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난 뒤부터 등산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대기엔 상기 푸른 어둠이 멈칫거리며 남아 있는 이른 아침.
아파트 뒤쪽으로 걸어서 십 분쯤이면 나타나는 산길을 따라 나는 발 밑을 보지 않고도 산을 오를 수가 있었다.
지난여름 이곳을 지날 땐 잠이 덜 깬 어린 새들이 숲 속에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려왔었지.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기억이 새로웠지만 지금 여기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이제 곧 숲에는 푸른 잎이 되살아나고 새들도 다시 이곳에 둥지를 틀 것이다.
겨우내 듣지 못했던 새소리가 그리워 나는 駿足준족의 봄이 축지법으로 달려왔으면 싶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아파트촌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언덕을 밀어 부치고 야산을 깎아낸 터에 끝없이 들어서고 있는 건물들. 불과 몇 달 사이에 산이 하나 없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서 있는 걸 보면서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문득 낯익은 새 소리가 들려왔다.
깍깍깍.
그것은 동터오는 아침을 우짖는 까치 소리였다. 나는 까마득히 잊고있던 고향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놀랍게도 까치는 철탑 위에 높다랗게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산이 가까운데도 하필이면 저 곳에다 집을 지었을까?
철탑 꼭대기 근처에 위태위태하게 걸려있는 까치집을 보며, 나는 참 잔망스런 새도 다 있구나 싶다가 이내 그 까치의 총명함을 깨달았다.
한두 달 사이에 산 하나가 잘려나간 곳이니 나무인들 온전할 것인가. 까치는 산에서 마음놓고 제 집을 지을 나무가 없음을 알았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보다 안전한 곳에 보다 튼튼한 집을 짓는다는 것이 철탑 위에 둥지를 틀게 되었나 보다.
깍깍깍.
정다운 그 지저귐은 어느덧 나의 마음을 어린 시절 고향집으로 이끌어 간다.
그 때가 아마 초등학교 이삼 학년쯤이었을까?
단발머리 촐랑대며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집 뒤뜰에 서 있는 나무 위에서 까치가 우짖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새가 흔할 때라 나는 예사롭게 보고 말았지만 이상하게 그 까치는 해 저물도록 다른 데로 날아가지 않고 나무 위에서 깍깍댔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까치는 친구 까치 한 마리를 더 불러다 나무 위에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까치들은 부리로 삭정이를 물어다 나무 위에 하나씩 하나씩 걸쳐놓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어린 내 눈엔 퍽 어설퍼 보였다.
내가 까치집을 짓는다면 삭정이를 한아름 안고 나무위로 올라가 단숨에 뚝딱 집을 지을 수 있을 텐데 하고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조그맣고 연약한 부리로 삭정이를 하나씩 물어다가 언제 둥우리를 다 만든담.
마당가에 서서 답답한 까치집의 기초공사를 지켜보던 나는 문득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까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그 길로 야산을 쏘다니며 삭정이를 주워 치마폭에 담아 집으로 날랐고, 툇마루에 수북이 쌓인 그 꼬챙이들을 널찍한 대바구니에 담아서는 장독 위에 올려놓았다.
까치더러 멀리 가서 삭정이 물어오는 고생은 그만하고 내가 주워온 걸 물어다 집을 지으라는 뜻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까치는 연신 나무 위를 오르내리며 깍깍거렸는데, 나는 까치가 바구니 속의 삭정이를 물고 가는 걸 볼 양으로 방안에 베개를 겹겹이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가 봉창으로 몰래 까치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사람이 곁에 있으면 까치가 멋쩍어서 삭정이를 물어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까치는 장독대 위에 내려오지 않았고, 애가 달은 어린 가슴이 이번엔 장독 위를 조심조심 기어올라 바구니를 좀 더 높은 담 위에다 올려놓았다.
머슴들이 들에서 돌아와 그 꼴을 보더니 왁자하게 웃어 제치며 나를 놀려댔다. 그러나마나 나는 집요하게 까치들이 바구니 속의 삭정이를 물어가기를 기다렸다.
하루는 읍내 장에 갔다 오는데 까치집이 어제보다 부쩍 높아진 것 같아 부리나케 장독 위에 올라가 보니 희한하게도 바구니 속의 삭정이가 많이 없어져 있었다.
