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어떤 감동. 나는 그런 마음의 동요를 매혹이라 부르고 싶다.
한 폭의 그림, 한 곡의 음악, 혹은 한 편의 영화나 책이 매혹일 때도 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숨을 탁 막히게 할만큼 매혹적일 때도 있다.
스물 다섯 살 때 처음 가 본 제주 성산포 앞 바다는 거대한 자력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일출봉의 분화구 안에 무성하게 피어있던 원추리 꽃과 세찬 바람에 드러눕던 키 큰 풀들을 잊을 수가 없다.
스메타나의 '몰다우강'을 처음 듣던 날, 나는 목이 메어와서 어쩔 줄을 몰랐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슬픈 그 선율에 매료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허밍은 언제나 '몰다우'였다.
"저 옷 좀 봐!"
도시가 밤화장을 시작하는 시각, 번화한 거리 어느 옷가게 앞이었다. 쇼윈도우 안에 서 있는 마네킹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버렸다. 흑백의 대비를 멋지게 디자인한 그 한 벌의 옷에 매혹 당해 나는 밤잠을 설쳤다. 돈이 모자라 그 옷을 내 것으로 하기까지 안절부절하며 며칠을 보냈다.
나는 미스코리아나 영화배우 누구에게 매혹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단 한 번 어떤 얼굴에 홀딱 반해버린 경험이 있다.
양초처럼 하얀 얼굴에 검고 커다란 눈을 가졌던 그 사람은 입사시험 때 면접을 담당했던 모 회사 사원이었다.
"입사 후 어느 파트에 근무하고 싶습니까?"
무슨 대답인가를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저렇게 단아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그 형형한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속처럼 신비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신비의 눈동자는 한 달도 못돼 서울사무소로 발령이 나버렸다. 나에겐 아무런 귀뜸도 없이. 알고 보니 사생활이 무척이나 복잡해 이혼하고 서울로 도망갔다는 후문이었다.
첫눈에 매혹 당한 나의 짝사랑은 너무도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한 때 나는 이문열의 소설에 매료당했고 또 한 때는 조용필의 목소리에 반했으며 언젠가는 한 점의 그림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런데 매혹이란 감정은 아주 강렬하지만 지구력이 약하다는 걸 나는 차츰 깨달았다.
쉽게 뜨거워진 양철이 빨리 식어버리듯이 첫눈에 매혹 당한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미운 정 고운 정 들며 사귄 사람에게서는 매혹을 느낄 수가 없다. 때론 권태롭고 증오에 가까운 감정도 느끼며 멀리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참신한 매력으로 다가온 사람에겐 당장에 포로가 된다.
너를 위해 내가 무얼 어떻게 더 해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한 때 그 앞에서 못이 박힌 듯 서 버렸던 한 벌의 옷은 이태를 입지 못했고 나의 허밍도 '어두운 숙명'으로 바뀐 지 오래인 것처럼.
세상 살아가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이웃에 함께 살게 되어서 , 취미가 같아서, 혹은 자녀들이 같은 반 친구라서… 그 많은 만남 중에 나는 첫눈에 혹하는 사람보다 오랜 세월 사귀면서 정이 깊어지는 사람을 갖고 싶다.
총명하고 활달하고 아름다운 매력에 순간적으로 반하기보다 마음 깊은 곳 정을 줄줄 아는 사람의 끈끈함을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친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떤 이해관계로 맺어져 있거나 겉치레 사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유난히 '계중'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저런 핑계로 모임을 만들고 함께 어울려 놀면서 행여 자신이 무리에서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도 보인다. 혼자 외톨이가 되면 사회에서 버림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많은 사람들이 또 많은 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우애를 나누는 것이 가끔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저들은 진심으로 서로 이해하고 좋아할까? 불의의 사태에 상대방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는 건성으로 친하는 백 명의 친구보다 진실을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일생 동안 한 명의 진실한 친구만 있어도 인생에 성공한 거라고 한다. 열 명, 스무 명의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이 나는 부럽지 않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보다 내가 보기에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가 약간 괴팍하다고 해도, 그의 외모가 형편없다 해도, 그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나는 첫눈에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보다 오래 지켜볼수록 정이 가는 사람을 사귀고 싶다. 나도 누구에겐가 그렇게 다가가고 싶다.
'평생 친구 단 한 명'은 매혹적인 대상이 아니다. 은근하고 면면하게 이어지는 사이. 질화로의 숯불처럼 속으로 뜨거운 사이다.
나는 평생친구 단 한 명을 가졌으므로 친구 많은 사람이 부럽지 않다.
내가 가장 외로울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 내가 상처받아 괴로워할 때 기꺼이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 그걸로 나는 만족한다. 모난 내 마음을 다 헤아리고, 인간관계에 실패가 많은 나를 그녀는 잘 위로해준다.
