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태풍이 오락가락 하는 중에도 여름 하늘은 쨍하게 투명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바깥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바다로 간다. 핸드폰도 끄고 자동응답기 메시지도 지우고.
수영복을 안에 입고 겉옷을 간단하게 걸친 뒤차의 시동을 건다. 행장이라곤 수경 하나와 양파망 주머니 몇 개.
내 집에서 주전 고개를 넘는데는 십 분이 채 안 걸린다. 애초 바다 가까이 살고 싶어서 이곳에 집을 마련했었다.
고개를 넘어 바다가 보이기도 전에 벌써 공기가 다르다. 더운 여름날 바깥에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의 그 기분과도 흡사하다. 상쾌한 냉기가 묻어오는 바닷바람이 너무 좋다.
해변에 차를 세우고 겉옷만 벗으면 준비 끝. 바다에 몸을 적시며 수경을 끼고 물 속으로 헤엄쳐간다. 스노클을 입에 물고 오리발을 신을 때도 있지만, 어장을 해칠까 봐 경계하는 어민들 눈치가 보여 맨몸으로 들어가는 게 마음 편하다.
물 속 세상은 참 신비롭다. 더군다나 수경을 끼고 보면 사물이 실제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답다. 해초가 우거진 풍경에 고기떼가 유영하고 고둥들도 바위에 붙어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암초의 협곡 사이로 숨어드는 망상어, 놀래기, 볼락을 보면 갯바위에서 헛낚시를 던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고기도 사람 손이 닿으려 하면 순식간에 달아나고 만다.
물 속 풍경을 즐기면서 나는 주로 참고둥을 잡는다.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물 밖에서도 고둥을 잡을 수 있지만 알이 잘아서 재미가 없다. 한 길 이상 들어가면 제법 굵은 고둥과 성게, 전복, 앙장구(보라성게)도 만난다.
암초 틈에 교묘하게 자라는 성게를 딸 때는 좀 미안하기도 하다. 뾰족한 가시로 완전무장을 하고도 모자라 바위 틈새에 숨어 자라는 가련한 생명이라니.
양파망 주머니에 고둥을 가득 채우는 데는 한 시간도 안 걸린다. 한 번 잠수하면 몇 개씩은 건져 올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고둥이 아무 곳에나 있는 건 아니다. 해저가 모래나 뻘인 곳에서는 고둥잡이가 번번이 실패한다. 물이 깨끗해 보여도 물 속이 죽어있는 곳도 있다.
솟구쳐 올랐다가 숨 한 번 들이쉬고 다시 곤두박질치면서 나는 바다를 온몸으로 느낀다.
뭍에서 완상하는 바닷가 아닌 물 속에서 피부로 느끼는 바다. 그 바다는 언제나 생명력이 넘친다. 긴 머리 풀어 헤친 해초며, 느릿느릿 기어가는 고둥들이며, 은빛으로 떼지어 달아나는 멸치들이며…
수심 이삼십 미터 이상 들어갈 수 있는 스쿠버다이빙도 좋겠지만, 그건 슈트 입고 산소통 메고 얼마나 번거로운가? 수영복에 수경 하나만 끼고 들어가면 해저의 세계를 유영할 수 있는 스킨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처럼 배를 빌려 나갈 필요도 없고 20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를 짊어지는 번거로움도 없다.
바다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면 일조량이 적어서 해조류의 색깔이 얕은 곳보다 선명하지 않다고 하니 바다 구경은 역시 스킨다이빙이 제격이 아닌가 싶다.
수심 5미터 정도야 스킨다이빙으로 실컷 볼 수 있다. 날씨만 좋으면 수심 10미 터 이상도 깨끗하게 보일 정도로 동해안은 물이 맑지 않은가. 특히 경주 감포바다 위쪽으로는 모래알도 헤아릴 정도로 물이 맑은 곳이 많다.
동해를 지척에 두고 사는 행운으로 나는 해마다 여름이면 스킨다이빙을 실컷 즐긴다. 가깝게는 주전, 멀리는 감포 지나 오류까지 원정 다이빙을.
양파망 주머니에 참고둥을 가득 채워 돌아오는 마음은 아이처럼 마냥 즐겁다. 물 속에서 나와 잠시 몸을 말리고 그 위에 바로 옷을 걸친다. 10분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샤워가 따로 필요 없다.
자동차 시트가 좀 젖는다 한들 어떠랴. 바다를 온몸에 묻히고 돌아가는 길은 즐겁기만 한데.
젖은 머리칼로 아파트에 들어서면 이웃들이 한 마디씩 하겠지.
"진수 엄마. 또 물질하러 갔다 오는 모양이지?"