어제 그제는 체면 차리느라 보고도 못 본 척하던 까치들이 오늘은 드디어 삭정이를 물고 갔구나 싶으니 어린 내 가슴은 참새 가슴이 되어 기쁨으로 가득 찼고, 오늘은 기어이 현장을 잡을 양으로 툇마루에 차려 놓은 꽁보리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봉창에만 눈을 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까치가 담 위에 내려앉아 삭정이 물고 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참 얄밉도록 눈치 빠른 새였다. 누가 보면 어때서 그렇게 새침을 떼고 안 물어 간담. 못내 서운했지만 나는 까치가 그 삭정이를 물어다 집을 지었다는 확신만으로 신기해서 입에 자랑이 마르지 않았다.
“니 할매랑 할밴가 부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환생해서 우리 집에 오신 것이라고 했다. 아침마다 까치밥을 나무 밑에다 부어주시며 어머니가 중얼중얼 하시는 말씀은 꼭 생시의 할머니와 얘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 때부터 나는 사람이 죽어서 새가 된다는 것을 막연히 믿게 되었는지 모른다.
까치가 우리 집 뒤뜰에 집을 지은 뒤로 한동안 나는 비가 오면 까치집에 비 샌다고 걱정하고 바람 불면 까치집 날아갈까 봐 걱정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베갯머리에서 깍깍 울어대는 까치 소리가 어린 시절의 나를 무척 즐겁게 해주었다.
어디 그 뿐인가.
흔들리는 앞니를 뽑아 지붕 위로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너는 헌 이 가져가고 내겐 새 이를 다오'하면 까치는 어김없이 나에게 박씨같이 하얀 새 이빨을 주었고, 다래끼가 나서 동무들에게 놀림감이 되어도 '까치야 까치야 물에 빠진 네 새끼 건져줄께 내 눈 낫게 해다고. 고기하고 밥줄께. 내 눈 낫게 해다고' 하면 어느 샌가 내 눈의 다래끼는 씻은듯이 나았다.
이렇듯 까치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정서 속에 살아있었다.
칠월 칠석이면 견우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를 잇는다는 새. 먼데서 오는 길손을 단번에 알아내는 새.
까치는 오랫동안 우리 산야의 텃새로 모든 사람들에게 더없이 친숙한 야조野鳥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까치는 우리들 곁에서 떠났고, 남아있는 몇 마리는 이제 고향길 어귀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새가 되어버렸다.
깍깍깍.
철탑 위에 집을 지은 저 까치는 제 조상들이 사람들과 수천 년 동안 가까이 지낸 내력을 알기라도 하는 것일까?
산을 밀어내고 나무를 베어간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사람 가까이 살아온 제 조상의 피를 닮아, 산으로 가지 않고 철탑 위에 얼기설기 집을 지은 저 까치.
아침마다 철탑 위에서 아파트를 내려다보며 우짖다가, 시루떡 만한 창문을 여는 새댁이라도 만나면 까치는 제 소리를 알아들은 줄 알고 기뻐서 또 깍깍깍.
나는 까치 소리를 들으며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새벽같이 우물터에 나온 수다스런 여인네가 밤새 맑게 고인 물에 두레박을 던지듯, 미명이 걷힌 하늘을 깨뜨리며 까치는 곱지도 밉지도 않은 그 목소리로 새아침을 우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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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이 핀다.
푸른 잎사귀 사이에 숨어 있다 벌떼에게 들켜 어쩔 수 없다는 듯 얼굴 내미는 그 꽃을 어린 시절 고향 말로는 '감똘개'라 했다.
감똘개. 감똘개.
눈만 뜨면 감나무 밑으로 달려가 감똘개를 주웠다. 치마폭이 가득하도록.
바람이 불 적마다 감똘개는 우수수 떨어지고, 나무 밑에선 벌떼가 분주히 윙윙거렸다.
기왕이면 이제 막 떨어지는 새 꽃을 줍고 싶어 치마폭을 싸쥐고 오리걸음으로 감나무 밑을 헤매던 나에게 중학 다니는 옆집 오빠는 마치 삼손 같았다.