25년 동안 쌓은 우리 우정에는 때로 시기 질투도 있었고 환멸도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원망한 적도 많았다. 서로에 대한 독점욕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친분을 허용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지나치게 집착하고 집요하게 서로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묵은 정이 좋다'는 걸 서로 깨달았다. 첫눈에 매혹되는 새 사람보다 미운 정 고운 정 쌓인 우리 둘이 가장 좋은 파트너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성격이 모난 사람을 듣기 좋게 '개성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아마 개성이 뛰어난 사람에 속할 것이다. 직언을 서슴지 않는 급한 성격하며, 섣불리 마음을 다 열었다가 번번이 상처받곤 하는 감수성하며.
평생 친구 단 한 명은 그런 나를 다 이해한다.
그녀와 나는 결코 첫눈에 매혹되지 않았다. 연륜을 쌓아가면서 오래 사귀다 보니 그녀처럼 예쁜 사람도 드문 것 같다. 중년여인의 잔주름 잡힌 얼굴이 갈수록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내가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일 게다.
한 때 불같이 사랑하던 사람들이 열렬하게 미워하면서 돌아서기도 하고, 내 것 네 것 없이 지내던 사람들이 소 닭 보듯 스치는 모습도 본다.
인간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그래도 나는 가끔 허망하고 쓸쓸하다. 나를 스쳐간 인연들이 다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요즘 어떤 일에도 쉽게 매혹 당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도 그렇고 사물을 대해도 그렇다. 젊은 날 뜨거운 가슴이 있을 땐 화르르 타오르던 감정이 나이 들어감과 함께 차분하게 가라앉는 탓일까?
덤덤한 일상을 보내면서 문득문득 내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끔 입가에 쓴웃음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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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양(斜陽)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에 서커스가 들어왔다.
왕복 8차선의 넓은 도로 양편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布陳포진하고, 사이사이 꽤 넓은 땅이 아직 공터로 남아있는 곳. 곡마단은 이 공터 한 가운데 천막을 쳤다.
原木材원목재로 천막의 골조를 만드는 단원들의 모습이 며칠 전부터 눈에 띄었지만, 사람들은 설마 그게 서커스 천막일까 싶었다. 이 도시에 보기 흔한 모델하우스겠지 생각했다.
서커스 천막은 빨강 파랑 원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도 현대식 최신공법으로 건축된 고층빌딩 앞에는 왠지 기가 죽어 보인다. 천막밖에는 '세계적 수준의 70년 전통 서커스단'이라느니 '신비의 기예, 환상의 묘기 국내 최초 공개'글씨들이 깃발과 함께 나부끼고 있는데도.
추석을 앞두고 신도시에 들어온 서커스단은 공터에 집을 지어놓고 이 도시 전역에 초대권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우편함에 한 장씩 들어있는 초대권을 가지면 반값에 서커스를 볼 수 있단다.
하지만 신도시의 젊고 세련된 주민들은 서커스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쾌적한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으로 즐기는 '세기의 마술'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는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구경 갔던 장터의 서커스단을 생각하며 나는 어느 날 곡마단 구경을 나섰다.
매표구 앞에는 귀여운 피에로 대신 덩치 큰 사내가 새치기 손님을 지키고 있다. 머리 위에서는 외나무다리에 묶인 원숭이들이 길 가는 아이들을 부르고 있다.
천막을 밀치고 들어서니 훅 끼치는 땀 냄새. 9월이라지 만 계절은 아직 여름을 벗어나지 못해, 관객들은 땀을 흘리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더러는 웃통을 벗고 더러는 부채를 부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서커스단의 레퍼토리는 별로 변한 게 없다.
마술사의 손장난에 '이번만은 속지 않겠다'고 두 눈 번쩍 뜨고 지켜보는 마술도, 강아지 몇 마리가 재롱을 부리는 동물묘기도, 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걷는 외줄 타기도. 다만 변한 것은 어른이 되어버린 내 시선 뿐이다.
어린 시절, 마을에 서커스가 들어오면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어른들을 졸라 서커스를 보고 온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자랑이 대단했었다.
허리를 뒤로 젖혀서 발이 머리에 닿도록 몸을 구부리던 서커스단의 소녀는 밥 대신에 식초를 먹고산다고 했다. 말 안 듣고 말썽 부리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말했다.
"서커스단에 잡아가라고 할 테다."
그럴수록 서커스 구경은 우리들에게 더욱 신비하고 기괴했다. 까마득한 공중에서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본 뒤, 이부자리에 오줌을 싼 아이도 있었다.
어린 눈에는 그토록 높아 보이던 무대, 아득한 공중 어딘가에 매달려 있던 외줄, 하늘을 나는 듯하던 공중곡예.
그러나 오늘 내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 낮고 후줄근하고 조잡해 보인다. 엉성한 그물하며, 얼기설기 설치한 나무 기둥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팽팽한 긴장으로 쥐 죽은 듯 고요하던 옛날의 객석은 맨땅이었지만 관객들은 진지하게 서커스를 지켜보았다. 손에 땀을 쥐면서, 때로는 짧은 탄성과 함께 요란한 박수를 아낌없이 쳐주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객석은 산만하고 무질서하다. 접는 의자 하나에 천 원씩 내고 앉는 자리, 관객들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서커스를 즐기고 있다.