아바타정보|같은옷구입
봄신상품 구입하기

'名色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깎이  (0) 2005.07.14
바다의 부활  (0) 2005.07.14
바다산문  (0) 2005.07.14
울산아리랑  (0) 2005.07.14
인정지대  (0) 2005.07.14
집에서 10분이면 동해를 볼 수 있기에 나는 자주 바다에 간다.
물옷을 안에 입고 겉옷을 걸친 뒤차의 시동을 걸 때부터 내 가슴은 벌써 두근대기 시작한다. 수초가 우거진 바다 밑에서 쏨뱅어와 참고둥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스쿠버다이버가 되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우연히 들여다 본 해저의 세계가 너무나 아름다워 나는 기회만 닿으면 바다에 들어가곤 한다.
물 속에서는 사물이 굉장히 커 보이고 깊어 보여서 신비스럽다. 결 고운 머리채를 늘어뜨린 해초가 바닷물에 일렁이는 모습에 눈길을 주다보면, 산발하고 다리에 휙휙 감겨오는 또 다른 해초에 당혹하기도 한다.
암초와 암초가 협곡을 이루고 놀래기와 망상어가 해초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고 달아난다.
다이버들은 수심 5∼10m가 가장 아름답다지만 그 정도 수심은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것이고, 나는 고작 수심 1∼3m에서도 탄성을 지르곤 한다.
바위에 붙어 느릿느릿 움직이는 고둥을 잡느라 물 속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니기도 하면서 한나절을 보내다가 허기지면 고둥을 삶아 쏙쏙 빼 먹는 재미는 동심 그대로다.
생각해보면 내가 해저의 세계를 동경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해 여름 나는 가족들과 삼천포 해수욕장엘 갔는데 어쩌다가 파도에 휩쓸려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꼬르륵 가라앉는 순간, 눈감을 사이도 없이 나는 바다 밑을 구경하게 되었다. 꼭 만화에서 본 것 같이 이상하게 생긴 해초가 물 속에서 춤을 추는 광경을.
아버지에 의해 구출된 뒤에 따개비 만한 내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화가들도 나처럼 바다에 빠져 본 게 분명해.’
그날 내가 바다에 빠졌을 때 본 풍경이 현실이었는지 아니면 상상에서 비롯된 착시였는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바다만 생각하면 나는 만화그림 같은 해저 풍경을 떠올렸었다.
중학교 땐 '해저 2만리'란 영화를 보고 아름다운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내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해저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나는 바다에 대해 외경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를 알기 전에 나는 이룰 수 없는 짝사랑처럼 속으로만 앓으며 바다를 그리워했고 꿈꾸었다. 내륙지방에서만 오래 살다 보니 바다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해묵은 첫사랑의 추억처럼 가슴 한쪽에 고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동해가 지척인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해묵은 그 첫사랑은 갑자기 현실로 나타나서 나를 뒤흔들었다.
나는 한 발 한 발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는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맞이하였다.
해뜰 무렵, 미려한 광택으로 빛나는 바다를 보면서 나는 충만한 기쁨을 느꼈고, 분노하는 파도를 이끈 채 뭍으로 엎어지는 바다를 볼 때는 가슴 시린 아픔을 느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수평선이지만 그 바다 속엔 크고 작은 암초가 있고, 때로는 바위에 붙어 있는 히드라를 보지 못해 쏘일 때도 있다.
우리의 인생이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지도 않았던 암초에 부딪혀 좌초당하기도 하고 숨어있던 어두운 운명의 공격을 받아 당황하기도 한다.
바다는 인생에 대한 伏線복선을 내게 늘 깨우쳐 주곤 하는 것이다.

