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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의 신비를 품은 듯한 소나무 군락. 미끈미끈 잘도 빠졌네. 누군가 가지 치기를 해준 걸까?

사람 마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수시로 뛰어드는 잡념을 자르고 솎아내야 비로소 평안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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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도발적인 색상이라니. 저 방자한 자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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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에 꽃만 꽂으면 영락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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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만에 처음으로 물에 빠져본 자운영, 이런 횡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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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발밑을 보면 아찔할 때가 많지. 살다 보면 그래.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나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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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많이 참아주셨지. 우리가 점심 먹을 때까지,  우리가 하산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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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 땅나리? 말나리? 아무 이름이면 어떠리. 내 눈에 예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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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의 신비가 물씬 풍기는 숲속. 저기 어딘가 아담과 이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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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얼마나 찰떡궁합인지.

십수년 알고 지내면서도 요즘같이 붙어다닌 세월이 얼마 안된다는...

한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는 만만찮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 또한 시절인연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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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제대로 잘 찍어보라고 질고지 님을 얼마나 볶아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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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가 아까워서... 이슬(?) 맺힌 비비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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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못한 3단폭. 목숨 걸고 찍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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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노랑이. 꽃 앞에 엎드려 찍은 성의가  가상해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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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아리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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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태버섯. 녀석, 어쩌다 치마가 반쯤 구겨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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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왕봉-칠불봉으로 이어지는 가야산 주릉>

 

가야산을 처음 오른 게 내 나이 스물너댓 살이었지 싶다.

등산 목적이 아니고 해인사 관광이 목적이었다.

머리 위에 하얀 때죽나무 꽃이 조롱조롱 별처럼 달려있던 5월의 숲.

정장 차림에 샌들을 신고 해인사 경내를 답사하던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기왕 왔으니까 가야산 정상까지 가보자. 여기서 얼마 안 걸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을 잘 믿는다...

30분쯤 걸어 올라가니 발에서 신호가 왔다. 주인님,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친구에게 힘든 시늉을 했더니 조금만 더 가면 드넓은 억새밭이 있다는둥

철쭉군락지가 있다는 둥 근사한 말로 나를 꼬드긴다.

참아야지, 이를 악물고 걸었다. 친구가 손잡고 끌다시피 올라갔다.

1시간쯤 지나자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다.

“너만 올가갔다 와. 난 안되겠어.” “무슨 소리.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힘내!”

그렇게 몇 번을 속고 또 속아 올라간 곳이 가야산 정상이었다.

조망의 즐거움은 하산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나는 아무 것도 볼수 없었다.

내리막에서 샌들 끈이 끊어지고 뒷굽이 달아나 찔뚝거리며 걸어내려왔다.

굽 낮은 샌들이었기 망정이지 굽 높은 신발이었더라면 어찌됐을까?

 

                                                                                            <27년전 해인사 희랑대>

    

워낙 유명한 사찰이다 보니 그동안 해인사를 찾을 기회가 많았다.

나는 해인사보다 부속 암자를 더 좋아한다. 특히 희랑대는 첫손에 꼽힌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가야산 주변을 서성인 게 열손가락은 넘지 싶은데

정작 등반 목적으로 택한 건 몇 번 안 되지 싶다.

    

                                <서장대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만물상, 직진 방향이사자바위 능선>

 

가장 기억에 남는 가야산은 십수년 전의 나홀로 산행이었다.

남편과 싸우고 혼자 집을 나섰는데 갈곳이 없어 해인사로 발길이 옮겨졌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놓고 집을 나왔으니 마음이 편할 리 있나.

신정연휴 무렵이라 날씨는 혹독하게 춥고 산에는 북풍한설이 휘몰아쳤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데 얼마나 춥고 고독한지.

눈물인지 눈(雪)물인지 흘러내리기도 전에 얼어붙어 얼굴은 얼마나 따가운지.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그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심각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다.

‘나 없이 애 데리고 한번 살아봐!’ 하는 시위성 가출이었던 것도 같다.

살면서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세상에서 얼마나 될까.

참고 견디고 이해하고 보듬고... 서로 노력해야 가까스로 유지되는 게 부부다.

 

                                                   <앞 쪽 능선이 매화산, 뒷쪽 능선이 비계산(좌), 의상봉(우)>

 

감암산으로 예정하고 나선 발걸음이 차속에서 진로가 바뀌었다.

가야산의 진수인 만물상 코스를 타자는 거였다. 내심 쾌재를 불렀다.

59번 지방도를 따라가며 바라보는 가야산 암릉은 감탄 더하기 찬탄.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옛애인을 만난 듯 가슴이 울렁거렸다.

백운동 매표소에서 용기골을 따라 오르는데 군데군데 얼레지꽃이 피어있다.

 

 

절터 흔적도 없는 백운사지를 지나 서성재에서 잠시 휴식.

무너진 가야산성 돌무더기를 밟고 오르다가 ‘등산로 없음’표시를 따라

왼쪽 숲으로 들어섰다. 무성한 산죽을 헤치고 희미한 길은 봉천대로 이어진다.

