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저건 무슨 글자야?"
"사.원.모.집."
"그게 무슨 뜻이야?"
"나도 몰라."
"그럼 저건?"
"옷 수선."
"수선이 뭐야?"
"모올라."
"왜 몰라?"
"모르니까 모르지."
재경이는 동생 재민이와 손을 붙잡고 가다가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두 아이 앞에 있는 알림판에는 광고 딱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재민이는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제 누나가 신기해서인지 눈에 뜨는 글자마다 모조리 읽어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엔 가게 간판을 읽느라 한창 신이 났던 재경이는 매일 똑같은 동네 간판을 읽자니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알림판에 붙어었는 글자들을 읽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벽에 붙어있는 글자들은 재경이가 뜻을 알수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에는 아이를 잃어버리고 다니는 어른들이 많은지 군데군데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는 종이도 붙어있었습니다.
"누나, 저건 약국이야 그렇지?"
재민이는 가끔 눈에 익은 간판을 가리키며 어림짐작으로 글자를 알아맞추기도 했습니다.
"맞아, 우리 재민이가 최고야."
재경이가 이렇게 추켜세우니까 재민이는 우쭐우쭐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만치 시장 입구가 보였습니다.
"엄마다!"
재민이는 엄마를 보는 순간 쌩하고 누나를 앞질러 갔습니다. 재경이도 질세라 뒤따라 뛰었습니다.
"왜 또 나왔니? 엄마 금방 들어갈텐데.."
엄마는 시장 바닥에 펴놓았던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습니다. 양말, 속옷, 손수건, 장갑... 엄마의 보따리 속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들어갑니다. 뭉치면 한보따리지만 바닥에 펴놓으면 커다란 가게가 되곤 하는 엄마의 물건들입니다.
"엄마, 오늘도 아빠 못만났어요?"
엄마가 보따리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경이는 어제 불어본 말을 또 물어보았습니다. 그 말은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물어본 말이었습니다.
몸이 아파 늘 집안에 누워계시던 아빠가 집을 나가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가신 뒤 엄마는 두 아이를 놔두고 아빠를 찾기 위해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집 저집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혹시라도 아빠를 만날까 했던 엄마의 기대는 번번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머리 속에는 시장이 떠올랐습닏.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아빠도 언젠가는 한번쯤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는 떠돌이 장사를 그만두고 시장에다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스빈다.
그렇지만 오늘도 엄마는 어빠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빠랑 숨바꼭질하면 술래가 정말 혼날거야."
재경이는 아무도 몰래 꽁꽁 숨어버린 아빠가 얄미운 생각이 들어 말했습니다.
온가족이 술래가 되어 아빠를 찾고 있지만 아빠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엄마 술래는 아빠를 꼭 찾아내고 말걸"
엄마는 싱긋 웃었습니다. 엄마는 집 나간 아빠가 조금도 밉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자, 이제 그만 자야지."
엄마가 이불을 깔자 두 아이는 엄마의 양쪽 옆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엄마, 나보고 누워."
"아니야, 멈아 나보고 누워."
잘때마다 두 아이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실갱이를 했습니다. 서로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자려고 이불 속에서 야단들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투면 엄마는 천정만 보고 잘테다."
그러면 두 아이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습니다.
"엄마, 오늘은 내가 텔레비전을 볼 차례야."
재경이는 엄마가 재민이쪽으로 누워 있으니까 제 쪽으로 돌아눕도록 엄마의 젖가습에 손을 넣으며 말했습니다.
"텔레비전이라니?"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어젯밤에 잘적에는 내가 라디오만 들었잖아요. "
그래도 무슨 소린지 몰라 엄마는 갸우뚱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자는 날은 내가 텔레비젼 보는 날이고, 재민이 보고 자는 날은 라디오 듣는 날이래요."
재경이의 말에 엄마는 호호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텔레비전은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지만 라디오는 듣기만 하지 볼 수는 없습니다. 엄마가 가운데서 한쪽으로 돌아누우면 한 사람은 재미있는 텔레비전을 볼수 있지만 한 사람은 라디오만 듣게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엄마가 너희들에게 재미있는 텔레비전을 공평하게 보여주어야겠구나."
엄마는 두 아이의 손을 한데 모두어 꼭 잡았습니다.