그가 감나무 밑동을 발로 한 번 뻥 차면 우박처럼 감똘개 소나기가 퍼부었다. 내 머리 위에도 삼손의 어깨 위에도 감똘개가 어지러이 떨어지고, 벌떼들은 놀라 일제히 나무에서 물러났다.
감똘개가 소나기로 퍼붓는데 재미를 붙인 옆집 오빠는 자꾸만 나무 밑동을 차다가 마침내 제 엄마의 고함 벼락을 맞았다.
"이 녀석아! 고무신 다 터진다."
오빠는 고함을 지르며 쫓아 나오는 제 엄마의 부지깽이에 쫓겨가고, 할금할금 눈치만 보던 나는 생쥐같이 재빠르게 집으로 달려왔다.
손바닥만한 쪽마루에 앉아 숨을 쌕쌕 몰아쉬고 치마폭을 벌려 감똘개를 쏟아 부으면, 꽃 속에 숨어 있던 개미들이 놀라서 기어 나왔다.
바늘에 실을 꿰고 감똘개 꽁무니를 찔러 목걸이를 만들면서, 나는 늘 이 세상에서 가장 긴 감똘개 목걸이를 만들리라 싶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저마다 목걸이 하나씩을 걸고 와선 '이것 봐, 내 것이 더 길어' 하고 아우성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목걸이는 내 소원대로 기차만큼 길어지지 않았다. 감똘개를 실에 꿰는 속도가 먹어치우는 속도를 당해낼 수 없었던 까닭이다.
꽃받침을 떼어낸 감꽃을 한 움큼씩 입안에 털어 붓고 씹으면 달착지근하고도 아릿한 향기와 함께 꽃즙이 목안으로 흘러들어 코가 훤히 뚫리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 맛을 못 잊어서 나는 늘 더 많은 감똘개를 줍기 위해 부지런히 감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떤 날인가는 누군가 감나무 밑을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 버려서 어린 내 가슴을 허무하게 했다.
한쪽에 흙과 뒤범벅이 되어 있는 감똘개를 아깝고 서운한 생각에서 손으로 헤쳐 보았지만 감똘개는 이미 먹을 수도, 실에 꿸 수도 없을 만큼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궁리 끝에 나는 아끼던 새 고무신을 벗어 나무 위로 던지기 시작했다.
꽃이 많이 열린 가지를 골라 신중하게 겨냥한 뒤 힘차게 고무신을 던져 올리면 아쉬운 대로 몇 개의 감똘개가 떨어졌다.
그때 구세주처럼 이웃집 삼손 오빠가 나타나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어머니의 부지깽이 앞에 한없이 무력한 삼손은 영 나타나지 않고, 고무신 던져 감똘개 따기엔 양이 차지 않던 나는 마침내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나무 밑동을 발로 뻥 차보았다.
하지만 감똘개는 날 비웃듯 잎사귀 뒤에 숨어 연노랑으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내 고무신은 그만 나무 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큰일 났다 싶은 생각에 꾀를 낸다는 것이 남아 있는 한 쪽 고무신으로 나무 위의 신발을 맞춰 떨어뜨리는 것이었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밭 매는 어른의 앉은키보다 더 작은 내 키에 비해 감나무는 너무나 높았던 까닭이리라.
이젠 감똘개를 따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무신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참새 만한 내 머리통을 꽉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또 신발 잃어버리고 왔구나 너?"
하고 어머니의 솥뚜껑 같은 손이 금방이라도 볼기짝으로 날아올 것 같아 가슴이 후들후들 떨렸다.
나는 결국 고무신 두 짝을 모두 나무 위에 올리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실직고한 뒤 자청해서 볼기를 맞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눈만 뜨면 감나무 밑으로 달려가던 버릇은 없어졌지만, 그건 신발 때문에 혼이 나서라기보다, 그때쯤 이미 감똘개가 지고 몽당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 만한 감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여름 내내 감은 나를 비롯한 동네 개구쟁이들로부터 한동안 잊혀진 채 무럭무럭 잘 컸다.
그러나 서늘한 바람이 들판을 서성거릴 무렵 주먹만큼 자란 감은 내 눈에 당장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룻밤 자고 나무 밑으로 가 보면 탐스러운 감이 몇 개씩 떨어져 있었지만, 그걸로는 욕심이 차지 않아 매미채로 생감을 따서 항아리에 담갔다.
