 여기에 있다.

“고래 수염 좀 봐라. 저게 진짜 맛있는 건데...”
“저 사진 속에 있는 남자가 지금 환갑이 넘었지. 장생포 떠난 지 오래야.”
관람객들 대부분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개관한 지 이틀째이니 아무래도 인근 주민들이 먼저 와보는 것 같다.
고래잡이가 성행하던 시절, 집채만한 고래를 깨고 마을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구경하는 사진을 보며 웃는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은
박물관 옆에 붙박힌 제6진양호처럼 전시용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테라스로 나가 장생포 앞바다를 조망하고 나오는데
박물관 마당에 우뚝한 시비(詩碑) 하나가 눈에 확 띈다.
장생포청년회가 자랑하는 노영수 시인의 장생포타령이 비문으로 새겨져있다.
문학 경력이 일천한 탓인지
나는 그 詩가 장생포를 대변하는 명작이라고는 느끼지 못하겠다.

더군다나 웬 시비가 그렇게 크고 위풍당당한지,
왜 하필 그 장소에 서있는지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복원된 제6진양호 뒤에 초라하게 서있는 ‘극경회유해면’ 표지석을 보니
두 비석이 서로 바뀐 느낌이다.

“뭐, 한번쯤은 와볼만하네...”
고래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말은 대개 이 정도다.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 두세 번 올만한 가치는 못 느낀다는 얘기다.
박물관이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지 말고 좀 더 다양한 자료와 볼거리를 만들어
시민들이 자주 찾고 또 오래 머물수 있는 고래박물관이 되었으면 한다.

(2005.6.4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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