다음날,
산동네는 언제나처럼 햇님이 가장 먼저 놀러와서 따스한 햇살로 아이들을 불러냈습니다.
"누나, 오늘은 일찍 오는거지?"
재경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하루종일 혼자 놀게되는 재밍이는 심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고무줄놀이 안하고 그냥 올게."
동생과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을 하고 재경이는 언덕길을 내려갔습니다.
오늘은 재경이가 좋아하는 미술시간이 들어있습니다.
"오늘은 아빠의 얼굴을 그려보도록 하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아이들에게 도화지를 한장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재경이는 제가 좋아하는 노란 크레파스를 집어들었습니다.
"잘 그린 그림은 벽에다 붙여줄게."
선생님은 아이들 옆을 지나다니시며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셨습니다.
교실 뒷벽에는 지난번에 아이들이 그린 엄마의 얼굴이 붙어있었습니다.
재경이는 열심히 아빠를 그립니다.
아빠를 못본지도 1년이 지났지만 재경이는 아빠의 모습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술 취한 아빠의 얼굴을 온통 빨간 크레파스로 색칠을 했고 또 어떤 아이는 아빠의 얼굴에 커다란 안경을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선생님을 졸라 교실 벽에다 제 그림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재경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아빠의 그림을 가만히 가지고만 있었습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재경이는 가장 먼저 교실문은 나섰습니다. 어쩐지 재경이는 굉장히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나, 누나!"
재민이가 구르듯이 달려나오며 누나를 반겼습니다.
재경이는 미술 시간에 그린 아빠의 그림을 동생에게 펴보였습니다.
"아빠다. 우리 아빠다!"
재경이는 그 그림 위에다 검정 크레파스로 이렇게 썼습니다.
"아빠를 찾습니다."
재민이는 금방 꽈리눈이 되어 제 누나를 쳐다봅니다.
"재민아, 저어기 벽에다 이걸 붙이러 가자."
"정말?"
재민이는 역시 누나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는 큰길가의 알림판에다 아빠의 얼굴을 붙였습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 옆에 나란히 '아빠를 찾습니다.'크레파스로 그려붙인 아빠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오가는 사람 모두 한번씩 아빠를 쳐다봅니다.
두 아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활짝 웃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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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인이십니다."
약속한 다방에 들어서자 입구에 앉아있던 그가 벌떡 일어서며 나를 반겼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싫지 않은 찬사를 건성 듣는체 하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원피스 색상이 미경씨 얼굴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마치 끝없이 푸른 초원을 연상케하는 군요."
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나를 바다라보았다. 마치 환상에라도 젖는듯이.
어쩌면 이 남자는 이렇게 시적(詩的)일까?
내심 감탄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남편을 그와 비교하고 있었다.
몇년동안 길러오던 머리를 하루아침에 싹둑 잘랐어도 모르는 남편... 사실 나는 처녀시절부터 최근까지 머리를 단 한번도 자르지 않고 길러왔었다. 물귀신이라는 별명까지 감수해가면서도 거리를 오가는 여인들이 세련된 파마스타일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건 것은 순전히 연애시절 남편의 찬사 때문이었다.
"미스하, 정말 매력적이야. 그 긴 머리카락은 마치 로렐라이 언덕의 인어아가씨 같아."
또한 남편은 오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두 부부의 얘길 했었다.
'당신이 머리를 길러야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빗을 선물하지." 하며 웃어주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의 긴 생머리에 신경을 써주었던 남편이 결혼 후 몇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등에 업힌 첫딸 채리가 엄마의 자랑스런 긴 머리를 자꾸만 쥐어뜯어 견디다 못해 내가 머리를 잘랐던 날도 남편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사람이 변햐도 저렇게 변할수 있을까 싶었다. 이미 남편은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싸느랗게 식어있는 것 같았다.
"문득 미경씨의 지금 그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납니다. 오늘은 꼭 제 스튜디오에 모시고 싶습니다."
사진작가 김민기는 열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순간 심한 갈등을 느꼈다.
촉망받는 사진작가의 모델이라니...내겐 신데렐라 얘기돠도 같은 꿈이었다. 하지만 내겐 사랑스런 딸 채리와 남편이 있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사진모델이란 때에 따라서 과감하게 옷을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과연 그럴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앞서 고지식한 남편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벌어질 사태에 대해 나는 눈앞이 아찔했던 것이다.
