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 8월 하순 날씨가 이렇게 더운 건 처음이다.

수절하듯이 찜통 더위를 견디다 못해 화끈하게 바람을 피기로 했다. 달 보러 간다는 핑계로 임도 보고 와야지!

 

 

 

 

 

 

해발 1,030미터의 간월재에서 보름달을 보며 야영을 하리라...

한밤중에 옆에 있던 친구가 늑대로 변한다 해도 놀라지 않으리!

 

 

 

 

 

 

서늘한 바람이 놀고 있는 간월재에 차를 두고 일몰을 보러 간월산으로 올랐다.

삽겹살에 벌술(말벌 집을 통째로 술에 담근)로 얼굴이 달아오른 선남선녀들을 만났다.

서쪽 하늘엔 일몰, 동쪽 하늘엔 월출... 내일 아침은 이 자리에서 일출도 보게 되리라.

 

 

 

 

 

 

마음 내키면 언제라도 산에 올라 야영한다는 남자도 만났다.

그의 오두막 뒤로 멀리 언양 시가지의 불빛이 큐빅처럼 반짝이고...

 

 

 

 

 

 

일상이 갑갑할 때마다 마음은 산정으로 내닫는다. 억새밭에 텐트를 치고 이슬 냄새를 맡고 싶다.

어디선가 케켁~ 케켁~ 노루 우는 소리, 바람은 밤새도록 텐트 자락을 날리고...

 

 

 

 

 

 

산오이풀 꽃은 절정기를 지났다. "꽃이 꼭 우리 나이만큼 늙었네 ㅎㅎ" 마주보고 웃어주는 친구.

혼자라도 오고 싶을 만큼 가슴 속에 쌓인 게 많았는데... 함께 와줘서 고마워 고마워!

 

 

 

 

 

 

이제막 손가락을 펴기 시작한 억새풀 사이로 달이 지고 해가 떴다. 자욱한 운무가 산 등성이를 넘어온다.

사진에 혼이 빠져 걸음이 더딘 나를 두고 친구는 신불평원 지나 취서산까지 갔다 오겠단다.

 

 

 

 

 

 

그녀는 산이 고팠고, 나는 사진이 고팠나보다. 서로 절실히 원하는 건 다르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우정이다.

그녀는 나의 사진을 인정하고, 나는 그녀의 걷기를 인정한다. 같이 하자고 조르지 않고, 말없이 기다려준다.

 

 

 

 

 

 

야영을 동경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야영을 함께 할 친구는 많지 않다.

가정의 평화에 막중한 사명감을 가진 여성들은 세상 인연에 끌려가며 야영은 늘 후순위로 밀쳐놓는다.

 

 

 

 

 

 

가정을 포기한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오늘 우리처럼!

됐나? 됐다! 한 마디 사인만 있으면 된다. 이런 저런 사족은 사절이다. 무엇을 최우선에 두느냐가 중요하니까.

 

 

  

 

 

 

신불평원에서 억새 정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에 오르자마자 후두둑 쏟아진 빗방울이 파죽지세로 변하더니 시야를 뽀얗게 가렸다. 국지성 호우였다.

빗줄기가 너무 거세 도로 한켠에 차를 멈추고 섰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인생이란 빗속을 걸어가는 것. 달려봐도 허우적거려봐도 비에 젖기는 매일반이다. 기왕 젖을 거라면 유쾌하게 여유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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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날엔 혼자 여길 찾아온다.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를 달려 해발 천미터 높이에 차가 멎는 간월재.

무성한 억새풀 사이로 드문드문 창포꽃이 처연하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운무가 넘나드는 산정을 바라본다.

바람은 빠르게 운무를 실어나르고 풍경은 삽시간에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억새 숲에서 용케 살아남은 야생화처럼 우리도 이 척박한 세상에서 쌈박하게 꽃피어야 하는데

억새가 너무 억세게 창궐해 꽃 대궁을 밀어올릴 힘이 없네.

  

 

 

 

 

 

너도 참 힘들었겠다. 그 높은 곳에서 비바람 견디며 피었다가 어느새 지고 있네.

 

 

 

 

 

 

간월재에 올 땐 늘 혼자였는데 오늘은 동무가 생겼다.

"간월재에 피리 불러 가자!" 그 한 마디에 찌리리 전기가 통해버린 여인.

 

 

 

 

 

 

나는 피리 부는 아줌마 /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 은빛 피리 하나 갖고 다닌다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 입에 피리 하나 물고서 /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 나의 피리 소리 들으려무나 / 삘리리 삘리리~~~

나는 피리 부는 아줌마 /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

 

 

 

 

 

 

장마 사이로 잠시 햇살이 날 때를 기다려 그는 이 높은 곳으로 올라왔을 게다.

바람을 안고 짧은 도약과 함께 한 순간 공중으로 떠오르는 멋진 비행!

 

 

 

 

 

 

 가까이 갈 수 없어 먼발치에 서서 보고 돌아왔다 /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 마냥 / 산이 어디 안 가고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정희성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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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에 철쭉이 한창일 거라고, 꽃 보러 가자는 친구가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

청명한 날씨, 청량한 공기, 지리산의 이틀은 맑고 밝고 아름다웠다.

