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당

<문학, 그 주변>

나도 몰래 벌떡 일어섰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면서 눈물을 삼켰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렇게 울산을 다녀갔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감동을 전달하기에 바빴고, 특히 마지막 공연을 본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울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이 정도면 외국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성황후'야 말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문화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공연을 지방에 앉아서 볼수 있다는 사실이 복되게 여겨졌다.
자동차나 배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성황후같은 문화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값진 일인가.
명성황후를 공연한 현대예술관은 현대중공업이 4백여 억원을 들여 지은 종합문화예술외회관이다.
돈 많으니 지었겠지 라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문화를 사랑하고 키우겠다는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문화의 불모지'다.
울산이 어쩌다 그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는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도심 속에 제대로 된 공원 하나 없는 삭막한 도시에 무슨 문화가 있겠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 토박이들이 땅 팔아서 건물 지을줄은 알아도 문화공간 하나 제대로 남겨두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사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문화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도가 낮은 것이다.
문화시설이 갖춰지고 좋은 프로그램이 들어와도 관객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울산문예회관 개관 이후 객석이 꽉 차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울산 시민들은 스스로 문화의 불모지를 자처하는 건 아닌가?
울산은 그저 돈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임시숙소에 불과한가?
모처럼 민간 차원의 종합문화예술회관이 생겼다. 울산의 문화계가 경쟁적으로 발전함은 물론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참여도를 높이게되길 바란다.
요즘처럼 경제가 배고플 때, 문화의 배부름이 새삼 그립다.

<젊은 산꾼들>

지난 주말 설악산을 다녀왔다.
설악의 10여개 등산 루트 중 전문안내자 없이 갈 수 없다는 용아릉을 탔다.
용아장성을 암릉미가 빼어난 만큼 난이도가 높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급경사 내리막과 20여 미터의 직벽, 아슬아슬한 낙석지대를 통과하면서 아찔한 순간이 몇번이었던지.
그러나 나는 용아릉을 타면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봉정암에서 수렴동까지 8시간 가까이 암릉을 타면서 만난 젊은이들 때문이었다.
이제 막 스물이 넘은 앳된 얼굴에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타는 젊은이들. 어깨엔 30미터짜리 자일까지 걸쳤건만 무겁고 피곤한 기색이라곤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 중 절반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녀들은 남자와 똑같이 짐을 지고 암벽을 탔다.
체력의 열세를 핑계로 혹은 담대함의 부족으로 남자에게 기대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이 너무 예뻐 보여서 일부러 말을 부쳐보았다.
"어디서 왔어요? "
"여기까지 몇 시간 걸렸어요?"
기성세대들은 말한다. 요즘 젊은애들 못쓰겠다고.
부모가 뼈빠지게 일해 돈 버는 것도 모르고 방종과 타락으로만 일관한다고.
그러나 아마 그건 일부 젊은이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젊은이들은 도서관에서, 혹은 컴퓨터 앞에서, 아니면 대자연에 도전하면서 호연지기를 길러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산에 가서 나는 젊은이들의 패기와 희망을 본다.
그들이 있는 한 우리의 앞날이 결코 우울하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21세기에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똑같은 대우를 받으리라는 기대도 가져본다.
젊은이들이여~ 설악의 바위처럼 언제나 늠름하고 씩씩하여라!

<선거는 끝나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선거가 끝났다.
한 표를 부탁한다며 수시로 걸려오던 전화도, 90도로 허리 굽혀 절하던 선거운동원의 친절도 소음공해를 불러일으키던 유세차량의 행진도 끝났다.
아, 얼마나 시원섭섭한지.
선거운동 기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후보자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는가? '존경하는 주민 여러분'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으로.
비록 빈말이었을지언정 다시 들을 수 없게 돼 섭섭하다.
그동안 시장 보러 나가기가 민망했었다.
화장도 않고 대충 걸친 옷에 슬리퍼를 끌고 나온 아낙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니 얼마나 황송했던지.
시장통로 100미터가 1킬로미터로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선거 때마다 유난히 존경받는 우리 시민들의 얼굴은 그다지 기쁜 얼굴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의 경제 상황이 나빠서는 아니었으리라.
나는 이번 선거기간에 우리 지역을 밝은 내일을 보았다.
나아가 우리 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출마자들은 저마다 애국자요 지역을 위한 봉사자였다.
저마다 '오직 나만이'지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거였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우리 지역을 위해 몸 바칠 결심이 서 있다는 데 대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지역을 걱정하고 있는데 아마 잘 될거야 싶기도 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출마자들은 승패에 깨끗이 손을 들고 선거운동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해진 자리에 앉을 사람만 남겨두고.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당부하고싶다.
비록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애향심과 충절만은 버리지 말아 달라고.
당선되기 위한 감언이설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역 발전에 앞장서 달라고.
꼭 '자리'에 앉아야 향토애를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겠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