봉천대 부근에 서자 일대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릉으로 유명한 매화산이 손에 닿을 듯하고, 그 너머 의상봉, 아스라이 지리산.

단숨에 정상(상왕봉 1,430m) 찍고 기암 봉우리 칠불봉(1,433m)에 오른다.

정상에 서니 수도-가야 종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쾌하고 시원하다.

의상봉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비계산인 듯하고, 그 뒤쪽이 미인봉?

산도 앞뒤 모습이 다르니 헷갈릴 때가 많다. 사람도 그럴 때가 많듯이.


                                                                 <영차 영차, 내가 들어올린 집채만한 바위^^*>

 

 

큰산 봉우리에 설 때마다 느끼는 것이 내 부족함과 모자람이다.

겹겹이 어깨를 맞대고 이어지는 저 많은 산들을 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때는 산 이름만 듣고 따라다녔으며, 유명산 종주에 열광했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까지 산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다닌 것같다.

이 골짝 저 능선 세밀한 지리지형과 그 산이 품고 있는 생명들, 역사의 흔적들...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 아는 게 중요하다. 문득 부끄럽다.

 

 

칠불봉 철제 계단 근처에는 분재형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다.

소나무 사열식을 받으며 서성재로 내려와 ‘길없음’표시를 따라 서장대로-

여기서부터 기암괴석 전시장이 시작되는데 입이 연신 벌어진다.

매화산 암릉미가 아무리 좋다 해도 가야산 만물상만 못하다는 걸 알았다.

신의 손길이 아니면 어떻게 저런 위치에 저런 모습으로 서있나 싶다.

비바람에 씻겨 피부는 거칠어졌지만 바위들은 아주 육감적이다.

기기묘묘한 형상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카메라 앵글을 어디에 맞출지 모르겠다.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섰거나 바위에 눌러 붙어 살아남은 소나무.

그 소나무와 어우러진 바위는 무생물이 아니지 않겠는가?

 

 

서장대에서 사자바위 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온 시간 30분을 합해서

만물상 능선 타는 데만 4시간이 걸렸다. 요리조리 돌아가고 휘어지는 암릉길이

다이나믹하다. 조망에 마음을 뺏기다보면 발밑이 위태롭다.

마지막 바위에 앉아 가야산 주릉과 멀리 성주 시가지를 굽어본다.

말이 통하고 느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오늘 산행 총 7시간. 나는 오늘 가야산의 진수를 보았다.

 

                                                   <가야산 정상부. 카메라 조작 실수로 이상한 색깔이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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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꽃망울 너머 옥색 바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따라 바다에는 구름 그림자가 흘러간다
 설흘산 오르는 길은 봄빛이 완연한데 멀리 여수 시가지는 아지랑이로 아물거리고...
 
 
 
 평화로운 남해의 어촌 풍경.
사촌에서 들머리를 잡아 응봉산을 오르기까지
올망졸망한 해안선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붉은 흙에 뿌리를 박은 봄마늘이 초록으로 무성하다.


 
산을 휘돌아가는 저 길은 어디에 이르는 것일까?
눈부신 윤슬을 배경으로 멋드러지게 구비친 길 한 자락.
저런 그림은 어떤 구도로 잡아야 황금분할이 되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이, 사진보다 그림이, 더 어렵다는 걸 느낀다.

 
설흘산(488m) 정상을 바라보는 오름길에서.
능선 왼쪽에 봉수대가 보인다.

 
베트남 하롱베이를 연상케 하는 다도해 조망.
서포 김만중이 유배왔다는 '노도(櫓島)'가 저 섬들 중 어딘가에 있을까?
국문학사에서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은
나이 53살때 남해로 유배와서 3년을 살다 죽었다고...


 

다랭이마을의 봄 풍경. 

45도 경사의 비탈에 석축을 쌓아 계단식 논을 일구어 놓은 풍경이

천조각으로 만든 보자기를 연상케 한다. 자연의 퀼트작품이라고나 할까.
옛날에 한 농부가 자기 논을 세다보니 한배미가 모자라더란다.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매미가 있었다고...

그렇게 작은 삿갓배미부터 수백평의 큰 논까지 구불구불한 논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등고선을 그리고 있는 다랭이마을.



 

자연의 멋, 자연의 조화.

설흘산에서 쏟아져내린 급경사 비탈에 어떻게 농사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문득 마추피추가 생각났다.

 

설흘산 봉수대에서 응봉산쪽 조망.

여기서 타오른 봉화는 남해 금산으로 이어졌다고...



 

해안가에 서 있는 남자바위.

어떤 관광객이 붙인 제목은 "새벽 6시"


 
그 누가 밟았을까. 가여운 할미꽃.
이제막 피어난 꽃잎 2장이 무참히 짓밟히고 없다.


 
온 산을 뒤덮은 생강나무 꽃.
 

 
얼레지가 이제 막 피려고 목을 길게 빼고 있다.


 
양지쪽엔 양지꽃 노랗게 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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