항아리 속의 감이 익을 때까지는 며칠이 걸렸으므로 성질 급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장독대를 들락거리다가 더러 항아리 뚜껑을 깨먹곤 했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깨진 항아리 뚜껑을 뒤로 살짝 돌려놓고 시침을 뚝 따고 있다가, 비 온 뒷날 장독대 씻던 어머니에게 발각되면 나는 또 동네 밖으로 멀찌감치 내달아야 했다.
그렇게 많은 시련을 겪고도 감나무는 끈질기게 살아 한겨울까지 빨간 감홍시를 달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감똘개 목걸이 걸고 항아리 깨먹던 내가 성인이 된 뒤 어쩌다 한 번 씩 고향집에 들를 때도 감나무는 거기 그대로 서서 자랑스런 열매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건 마치 고향을 지키는 늙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고향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시골 노인네의 모습이었다. 객지로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감나무는 올해도 무성한 감똘개를 피우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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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 주말, 느닷없이 함박눈이 내린다.
예년 이맘때면 남쪽 꽃소식이 사람들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울 텐데 갑작스런 함박눈이라니.
겨우내 눈은커녕 얼음 구경도 못하다가 봄의 초입에 만나는 눈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축복처럼 눈을 둘러쓴 상록수들. 잎을 잃은 활엽수 가지마다 사뿐히 내려앉은 눈은 섬세한 실루엣으로 되살아난다.
눈에는 사물의 형태를 완만한 곡선으로 마무리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철조망 가시 위에도, 고층 빌딩의 첨탑 위에도 눈은 부드러운 곡선을 둘러주고 있다.
나는 차체에 소복하게 얹힌 눈을 털어 내고 불국사로 향한다.
무한대의 공간 속으로 가벼이 흩날리는 눈은 가속도가 붙을수록 눈보라로 휘몰아친다.
온 누리를 바느질감처럼 하얗게 누벼 박는 눈, 먼지처럼 무게 없는 몸들이 이 세상을 가볍게 유린하고 있다.
질주하는 차창 넘어 가난한 산야가 은백으로 뒤덮이는 광경이 한 눈에 잡힌다. 메마른 들판에, 초췌한 밭두렁에 봄눈은 은총처럼 퍼부어 내린다. 과수원에는 철모르는 배꽃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눈 내리는 날의 불국사를 보고 싶었다. 올 겨우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나 싶었는데, 겨울의 끝 거의 잊어버린 시점에서 함박눈 속의 불국사를 찾게 되다니.
불현듯 잊어버린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이젠 아무도 사랑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의 황폐 위에 함박눈처럼 그리움이 퍼부어 내린다.

'나, 여태 사랑을 잊고 살았네. 포기하고 살았네. 겨우내 숲 속의 오두막에 갇혀 나도 몰래 자폐를 앓고 있었네. 계절조차 잊어버린 가슴에 오늘 아침 문득 함박눈이 쏟아졌네. 뜨거운 사랑처럼. 쏟아지는 그 사랑의 맹세처럼.'

체념한 지 오래인 옛 연인이 나타나듯 눈은 내 가슴으로 느닷없이 쏟아져 내렸다. 준비도 예감도 없이 온몸으로 그를 받아들이며 나는 황홀한 충격에 빠진다.
하얀 주단을 밟고 불국사 경내를 걷는다.
다보탑보다 세 배쯤 키가 큰 소나무가 등에 구름 같은 눈을 얹고 기와지붕을 넘어 본다. 기와의 곡선 따라 부드럽게 쌓이는 눈이 친근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경내를 걷다가 문득 화들짝 핀 설중매를 만난다.
봄이 오리라는 예감으로 온 몸을 열어버린 가여운 목숨. 연분홍 꽃봉오리가 벌어지며 머금는 그 신비로운 미소는 눈 속이라 창백하기만 하다. 시한부 목숨을 각오한 설중매의 장한 사랑이 느껴진다.

'다시 내 가슴에 사랑을 담을 수 있었으면. 알 수 없는 열정으로 마음 설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가슴앓이를 할 수 있었으면. 오랜 자폐를 털고 내 마음에 의심 없는 사랑 하나 키울 수 있었으면.'

춘설(春雪)은 중년(中年)의 사랑을 부추긴다.