며칠 전, 파도가 잔잔할 때를 골라 바다에 들어갔다.
물 속에 몸을 담그면 이상하리만큼 평화와 안정을 얻는 것은 모태로 돌아온 듯한 무의식 때문일까?
수경을 끼고 해저 세계를 탐사해 나가면서 낯익은 바위들 사이에 말미잘이 얼마나 컸나 성게가 얼마나 자랐나 살펴보다가 좀 깊은 곳에서 나는 전복 한 마리를 발견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나는 잽싼 동작으로 전복을 땄다. 전복은 슬쩍 건드렸다간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번에 내 손안에 들어온 전복은 어린아이의 손바닥만큼 작았다.
이 먹음직스런 바다의 보물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을까 군침을 삼키며 바라보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직 덜 자란 전복, 그도 살려고 이 물에 태어난 목숨인데 하필이면 내가 지금 잡아야 하리? 직업적인 해녀들한테 잡히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나야 먹고 싶으면 돈주고 사면되는 일인데 구태여 그를 잡아 무엇하리?
나는 전복을 손에 쥐고 다시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
여기쯤이면 사람 손길이 닿기 어렵겠지 싶은 곳에 그 전복을 놓아주고 오면서 내 마음은 너무나 가뿐하고 즐거웠다.
평소에도 나는 바다에서 얻은 것은 그냥 버린 적이 없다.
고둥을 잡아도 먹을 만큼만 잡고, 잡은 만큼은 다 먹는다.
세상의 목숨 있는 것들이 결국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므로 먹히는 것도 그들의 본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먹고 남을 정도로 많이 잡아서 말없는 생명들을 짓밟고 싶진 않다.
어쩌다 바위틈에서 게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꼭 당부한다.
"집에 가서 꼭 요리해 잡수세요. 죽여서 버리면 안돼요."
바위틈에 숨어드는 게를 꼬챙이로 찍어내는 사람들은 거의가 장난이다. 다소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잡은 게들은 대개가 집으로 끌려가 아이들의 노리개로 구르다가 죽게 되리라.
가엾은 노릇이지만 어찌하랴. 바위틈의 그 수많은 게들을 보호하자고 내가 어깨띠를 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나 나는 바다를 고맙게 생각하자고 누구에게나 말한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는 저 넓은 바다의 아량을 이해하고 마지막 식량의 보고라는 바다를 좀 더 아끼고 보호해 주자고 얘기한다.
솨르르르… 모래사장에 밀려나온 파도 한 자락이 나에게 해저의 소식을 전해준다.
해저의 계절은 육지보다 한 계절이 빠른 것 같다. 육지의 한겨울에 봄을 알리는 햇미역이 나오는 것처럼.
가을이 시작되는 뭍에 파도는 바다 속 겨울 얘기를 속살거리며 부서지고 있었다.