외줄을 타던 사람이 중심 이동을 잘못해 휘청거려도, 공중비행하던 사람이 그물 위에 떨어져도,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볼 뿐이다.
감동과 환상이 사라진 시대.
하긴 이즈음 우리들은 얼마나 큰 사건 사고로 충격에 대한 면역이 되었는가? 수백 명의 목숨이 한 순간에 매몰되어 버린 현장을 두 눈 뻔히 뜨고 지켜본 우리들이 아닌가? 그에 비한다면 곡예사의 실수는 자동차의 접촉사고처럼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덤블링하는 소녀도, 아크로바트하는 소녀도, 그 옛날엔 참 앳된 나이였는데, 오늘 소개되는 여인은 아무리 봐도 나이 사십은 되었겠다. 아마 어릴 때부터 이 바닥에서 자라온 여자일 것이다.
무대에서 묘기를 부리고, 천막에서 먹고 자고, 그러다가 어떤 남자와 사랑도 했겠지. 어쩌면 아이도 낳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다소 지루한 표정으로 공중그네를 탔다. 남자 단원과 함께 하나의 그네에 발을 같이 얹었다. 둘이 서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장난기가 조금씩 담긴 표정이다.
휘청, 하고 남자가 일부러 줄을 퉁기자, 금방 중심이 흐트러진 여자가 남자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린다. 객석에서 키들거리는 웃음들.
옛날 곡예사는 기예에만 몰입했지만 현대의 곡예사는 코미디 연출도 해야 하나 보다. 서커스 천막 입구에 현수막으로 내 걸린 선전 문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재미없었다면, 웃지 않았다면 입장료 환불해 드립니다'
그 말을 책임지기 위해서 곡예사는 재주를 부리는 도중에 익살스런 몸짓으로 관객들을 웃겼다.
그러나 그 웃음은 조금쯤 눈물겨웠다.
3부로 나누어서 마술, 동물묘기, 공중곡예를 펼치는 곡마단은 무대가 바뀌는 사이사이 책받침도 팔고 카메라도 판다. '동동구리무'를 팔던 그 전통은, 이제 컴퓨터가 내장된 전자동카메라를 세금만 받고 파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온몸을 구부려서 조그만 유리상자 속에 들어갔던 소녀가 곡예사들의 묘기가 조악한 색채로 코팅되어 있는 책받침을 객석 사이로 다니면서 팔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서커스의 하이라이트는 공중곡예. 어린 내 눈에 까마득한 높이로 느껴졌던 허공에서 곡예사들은 그네를 탄다.
한 사람이 천장 가운데 매달린 그네에 발을 걸고 거꾸로 매달리자 맞은편에서 또 하나의 그네를 탄 사람이 몸을 날린다. 찰나, 두 사람은 신뢰의 눈빛을 주고받은 뒤 한 순간 허공에서 하나가 된다.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여지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위험한 묘기. 그러나 이 긴장된 순간마저도 곡예사들은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두 개의 그네에서 마주 날아오던 상대편의 바지를 훌렁 벗겨버리는 것이다.
관객들의 폭소로 사기가 치솟는 곡예사들. 천막 안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비로소 돈이 아깝지 않았다는 듯한 얼굴이다.
워낙 크고 많은 일에 놀라봐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웬만한 일로는 크게 놀라지도 웃지도 않는다. 공중그네를 놓쳐 그물로 떨어지는 곡예사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고, 그가 익살스럽게 그물 위를 걸을 때도 많이 웃지 않는다.
서커스는 하루종일 연속공연이라지만, 신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천막 앞을 지나쳤다. 이제는 흘러간 서커스 따위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10년만에 고향을 찾아왔다는 서커스단의 선전도 아랑곳없이 공터에 세워졌던 천막은 공연기간이 끝나기 바쁘게 헐리고 있었다.
곡예사와 후견들만도 열댓 명은 넘을 텐데, 그 많은 식구들 밥은 굶지 않는 것일까? 저 많은 장비와 비품을 끌고 내일은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흙바닥에 앉았다가 옷을 털고 나가버리면 그만인 손님들.
그러나 천막 아래서 자고 먹는 사람들은 천막과 함께 유랑하며 언제까지나 서커스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그들의 울타리였던 무대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어져서. 혹은 그들의 피 속에 스며있는 보헤미안 기질 때문에.
서커스가 떠난 자리는 황량한 공터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구경하던 서커스는 꿈과 환상과 놀라움을 주었지만, 그 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구경하는 서커스는 왠지 쓸쓸하고 서글펐다.
기우는 햇살이 그러하듯이,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슬프다.
한 때의 인기를 누리며 세간의 화제로 떠돌던 곡마단도 이제는 거의 잊혀졌다. 70년 전통이라고 아무리 우겨봐도 서커스를 부흥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일까.
곡마단은 떠났지만 내 마음 언저리엔 울긋불긋한 천막이 아직 남아있다.
한 때는 그리도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곡마단 나팔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다시 한 번 그 소리에 가슴 설레며 천막 주위를 서성대고 싶다.
아직은 꿈이 있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어디엔가 실존하는 것으로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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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금봉암  (0) 2005.07.14
키 낮은 산죽이 정답게 몸을 비벼대는 산길을 걷는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낙엽송 숲도 지나고, 천태만상의 인간 세상처럼 잡목이 우거진 길도 걷는다.
산을 오르면 어느새 가슴속에 알 수 없는 희열이 차 오른다. 티끌 세상 온갖 잡념은 점점 잊혀져 가고 산에 머무르는 그 순간만은 나도 자연이 된다.