남편은 틀림없이 나를 상대로 경찰대학에서 배웠다는 유도 시범경기를 벌일 것이고, 레슬링 그레꼬로망형인가 뭔가를 하자고 들것이었다.
"부담스러우시면 그만두십시오. 참고 삼아 말씀드리지만 저는 누드 같은 건 절대 찍지 않습니다. 예술을 빙자해서 여자의 옷을 벗기는 일에 저는 결코 동의할수 없기 때문이죠."
그가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듯이 말했다.
아, 얼마나 고상하고도 신사적인 남자인가.
그는 지난 번에도 그런 얘길 했었지. 예술을 빙자한 상업행위를 그는 가장 혐오한다고. 그래서 그는 순수 사진작가로서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스튜디오가 내키지 않으시면 어디 교외로라도 나가실까요?"
그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정중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그를 따라 일어서며 한달전 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날은 곗날이었다.
여고동창들 몇이 이른바 반지계를 짜서 넣고 있었는데, 근라 계를 타기로 돼 있는 명자가 한턱을 쓴다고 하여 우리는 모처럼 비싼 요리를 실컷 먹고 서투른 술도 한잔씩 했다.
서른 고개를 넘은 우리들은 이제 슬슬 살림살이에 이력도 생기고 모처럼 남편 시집살이로부터 해방된 탓인지 처녀시절 같지않게 간덩이들이 부어 있었다.
"얘, 어디 멋진 남자 없니? 내일 죽어도 좋으니 나 연애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일찍 결혼해서 벌써 학부형이 된 숙희가 말했다.
"현숙한 주부들이 이게 무슨 소리야?"
불에 달군 남비에 기름 튀듯이 혿르갑스럽게 튀어오른 건 계원중의 유일한 독신녀 혜선이었다.
"야, 이 올드미스, 아니 올디스트라고 최상급을 붙여야 마땅할 노처녀야. 너는 우리들 마음을 몰라. 여자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마음은 여린 박속 같고 연한 배 같은거야. 연애가 더디 너같은 미스들의 전용인줄 아니?"
"너도 일찌감치 결혼해서 우리 처지가 돼 봐라. 애들은 바깥으로 나돌고 남편은 마누라보다 회사가 소중하고..."
"맞다 맞어. 혜선인 아직 뭘 몰라. 감히 세상의 눈이 무서워 참고 있을 뿐이지. 솔직히 말해서 나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멋진 연애를 아무도 모르게 한번즘 해보고 싶더라."
모두의 얼굴이 당근즙을 낸 것처럼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오로지 남편만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던 구시대적인 여인상에서 벗어나야 해. 우리도 우리들의 인생을 즐길줄 알아야 한다구. 왜 남편을 위해 모든 걸 버려야 해? 생각해봐. 남자들은 밖에 나가면 사회활동이라는 핑계로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거리낌없이 만나거든. 그런데 우린 이게 뭐니? 기껏 청요리나 시켜먹고 푸념이나 하게..."
나도 그날만큼은 모처럼 기분이 느긋해셔 있어서 될 소리 안될소리 마구 지껄이고 있었는데, 직업이 형사인 남편이 출장중인 만큼 평소에 느끼던 막연한 불안으로부터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말로는 모두 '멋진 연애'니 '여자도 인생을 즐겨야 한다'운운 하지만 실제로는 남편과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여자들이었고 또한 그들을 위해 일생을 바칠 여자들이었다.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확 풀었다.
여자들은 끝없는 수다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누가 말했던가? 우리는 웃고 떠들고 얘기하면서 어느새 생활의 먼지로 피곤했던 심신이 목화솜처럼 가벼워짐을 느꼈다.
내가 2차 3차의 유혹을 어렵게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실례합니다."
등 뒤에서 묵직한 바리톤의 음성이 들려왔다.
설마 나를 부르는 소리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나는 반사적으로 고래를 돌였다.
거기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빛 바랜 청남방과 청바지를 입고 어깨에 니콘 카메라를 맨, 한눈에 야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 남자가.
그는 나에게 처음엔 길을 물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가르쳐준 길을 가지 않았다. 머뭇머뭇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다.