아바타정보|같은옷구입
봄신상품 구입하기

'名色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의 부활  (0) 2005.07.14
즐거운 스킨다이빙  (0) 2005.07.14
울산아리랑  (0) 2005.07.14
인정지대  (0) 2005.07.14
방어진 사람들  (0) 2005.07.14
화장도 하지 않고 집에서 입던 옷차림으로 외출했던 어느 날, 인파로 붐비는 옥교동 네거리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오가는 사람들 속으로 무심히 발길을 내딛는 내 등에 그녀가 갑자기 손바닥을 철썩 내리친 것이다.
"나 모르겠어라?"
반가워서 죽겠다는 듯이 벌쭉벌쭉 웃으며 서 있는 여자 하나.
"어머, 어머, 어머…"
하면서 나는 재빨리 속으로 그 여자의 신원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내 등을 때린 걸로 봐선 굉장히 친했던 사이가 분명한 모양인데…
"애들은 공부 잘하죠? 남편도…"
긴가민가하면서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유도신문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그 잡놈 집 나간지 이태가 지났당께. 갈 때 내 돈 홀랑 다 빼갖구서 날랐는디 염치가 없는지 안 기어 들어오네 잉."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행인들이 뒤돌아 보거나말거나 큰 소리로 얘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5년 전의 그 '사건'을 기억 창고에서 고스란히 꺼낼 수 있었다.
남편 한 번 잘못 만난 죄로 공사판에 못 빼러 다니고, 여관 파출부에다 난전 보따리장사 등등 안해 본 게 없었다던 그녀. 지지리도 가난하던 고향에선 먹고 살 방도가 없어 일을 찾아 돈을 찾아 울산으로 막연히 흘러왔다던 그녀.
땡전 한 푼 없이 시작한 살림에 남편은 신혼 초부터 계집질로 속을 썩였다던가.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단칸방에서 피눈물나게 사는 모양을 보고 어느 날 친정 언니가 돈을 빌려줘서 그녀는 동네에 코딱지 만한 부식가게를 하나 차렸다.
이른 새벽 역전시장에 나가 채소며 과일 등을 도매로 떼어다가 하루종일 다듬고 씻어 가게에 내놓느라 그녀의 손에는 물 마를 날이 없었다. 일산진 바닷가 그 얼음장같은 날씨에 하루종일 고기 배를 가르고 시래기를 삶아 씻느라고 손발에 얼음이 박혔다. 퉁퉁 부어오른 손등은 시퍼렇다 못해 꺼멓게 죽어있었다.
입심 사나운 동네 아낙들 비위를 잘도 맞춰가면서 그녀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천진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에 전라도 특유의 끈질긴 생활력이 큰 재산이었다.
구멍가게였지만 그런 대로 장사 재미가 쏠쏠했던 그녀는 모처럼 아이들에게 고기 반찬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고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른 날과 같이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나 새벽 도매시장에 물건을 떼러 나가던 길이었다.
골목길을 벗어나 버스길에 나온 그녀는 급히 나오느라 지갑을 깜박 잊고 온 걸 깨달았다. 새벽시장에 늦어질텐데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녀는 뒤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집 앞에 당도한 그녀는 여명에 잠긴 마당을 가로질러 돌아앉은 단칸방의 문고리를 휙 잡아당겼다. 동시에 방안에서 벌어진 풍경-신발 벗을 사이도 없이 방안에 들어선 그녀는 한순간 졸도를 하고 말았다.
곯아떨어져 있던 남편이 허연 살을 드러내고 어떤 여자와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발치에서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고.
그녀가 정신을 차려 보니 남편과 그 여자는 줄행랑을 치고 없었다. 남편과 한 덩어리가 되어 있던 여자는 우유배달 아줌마였다.
새벽마다 아이들의 우유를 넣어주던 그 여자가 언제 남편과 눈이 맞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건 이후 남편과 우유아줌마는 행방불명이 되고, 그 일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져나갔다.
그녀가 잠시 졸도한 틈을 타서 남편과 우유아줌마는 농짝을 뒤져 장사밑천을 송두리째 갖고 튀었다.
두 집의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를 도둑맞고도 울지 않았다. 우유아줌마 역시 바람기가 심한 여자로 남편이 포기하다시피 한 여자였다던가.
그 일이 있은 뒤 그녀는 사람이 싹 달라졌다.
얼굴에 로션 하나 바르지 않던 그녀가 루즈를 바르기 시작했다. 눈썹도 그리고 아이섀도도 발랐다. 어울리지 않게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엉덩이를 씰룩대면서 외출하곤 했다.
나는 조금씩 그녀가 낯설어져서 구멍가게 출입을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새 그녀를 잊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나를 다 기억하세요?"
"왜 몰라? 나헌티 잘해주고 우리 새끼들헌티두 잘해줬는디…. 가게에 안오길래 워디 멀리 이사한 줄 알았는디 아직 울산 살구마 잉?"
파마 머리에 뽀얀 화장, 화려하게 입었으나 천박해 보이는 옷차림. 그녀의 사는 양이 빤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애들은 외갓집에서 학교 다니고 나는 혼자 살어. 팔자 편하지 뭐. 그 잡놈은 그 때 그 년하고 1년도 못살고 찢어졌재. 돈 떨어지니까 들어와서 싹싹 빌길래 내가 연놈 머리끄댕이를 방바닥에 패대기쳤지. 미친놈, 그 뒤로도 몇 계집을 더 거치더니 재작년에 만난 무당하고 어디서 점집을 차렸다냐 어쨌다냐."
여전히 남의 얘기하듯 주워섬긴다.
"난 열심히 돈 벌어서 점포 한 칸 사 놨당게. 놀러 오더라고 잉?"
"경제력도 있는데 남편과 이혼을 하지 그래요?"
"애들 불쌍해서 그러지라… 아비 없는 자식 만들기 싫어서…"
그녀의 나이 올해 서른 여덟. 큰 아이가 내년에 중학에 간다.
시골서 곱게 자라 현모양처가 가장 큰 꿈이던 이 여자를 천박한 화장으로 뾰족구두 신고 외출하게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동사무소 일선에서 일하는 부녀복지 요원들을 만나면 이런 얘길 자주 듣는다.
"다른 도시보다 울산에는 편부와 편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처음엔 부모가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엄마가 도망갔다고 하더군요."
소년소녀가장이 많은 것도 사회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편부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소년소녀가장은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어머니가 바람같이 집을 나간 가정은 주민등록상 결격사유도 없이 아버지가 아이들을 방치해버리기 때문에 비행청소년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는 시내 어느 지역엘 가면 집 나간 유부녀가 많다느니, 어느 곳엘 가면 삐삐아줌마가 줄을 섰다느니 하고 비아냥거린다.
집 나간 유부녀나 삐삐아줌마는 우리 사회의 공동 책임이다. 집 나간 유부녀에게만 돌을 던지고 집 지키는 무능한 남편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삐삐아줌마만 죄 있고 그 아줌마들이랑 재미있게 노는 남자들은 죄가 없는가?
옥교동 네거리에서 "그 잡놈 집 나갔어라."하고 서슴없이 내뱉던 그 여자는 그래도 표창감이다. 사임당 상이라도 받아야 한다. 자신은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자식들은 버리지 않고 거두고 있으니 말이다.


아바타정보|같은옷구입
봄신상품 구입하기

'名色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즐거운 스킨다이빙  (0) 2005.07.14
바다산문  (0) 2005.07.14
인정지대  (0) 2005.07.14
방어진 사람들  (0) 2005.07.14
울산이 좋아라  (0) 2005.07.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