언제나 저항 없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산이 좋아 틈만 나면 산에 간다.
다 버리고 싶으면서도 끝내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산은 말없이 포옹해준다.
「산은 말없음표로 억 년, 사람은 느낌표로 일 년」

내원사를 품에 안은 천성산, 하산 길에 들렀던 金鳳庵금봉암의 어느 하루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마른 잎이 수북수북 쌓인 비탈길을 낙엽스키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던 길에 만났던 암자.
통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으로 벽을 바른 작은 암자에는 碧栖籠벽서롱이라는 낡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인기척을 내도 소리가 없는 것이,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것일까?
햇살이 놀고 있는 작은 쪽마루가 앉기를 권하는 듯했지만 임자 없는 집에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져 주춤거리고 있는데, 신발장 위에 하얀 종이가 눈에 띈다.

'쌀은 부엌에 있고, 물은 암자 뒤에 있습니다. 먼 길 오셨으니 따끈한 차 한잔에 쉬어 가십시오.'
집주인의 필적 끝에는 두어 달 전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추신으로 군불을 때면 방이 아주 따뜻하다는 말과, 녹차는 벽장에 넣어 두었다는 말까지 곁들여 있었다.

그리고 스님의 편지 옆에는 등산객들의 필적으로 보이는 편지 네댓 장이 나를 새로운 감동에 젖게 했다.
'등산길에 잘 쉬어 갑니다. 인연이 있어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비가 와서 스님 우산을 잠시 쓰고 갑니다. 맑은 날 돌려드리러 오겠습니다.'
'인도 가셨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부디 좋은 여행되시고 성불하십시오."

금봉암 빈 암자에는 듣는 사람 없는 얘기가 편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사람의 발길이 쉽지 않은 곳.
집주인은 문도 잠그지 않고 길을 떠났다.
오가는 사람이 쉬어 가라고 다구를 가지런히 차상 위에 올려놓고서.

그 믿음이 고마워서 누군들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집주인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나는 찻물을 끓였다. 작설차를 마셨다.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 먼 계곡의 물소리. 어린 새들이 가늘게 칭얼대는 소리…
기우는 햇살도 잊어버리고 나는 금봉암에 마냥 앉아 있었다.

