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 사이에 레테강이 흐르고 있다지. 그 강물을 마시면 이승에 있었던 모든 일을 잊는다던데...

물안개에 휩싸인 남한강에서 나는 레테를 만나고 말았다.

 

 

 

 

혹한의 기온과 충분한 습도, 맑은 날씨, 게다가 바람이 없어야만 제대로 핀다는 상고대.

잠시 피었다 햇볕에 스러지는 그 꽃 또한 이승의 것이 아닌 듯하다.

 

 

 

무엇이든 아름답고 완전한 것,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은 현실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이 우리가 환상에 매달리는 중요한 이유일테니까. <이문열 '레테의 연가' 중에서>

 

 

 

 

 서리꽃 아래 두 연인이 만났다.

저 꽃이 다 지기 전에 우리 사랑 이루게 될까요?

 

 

 

 

 

 

 

망각의 강가를 아무리 배회해도 나를 건네줄 뱃사공은 보이지 않고...

 

 

 

 

물 밖에는 상고대가 물 속에는 산호초가...

 

 

 

 

 

 

 

심야를 달려 충주에 닿은 시각이 새벽 여섯시.

짙은 안개와 미끄러운 눈길, 가로수마다 하얗게 얼어붙은 서리꽃은 가히 몽환적이었다.

꿈과 현실 사이, 이승과 저승 사이... 서리꽃이 질 때까지 그 '사이'를 헤맸다.

 

 

 

 

사진을 잘 버리는 내가, 정말 버리기 어려운 사진이 많았다, 이번엔.

여러 장의 사진을 한꺼번에 보는 것보다 한 장의 사진이라도 오래 바라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강 건너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꽁꽁 언 강을 건너가 문을 두드려보고 싶다.

 

 

 

 

 

 

 

눈과 얼음에 갇힌 선암마을 한반도지형.

 

 

 

 

도담삼봉도 긴 겨울잠에 들고...

 

 

 

 

 

 

 

오, 해피 데이~~~!!!

 

 

 

 

찍기도 하고, 찍히기도 하고... 이런 풍경 속에선 찍히는 것도 즐거운 일.<사진 : 금사매님>

 

 

 

<'야사모' 울산 회원님들과 / 사진: 박다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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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 비바람에 등이 휘고 머리칼은 땅에 닿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 나무는 오래 전부터 시름시름 앓았던가 보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이 쉬운 일이더냐. 메마르고 벗겨진 나무 둥치가 눈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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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 헤르만 헤세

 

나는 황야의 이리, 달리고 또 달린다.

세상은 흰 눈으로 가득하고 자작나무에선 까마귀가 날개짓한다.

하지만 아무데도 토끼는 없구나, 아무데도 노루는 없구나! 노루에 함빡 빠져있기에 한 마리 찾고만 싶구나!

이빨로 물어뜯고 손아귀에 움켜쥔다면, 더 이상 멋진 일이 있을까. 그 귀여운 것이 정말 그립구나.

부드러운 허벅지 깊이 이빨을 처박고 새빨간 피를 실컷 빨아먹고서 밤새 고독하게 울부짖고 싶구나!

토끼라도 좋다. 밤에 그 따스한 살코기는 얼마나 달콤한 맛이던가.

아아, 삶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모두 내게서 떠나버렸단 말인가?

내 꼬리는 이미 잿빛이고 눈 또한 희미한데 벌써 몇 년 전 사랑스런 아내는 죽었다.

이제 노루를 꿈꾸며 토끼를 꿈꾸며 달린다.

겨울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내 타는 목을 눈으로 축이며 내 불쌍한 영혼을 악마에게 팔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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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좋은 건 호박 밖에 없다지만, 고목처럼 아름다운 게 또 있을라구.

길 가다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에게 다가가 물어본다. 수백년 긴 세월을 어떻게 견뎠냐고.

 기껏 백년, 애증에 휘둘리다 덧없이 돌아가는 인간보다 나무의 생이 더 멋지지 않은가?

 

 

 

 

황금갑옷을 떨쳐입은 은행나무를 만났다.

가을 철부지들은 나무에게 매달리고 업히고 드러눕고 안고 뒹굴었다.

길 가다 그 모습을 본 진사님들이 차를 멈추고 급히 기관단총을 꺼내 철부지들 곁으로 왔다.

"모델 좀 해주이소. 사진하는 분들이니 우리 심정 잘 아실 거 아입니꺼?"

 

 

 

 

별이 하늘에만 있는 건 아니지. 내 마음에, 그대 눈에, 우리들 심상에 늘 명멸하는 것!

오늘 내 눈에는 플라터너스 마지막 잎새 몇 장이 별로 뜨네.

 

 

<사진 : 금사매님>

 

 

임고초등학교 운동장 저 나무들

가지마다 쏴아쏴아 비 바람에 몸 섞는 소리

그 아래 앉아 맑고 싱그러운 저 경전을 들어봐라(중략)

잎사귀마다 깔깔대는 아이들 웃음소리 덕지덕지 껍질 속 나이테처럼 똬리 트네

(임고초등 졸업생 정태일 시인 )

 

 

 

 

도심 학교에는 이런 운동장이 없다. 문득 지리산 자락에 있던 가랑잎국민학교가 생각난다.

가을이면 산골 오지의 분교가 온통 낙엽으로 뒤덮였던, 취재 기자가 그 정경을 보고 이름 지었다는....

여고시절, 대원사 자락과 가랑잎국민학교는 우리들의 낭만적인 가을 여행지였다.

 

 

 

 

국내 유일의 한옥교회. 가지런한 신발에 신자들의 마음가짐이 보이는 듯.

 

 

 

 

낡은 종탑이여, 다시 종소리를 들려다오!

한국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자천교회의 가을.

 

 

 

 

물 웅덩이에 비친 십자가에 두 손 모은 저 분께 신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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