"저, 사실은 요릿집에서부터 주욱 뒤따라왔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차라도 한잔 하실까요?"
그날 그와 나는 참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세련된 매너로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요리집에서 우리 옆좌석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는 얘기를 다 들었으며 여성이 가정에만 속박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자신도 동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최근에 국내에 들어온 사진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열띤 어조로 브레숑의 작품세계를 얘기할 때, 나는 여지껏 그 흔한 사진전시회 한번 못가본 걸 가슴 깊이 후회했다.
그가 미국에서 돌아온 것은 국내 작가들과의 작품 교류를 위해서이며 요즘 쉴새없이 작품의 소재를 찾아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나에게 정중한 어조로 작품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간청했다.
"미경씨는 바로 내가 찾는 이상형의 모델입니다. 희랍조각같은 단아한 옆모습, 그러면서도 표정은 아주 동양적이고 유순합니다."
나는 자신의 용모에 대해 이토록 찬미하는 사람을 일찌기 만나본적이 없었다.
남편이 나에게 찬사를 퍼부은 첫번째 남자였지만, 그가 찬양했던건 오로지 윤기나는 내 머리카락 뿐이었다. 어쩌면 남편은 나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내숭을 ㄸ러었는지 모른다. 미인이라고 추켜세우면 가뜩이나 높은 내 코가 크레오파트라만큼 될까봐 이룹러 말을 안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혼자 거울을 보면서 나르시즘에 빠져들던 처녀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나 자신이 아름다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군중 속에 섞이면 늘 자신이 평범한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결코 군계일학이 될만큼 빼어난 미인은 아닌가 보구나 하는 씁쓸한 자각을 늘 얻곤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 사진작가 김민기나 나에게 찬사를 퍼부었으며 모델이 되어달라는 간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몹시 괴로운 심정으로 그에게 모델이 될만큼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늘 걸 얘기할수 밖에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결혼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에 와서 가장 이상적인 여인을 만난 것을 추억하고 싶으니 미국에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자신을 만나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나는 쉽게 그와 약속했다.
그가 고국에 체류하는 동안의 시한부 모델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날밤 나는 집으로 도아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 몰래 어떤 비밀이 생겼다는 것이 나에게 터질듯한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친구들이 그토록 동경하던 '아무모 모르는 연애'의 기회가 바로 나에게 와주다니..그것도 상대가 시시하고 평범한 남자가 아닌 예술가라니... 그야말로 영화나 소설이 한편 전개되는 것만 같았다.
그가 떠나고 나면 우리의 연애는 완전법죄가 될 것이며, 나는 늘 세상에 완전법죄란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남편의 코를 면전에서 납작 누를 수 있는 것이다.
결혼 후 남편이 불철주야 골몰하는 것은 자신의 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의 완전범죄자도 허용치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이었다.
"기껏 남의 뒤나 미행하고 죄없는 사람을 몰아세우는 주제에."
나는 남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형사라는 직업이, 또 그 천직을 위해 평생을 바칠듯 투지에 불타는 남편이 너무나 못나게 보였다.
아아, 나는 왜 그렇게 서둘러 결혼을 했을까. 연애다운 연애 한번 못해보고 단지 인어아가씨 같다는 남편의 감언이설에 홀딱 넘어가 결혼을 하다니...
나 자신의 경솔함과 남편에 대한 불만이 일시에 암세포처럼 자라나 내 머리는 터질듯이 답답했다.
이럴때 나의 위안은 사진작가 김민기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와 약속한 날을 초조하게 기다렸고 마침내 그와의 밀애를(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그런 밀애가 아닌, 신체적인 접촉 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플라토닉한 사랑이었음을 맹세한다.) 즐기게 되었다.
몇번 만나는 동안 그는 나를 모델로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인물을 클로즈업시키지는 않았다. 불가피하게 인물이 강조되는 씬에는 옆얼굴을 찍거나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내리도록 했다. 그는 내가 정면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이런 나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여전히 나에게 무관심했으며 한밤중에 전화 받고 뛰어나가느 버릇하며 신문 사회면을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도 여전했다.
"사건 사고의 연속이로군. 하루도 범죄가 없는 날이 없어."
남편은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시부렁거리며 신문을 읽다가 시계를 들여다보고 잽싸게 출근을 했다.