보름달이 한 번 떴다가 졌다.
산은 완전히 알몸이라 좋았다.
숲이 우거졌을 때는 산의 몸매를 볼 수 없지만, 옷을 벗어버린 겨울산은 산세를 확연히 드러낸다.
숨어 있던 바위와 골 깊은 계곡, 장쾌한 능선까지.

두 번째의 천성산 등반에서 나의 일행은 내원사에서 결재 중인 스님 두 분을 만났다.
도시락을 먹고 더운물을 마시던 중에 지나가던 두 비구니를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이다.

해맑은 얼굴의 童顔동안에 티없는 표정의 묘수스님은 금봉암에 군불 때러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비워 둔 암자지만 가끔 가서 청소도 하고 불도 지펴야 한다고.
우리는 금봉암의 내력을 얘기 들었다. 내원사의 부속 암자로 신라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토굴을 보수해 지은 작은 암자. 암자 뒤로 산을 조금 오르면 바위굴이 있고, 그 바위 속에서 석간수가 흘러 나와 식수로 쓰이는 곳.

금봉암 스님이 인도로 떠나기 직전에 어떤 여인이 암자를 찾아와 머리를 깎겠다고 하더란다. 자신은 속세에 염증을 느꼈으며, 미련도 후회도 없이 수도승이 되어 평생을 혼자 살고 싶다고 눈물로 애원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가만히 그녀를 달래어 부엌에서 공양주 일이나 거들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보라고 타일렀다 한다.
아무 말 없이 며칠을 잘 지내던 그 여자는 그러나 닷새도 견디지 못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속세에 정리하지 못한 일들이 남았을까. 아니면 두고 온 인연들이 그리웠을까.

산사에는 가끔 머리를 깎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대개는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하산하는 경우가 많단다.
修道人수도인은 어떤 사명감을 띄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묘수스님은 말했다.
속인들은 현실을 도피해 산 속에 와서 일시적인 위안을 느낄 따름이지만 스님들은 수도생활이 자신의 운명임을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 받아주고 말없이 그 자리에 선 산처럼 수도인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일까?
세상살이 힘겨울 때마다 어디 절에나 들어가 숨어 살아볼까 하고, 마치 목가적인 생활을 꿈꾸듯 쉽게 얘기하던 일들이 부끄러워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 몫의 운명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나는 왜 갖지 못했을까? 남의 포켓 속에 든 행복을 훔쳐보며, 언제나 덤으로 더 가지고 싶은 욕망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모든 걸 버리고, 또 잊어버리겠노라고 산사를 찾아왔다가 며칠을 못 견디고 떠나는 사람들. 나도 결국 그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일 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뜻 깊은 얘기를 나누고 우리는 음력 열 엿새 달을 보러 금봉암으로 오마는 약속을 했다.
인적 끊긴 암자의 대나무 평상에 앉아 만월을 완상하는 것도 운치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속세 사람, 더군다나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켜줄 것인가 반신반의하면서도 우리는 정월 열 엿샛날 금봉암을 찾았다.
겨우내 산비탈을 굴러온 낙엽이 수북수북 쌓인 길을 밟고 금봉암에 들어서니 활짝 열린 문이 우리를 반긴다. 굴뚝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루는 이제 막 닦은 듯 윤기가 돈다.

'군불을 지폈으니 따뜻한 방에 쉬어 가십시오. 저희는 공양주라 저녁 지을 시간이 되어 내원사로 돌아갑니다.'
바삐 쓴 글씨 끝에는 묘수라는 법명이 적혀 있었다.
좀 일찍 올 걸 하는 후회와 함께 신발장 위를 보니 그 사이 또 두어 장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마음이 괴로워 들렀다가 하룻밤 묵고 갑니다.'
'우산 갖다 드리러 왔습니다. 스님 오시는 대로 부산에 들러 주십시오. 전화 0000.'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산 속.
주인을 향한 대화는 오로지 편지로만 가능할 뿐인데, 불확실한 수신에 기약 없는 발신을 믿는 그들은 얼마나 선량한 사람들일까?

매캐한 연기가 스며드는 금봉암 군불 땐 방에 앉아 우리는 차 한잔을 마셨고 촛불을 밝혔다.
밤이 깊어지자 물소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달빛은 기어이 촛불을 껐다.
가만히 암자를 벗어나며 나도 한 장의 편지를 써 두었다.
'티끌 세상 때를 조금이나마 벗고 갑니다. 세상살이 힘겨울 때마다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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