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워어~ 우워어~~~"

어미 잃은 송아지 울음이랄까, 방어진으로 회유하는 귀신고래 울음이랄까

해무가 짙은 날엔 바다를 향해 울려퍼지는 무적소리가 슬프다. 무슨 한이 맺혀 저리도 깊은 울음을 토하는 걸까.

 

 

 

 

밤새 무적소리에 잠을 설친 아침, 카메라를 챙겨 대왕암을 보러 간다.

바다에서 육지로 진군하던 해무는 도시를 삼키고 침묵하다가 한순간 증발해버린다.

안개 속에서 배를 인도하는 무적이여, 내 인생의 장애물에도 그 소릴 들려줄 순 없는지.

 

 

 

 

7월이 오면 / 그리 크지 않는 도시의 변두리쯤 / 허름한 완행버스 대합실을 찾아가고 싶다.

죽이 다 된 캐러멜이랑 / 다리 모자라는 오징어랑 / 구레나룻 가게 주인의 남도 사투리를 만날 수 있겠지.
함지에 담긴 옥수수 몇 자루랑 / 자불자불 조는 할머니 / 눈부신 낮꿈을 만날 수 있겠지.
포플린 교복 다림질해 입고 /고향 가는 차 시간을 묻는 / 흑백사진 속의 여학생
잔잔한 파도를 만날 수 있고 /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 행려승의 밀짚모자에살짝 앉아 쉬는 / 밀잠자리도 만날 수 있겠지.
웃옷을 벗어 던진 채 / 체인을 죄고 기름칠을 하는 / 자전거방 점원의 건강한 웃음이랑
오토바이 세워 놓고 / 백미러 들여다보며 여드름 짜는 / 교통 경찰관의 초록빛 선글라스를 만날지도 몰라.
7월이 오면 / 시멘트 뚫고 나온 왕바랭이랑 / 쏟아지는 땡볕 아래 / 서 있고 싶다.  <손광세 / '땡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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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꽉 찬 사진보다 여백이 많은 사진을 좋아한다.

사람도 빡빡한 성품보다 헐렁헐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편안하겠지?

 

 

 

꽃친구와 OK목장으로 바람 쐬러 나갔다. '동네엔 바람이 없다더냐?' 물으면 할 말이 없고 ㅎ

실직한 남편 대신에 쌔빠지게 돈 벌면서도 힘들단 내색 한번 안하는 K.

"남편의 실직이 이혼 사유가 될 수는 없어요. 여자가 돈 벌 이유가 생기는 거지." 참 씩씩한 여자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그녀, 쓸쓸한 날이면 카메라를 들고 혼자 꽃을 찾아 나선다고.

 

 

 

OK목장엔 노랑꽃창포가 한창이고...

 

 

 

아이의 표정을 담고 싶었는데 뒷배경이 복잡해서 실패했다. 앞쪽은 연못이고...

나들이 온 가족을 뒤로 물러나라고 하면 되는데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 이외로 소심하다!)

 

 

 

경주 남산 상선암 마애석불반가상.

칠불암에는 앳된 미소의 비구니 한 분이 산목련처럼 활짝 웃고 계셨다. 참 무구하고 천진한 얼굴이다.

 

 

 

칠불암 가는 길에는 때죽나무 낙화가 별처럼 눈에 박히고...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 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 /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 자꾸만 말을 건네 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 내가 눈물속에 피워 낸 기쁨 한송이 받으시고 / 내내 행복 하십시요.

                                   <이해인 '6월의 장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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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를 한껏 걷어올린 저 얼레지, 꽃말이 '바람난 여인'이란다.

교태라고 표현하기엔 저 빛깔이 너무 차분하지 않은가?

 

 

 

하많은 얼룩이 내 탓이어서 / 볕 엷은 숲 그늘에 숨어 앉았네 / 무심한 발걸음에 여지없이 밟히는 / 연약한 풀꽃일랑 되지 않을래

가시도 독향도 못가진 풀꽃 / 설핏 부는 바람에도 온통 서러워 / 잎도 꽃도 얼룩진 얼레지라네

 

긴긴 외로움 안으로 삭여 / 바람만 바람만 늙어가기를 / 여민 앞섶 단단히 그러쥐어도 / 감추지 못한 그리움은 눈 밝은 햇볕 탓

누구의 손도 때도 타지 않기를 / 산비알 숲 그늘 서러움 짙어 / 얼레지 자주빛은 더욱 붉어진다네

                                                    <윤은경 작시 '얼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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