시경국장의 표창까지 받은 남편은 직무상으로는 아주 예기하고 날카롭다는 평판을 받고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집에 돌아아면 곤두세웠던 신경스위치를 죄다 끄는 사람이었다. 말 시키는 것도 귀찮아 하였으며 그저 충직한 동물처럼 주는 밥 얻어먹고 밖으로 나돌기에만 바빴다.
"오늘도 철야근무야. 요즘 제비족 일제소탕령이 내렸어."
연일 밤 새우고 들어오기가 미안했던지 남편이 스쳐가는 투로 말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평화로운 가정을 쑥밭으로 만들기 전에 나가봐야 겠어. 당신 심심하면 친정에나 다녀오지."
건성 말하면서 남편은 대문을 나섰다.
나는 남편이 사라진 골목길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날름 내밀었다.
(당신은 내가 친정밖에 갈 데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천만에요!)
나는 오늘도 사진작가 김민기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약속시간 삼십분전, 나는 서둘러 샤워하고 머리를 만지고 귓볼에 살짝 오데코롱을 뿌렸다.
"아니, 유부녀가 그게 무슨 옷차림이냐. 애 에미가 쯔쯔..."
시어머니의 마땅찮은 잔소리를 귀 밖으로 들어며 나는 집을 나섰다.
사진각가 김민기. 오늘은 기어이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겠노라고 나는 전화를 해두었던 것이다.
그동안 한번만이라도 꼭 스튜디오를 방문해주십사는 그의 간청을 강경하게 뿌리쳐왔지만 생각해보니 지나친 사양은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았다.
그리고 제한된 실내에서 외간남자를 만난다는 게 꼭 무슨 부도덕한 사건이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지레 겁을 먹고있는 내 옹졸함으로부터 이젠 스스로 벗어나고 싶었다.
"여자는 절대 값싸게 굴면 안돼. 남자가 오란다고 그의 숙소나 직장으로 불쑥 찾아가는 건 요조숙녀가 취할 행동이 아니야."
하고 처녀시절에 엄마가 일러주던 말씀이 어쩌면 걸혼 후에도 나의 의식을 계속 지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껏 나는 그에게 한껏 값비싸게 대우 받았고, 그럼으로써 이젠 적어도 당신을 믿습니다 하고 그의 앞에 자신있게 나서고 싶었다.
아니아니, 보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오늘 내가 그를 찾아가는 것이 처음이자 마직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용기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그는 어차피 떠날 사람. 설사 나의 방문이 조금은 부도덕하거나 불미스럽게 여겨질지라도 그는 곧 이 땅을 떠날 사람인 것이다.
서로의 기억 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고, 우리의 만남은 완전한 비밀로(남편의 표현대로라면 완전범죄가 되겠지만)간직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 얼마나 가슴 뛰는 만남인가.
고국에 있는 동안 김민기 그의 임시숙소이며 스튜디오로 쓰고 있다는 Y호텔 1243호실.
한다발의 후리지아를 들고 나는 방문 앞에 멈추었다.
똑똑똑...
노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기다렸습니다."
하고 나를 반긴 사람은 사진작가 김민기가 아닌 내 남편 이형욱 형사였다.
"부인께선 어쩌다가 이런 고단수 지능범에게 걸려드셨습니까? 이 자는 예술가를 사칭해서 유부녀를 농락하는 직업적인 제비족입니다. 피해자 진술서를 받도록 부인도 이 자와 함께 경찰서로 가실까요?"
남편의 맞은 편에는 사진작가 김민기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고, 그의 발 밑엔 여러 장의 여자 사진이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내 손에서 후리지아 꽃다발이 떨어진 것과 남편의 손바닥이 뺨으로 힘차게 날아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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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웰빙 바람이 불었으면>



산행에서 돌아오면서 주유소에 들렀다. 휴일 끝이라 나들이 차량이 많았는지 주유소 마당이 꽉 찼다. 엊그제 비가 내려서 자동세차기 앞에도 승용차가 줄을 섰다.
차례를 기다려 기름을 넣고 세차를 할까 하다가 포기하고 차를 빼는데 바로 앞에서 두 여인이 삿대질을 해가며 싸우고 있다. 50대 후반의 세차장 여종업원과 30대 중반의 여성 고객.