알 수 없는 연애감정이 솟구쳐 올라 눈발처럼 가벼이 공중에 뜨는 가슴이 된다.
이젠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꿈꾸는 세계가 이 세상 어딘가 에는 있을 것 같고, 내가 기다리는 아름다운 인연도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대상 없는 그리움으로 마구 설레는 가슴.
문득, 오랫동안 길렀던 머리를 자르고 어두운 색상의 의상들도 갈아입고 싶다. 예쁜 속옷도 사고, 귀여운 액세서리도 마련하고 싶다. 여태 부려보지 못한 감정의 사치와 허영을 오늘 마음껏 누리고 싶다. 스스로 쌓은 금욕의 성을 소리 없이 무너뜨리면서.
오랜 칩거로 나의 겨울은 너무나 황량했었다.
옷자락을 꼭꼭 여미고 가슴속의 화산을 숨긴 채 근엄한 금욕주의자의 얼굴로 살아왔다. 겨우 불혹의 나이에, 종착역을 눈앞에 둔 밤열차를 탄 듯 피곤한 기색으로.
살아갈수록 감동이 엷어져서 안타깝다.
사물을 보는 눈이 왜 자꾸만 시큰둥해지는 것일까.
눈 내리는 풍경 하나에도 가슴이 설레던 내 여린 정서는 세월의 풍화에 마멸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나이 들수록 마음 한 구석에 사랑 한 조각 담기 어려워지는 것은 점점 작아지는 마음그릇 탓일 게다.
내 마음에도 사랑보다는 미움과 원망이 아직 더 많다. 사소한 일에도 서운해 돌아서서 입술을 무는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너에게 얼마나 많이 주었는데, 너는 내게 돌려줄 줄 모르냐고 책망했었다.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마냥 주는 것으로 기뻐해야 하거늘, 나도 몰래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서운했었다.
영지에 고인 맑은 물처럼 영혼의 때를 벗고 싶다.
하지만 벗고 싶으면서도 벗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살고 있다. 五官오관은 열어 놓고 마음은 닫아 놓은 도시인에게 사랑은 얼마나 아득한 것인가.
그러나 오늘, 나는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겨우내 기다리다 지쳐서 이젠 잊어버린 함박눈이 3월의 초입에 예언처럼 내리듯이, 새로운 사랑을 가슴에 품고 싶다.
황량했던 지난겨울은 잊어버리고, 누군가에게 봄눈처럼 느닷없이 즐거운 충격으로 다가가고 싶다. 잊었던 그리움으로 안기고 싶다.
아, 아. 그러나 봄눈은 이내 그치고 말았다. 폭설로 내리쏟던 그 사랑의 맹세가 뚝 그치고 말았다. 지상을 하얗게 뒤덮어 오던 분분한 낙화가 멈추어 버린 것이다.
눈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설레는 발걸음이 분주하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다. 어지러운 발자국들이 눈 쌓인 풍경과 함께 필름 속에 정지된다.
"빨리 찍어요. 눈 녹기 전에."
서둘러 사진을 찍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
아, 그래. 봄눈은 이렇게 서글픈 것이다.
긴 겨울 마음놓고 나뭇가지에 앉아 멋 부리는 여유는 없는 것이다. 햇볕이 나면 한 순간에 스러질 안타까운 목숨이 아니었던가.
속절없는 사랑, 헛된 맹세처럼 봄눈은 화려하게 찾아왔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아마도 내 사랑이 그러하리라.
잊었던 그리움으로 다가와 영혼을 뿌리 채 흔들어놓고, 햇볕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는 봄눈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리겠지.
중년의 사랑은 춘설처럼 안타까운 것, 느닷없이 찾아왔다 짧은 순간 사라지고 말 것만 같다.
겨우내 기다린 눈을 봄의 초입에 맞는다.
이 즐겁고 황홀한 충격처럼 어떤 사건에 빠지고 싶다. 누군가에게 매료당하고 싶다. 마음의 빗장을 풀어 그를 맞이하고 싶다.
이제 눈은 오지 않으리라고 포기한 그 순간에 내린 봄눈처럼 그렇게 그가 내게로 오리라.
흠뻑 눈을 맞고 설해목으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봄눈 속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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