"아줌마가 뭐야? 종업원이면 고객에게 서비스를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서비스도 오늘 같은 날은 다르지. 저렇게 차들이 밀려있는데 어쩔수 없잖아."
이 주유소에서는 고객들에게 콤프레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젊은 여인은 승용차 내부 세차를 위해 콤프레샤를 쓰겠다고 우기고, 늙은 여인은 영업용으로 자신이 먼저 써야겠다고 우기는 중이었다. 내부세차 손님이 줄을 선 상황에서 늙은 여인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건만, 젊은 여인은 허리에 손을 얹고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사장 오라고 해. 사장! 고객이 왕이라면서 고객 접대를 이 따위로 해도 돼?"
길길이 뛰면서 유료세차 고객을 위해 자신이 콤프레샤를 양보할 수는 없노라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기름 넣고 가던 손님들이 차를 멈추고 기가 막혀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겉보기엔 말쑥하고 세련된 여자가 어머니뻘 되는 종업원에게 패악을 부려대는 꼴이라니. 한데, 그 남편은 한술 더 떠서 빙글빙글 웃으며 차를 닦고 있다. 마치 아내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저 남자는 아마 집에 가서도 굽신거리며 아내를 여왕 모시듯 할 것이다. 요즘 남자들이(물론 일부겠지만) 허약해도 너무 허약해졌다. 과연 저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할까? 저보다 못하거나 지위가 낮아 보이면 여지없이 밟고 무시하고 저 잘난 맛으로 살아가는 엄마 밑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국민소득 1만불을 훌쩍 넘어선 이 시대. 그러나 잘사는 것 보다 '제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남을 배려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는 마음가짐, 잘 먹고 잘 사는 웰빙 바람보다 제대로 살줄아는 '신 웰빙'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4월27일)

<들뜬 마음을 누르고 >

직장을 가졌건 안가졌건 요즘 여성들 무척 바쁘다. 직장여성보다 전업주부가 더 바빠 보인다. 차밍댄스에다 에어로빅, 헬스, 찜질방 다니느라 설거지는 뒷전이다. 점심을 집에서 먹는 여자는 인간성이 나빠서 친구가 없거나, 아프거나, 남자한테 버림받은 여자라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주부가 드물다. 아파트 계단청소 하려고 사람을 모으면 10가구에 한두 명 나온다. 누구 엄마는 수영하러 가고, 누구 엄마는 스포츠댄스 갔단다.
내 생각이 잘못된 건지는 모르지만 요즘 우리 여성들은 뭔가에 들떠있다. 한시도 집안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돈다. 이성적인 것보다 감성적인 것,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 순간순간 즐길 수 있는 일에 매료되어 시간을 보낸다. 문화센터의 수많은 강좌 중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댄스나 노래교실 같이 동적인 강좌라고 한다. 서예나 꽃꽂이 같이 정적인 강좌는 회원 숫자가 나날이 줄어 끝내 폐강되곤 한다.
나는 책 읽는 게 좋아서 모 도서관 독서회에 가입했는데 3년전이나 지금이나 회원 숫자가 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도 책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렇게 나가다간 나중에 도서관에서도 무슨무슨 댄스 교실이 열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교실도 대중의 선호에 발을 맞추는 게 현실이니까.
머리를 쓰는 일보다 몸을 쓰는 일이 쉽고 즐겁다. 머리를 쓰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을 쓰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어려운 일에 머리 쓸 것 없다. 쉽고 즐겁고 편한 일만 찾아서 즐겁게 살아보자. 이런 심리들이 알게 모르게 확산되는 조짐이 든다. 걱정스럽다.
IMF체제를 뼈아프게 겪고 아파트값 폭등을 망연자실 지켜본 뒤 여성들은 허망해진 가슴으로 마침내 자포자기를 한 것일까? 안먹고 안쓰고 아껴봤자 소용없더라. 책 몇권 읽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나. 오늘 이 순간 즐겁게 놀고 건강하게 살다 가면 그만이지. 알게 모르게 그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지배하게 된 건 아닐까?
여성들이여,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자. 들뜬 마음을 누르고 허망한 가슴을 잠재우고 보다 지적인 일에 몸과 마음을 던져보자. 그대들 지친 영혼이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5월11일)

<영웅은 없다>
언양 장날, 국밥집에 들렀다. 소머리국밥 파는 할머니 한숨 쉬며 하는 말,
"장사도 너무 안된대이.... 세상이 우찌 될라 카노?"
국밥집에 앉았던 손님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대통령 때문이라는 둥, 정치권 탓이라는 둥, 걸핏하면 데모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둥. 남의 탓 대기 좋아하는 사람들, 난세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 이 난국을 타개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얼마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훈 씨가 TV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 시대에는 대중들에게 영합하는 지도자라 칭하는 사람들만 득실거리지 카리스마를 가진 진정한 영웅은 없다.''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나를 따르라'하는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중은 영웅을 기다리는 것일까?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생각보다 어떤 특출한 사람이 나와서 세상을 바꾸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난세에 영웅이 출현한다는 건 전제군주시대에나 맞는 말이다. 그 시대에는 대중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영웅에게 수많은 사람이 머리를 조아릴 수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민주시대엔 영웅이 존재할 수 없다. 대중은 난세를 헤쳐나갈 영웅을 기다리지만 요즘 대중의 비위에 딱 맞는 영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워낙 대중들의 욕구가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대중이 변해야 하지 않을까? 난세를 대통령 탓으로 돌리거나 정치권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난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 남더러 변하라 하지말고 나부터 변해야 한다. 세상이 각박하고 인심이 사납다고 말하지 말고 우선 나부터 좀 너그러워져 보자. 내가 변하면 이웃이 변하고, 이웃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덥지 않은 여름이 없고 춥지 않은 겨울이 없다는데, 어느 세월인들 마냥 편하게만 살겠는가? 덥다고 아우성치고 춥다고 앙탈부리면 세상이 달라지는가?
국밥집 할머니, 장사 안되는 거 대통령 탓 아닙니다. 정치권 탓도 아닙니다. 혹시 할머니 손맛이 변하진 않으셨나요? (6월2일)

<사람도 리모델링>

십 년 넘게 한 아파트에 살았더니 어느 날부턴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낡은 외벽부터 유행에 뒤떨어진 실내 인테리어까지 다 보기 싫었다. 요즘 분양되는 새 아파트들처럼 실내 구조를 쌈박하게 바꾸고 싶어졌다. 3베이나 4베이로 아파트 기본 구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주방이나 욕실, 도배장판만 다시 해도 새집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일도 시작하기 전에 겁부터 났다. 1주일 동안 온 집안이 먼지투성이가 될 것이고, 소음으로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며 온 가족의 생활 리듬이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기술자를 불러 견적을 내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1주일에 걸쳐 온 집안을 리모델링했다. 안보이는 바닥 배관부터 눈에 띄는 도배장판까지 싹 갈아치웠다.
이웃들이 구경 와서 모두 한마디씩 했다. “어머나, 새집 같네요!” 코가 매운 방부제 냄새조차 새집 분위기로 느껴져서 싫지 않았다. 지인이 무심코 한 마디 던졌다. “사람 빼고 이 집은 모두 새것이네요.”
아, 나는 그 말에 감전된 듯 놀랐다. 집을 새로 고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일이 더 급한 일이었는데. 변화를 요구하는 내면의 소리를 엉뚱하게 바깥에서 찾다니. 아파트 리모델링으로 기분전환이 된 건 잠시고, 정작 다급한 건 나 자신을 리모델링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나이 들면 누구나 점점 고루해지고 고집스러워진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길 즐긴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싶은 생각으로 쉽게 편한하게 살아갈 궁리만 하게 된다. 지천명이 낼모렌데 무슨 욕심을 더 부리랴.
그러나 아파트 리모델링을 하면서 느꼈다. 사람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집이 낡으면 수리나 개조가 필요하듯이 사람도 나이 들면 스스로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것을.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도 좋고,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살리라는 생각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살았지만 앞으로는 다르게 살겠다는 각오로 자신을 리모델링을 해야겠다.
“나는 돈 쓰는 기계예요.” “나는 이제 한물 갔는데요 뭘.” 자포하기하는 여성들이여,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리모델링 해볼 생각 없으신지? 아파트처럼 기본 골조는 못바꾸더라도 실내장식을 싹 바꿔 지금부터 새사람으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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