 

 

 

 

 

 

언제봐도 탐스러운 반야봉의 복숭아 같은  엉덩이.

左 노고단, 右 만복대, 지리 능선의 실루엣이 미명 속에 잠겨있다.  

 

 

 

 

 

 

법계사 적멸보궁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세존봉.

날씨는 덥고, 짐은 무겁고... 탐욕을 지고 오르는 중생의 얼굴에선 땀 비가 내렸다.

 

 

 

 

 

 

울산 출발 8시. 중산리 도착 11시반. 칼바위 지나 점심을 먹고 바로 올라쳤더니 숨이 턱에 차고 속이 메스꺼웠다.

에라, 이 우매한 중생아. 짐 줄이자는 심산으로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녀? 

사진은 법계사 삼층석탑. 자연석 위에 기단 없이 탑을 올린 형태로 고려 초기 작품으로 보인다.

 

 

 

 

 

 

주능선에는 철쭉이 한창이다. 천왕봉 근처엔 진달래도 남아있고...

 

 

 

 

 

 

십수년 전, 내 생애 첫 지리산 종주하던 날.

15키로의 배낭을 짊어지고 17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산이 뭔지도 모르고 산에 듬볐던 얼치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새벽달이 장터목에 놀러왔다.

 

 

 

 

 

 

화려한 암릉도, 놀랄만한 경치도 없지만 지리산은 넉넉한 그 품새로 수많은 사람들을 품는다.

설악의 화려한 봉우리보다 지리의 장엄한 산세가 나는 더 좋다. 설악같은 사람보다 지리같은 사람이 편안하다.

 

 

 

 

 

 

제석봉을 지날 때마다 긴머리 처녀 산꾼 얘기가 생각난다.

야간산행을 즐기던 그 처녀가 제석봉 고사목 위에 올라 새벽달을 보고 있는데 장터목에서 등산객 둘이 올라오더란다.

 반가운 마음에 처녀는 등산객이 제 앞에 올 무렵 나무에서 풀쩍 뛰어내렸는데..... 남자 둘이 그 자리에서 혼절해버렸다. 귀신이줄 알고....

 

 

 

 

 

 

오늘 천왕봉엔 5월의 나무같은 청춘들이 산 아래 세상과 즐거운 교신을 나누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리산 정상석을 바꾸지 않는 건 참 마음에 든다. 

 

 

 

 

 

 

등산객이 흘린 음식에 맛들인 다람쥐가 천왕봉 정상을 요리조리 넘나든다.

하긴,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가슴곰도 겨울이면 등산객에게 음식을 조르는 실정이니...

 

 

 

 

 

 

지리산 풍경에 악센트를 넣어주는 구상나무 고사목.

구상나무는 반야봉 일대에 군락을 이루고 있기도 하지만 지리산 주능선에 널리 퍼져있는 편이다. 가문비나무와 함께.

 

 

 

 

 

 

해발 1900고지에 얼레지가 피어있을 줄이야!!!

남녘 산 기슭엔 3월에 피고 진 저 꽃을 6월의 지리산에서 만날 줄이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 언제 어느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중에서>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국립공원 일대는 흙길이 사라지고 돌길로 포장되고 있다.

길 가에 포기포기 야생화가 피어있던 옛길이 그립다.

 

 

 

 

 

 

국토의 70%가 산이라지만, 큰 산에 와보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90%가 산 아닐까?

미명의 산 그리메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장터목산장에서 1박하고 제석봉에서 일출을 만났다.

 천왕봉까지 왕복 2시간 거리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꼭 천왕봉에서만 일출을 봐야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제석봉 고사목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고사목이 없다면 지리산에서 제석봉은 아무 매력 없는데...

 

 

 

 

 

 

아침 햇살에 서서히 살아오르는 6월의 지리산.

고산지대 특유의 청량한 공기 덕분에 밤잠을 설쳤는데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철쭉과 고사목이 어우러진 풍경. 그 뒤로 겹겹이 이어지고 포개지는 산 그리메.

 

 

 

 

 

산이 날 에워싸고 /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박목월>

 

 

 

 

 

 

서쪽으로 (중산리-천왕봉-장터목-세석-거림) 진행하는 동안 반야봉은 시야에서 떠나질 않고...

 

 

 

 

 

 

 붉은 철쭉보다 연분홍 철쭉을 더 좋아하는 저 친구. 그 마음도 아직 연분홍일까.

 

 

 

 

 

 

개구리 한 마리가 바위에 납작 엎드려 있다. 푸른 하늘로 멋지게 도약할 듯한.....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을 제법 만났다. 지리산 종주에 나선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대간꾼도 더러 보였다.

배낭 보면 감이 온다. 저 사람이 날나린지 산꾼인지 산귀신인지.

 

 

 

 

 

 

무거운 카메라 메고 지리산에 덤비다니, 니캉 내캉 간이 부었나보다.

 산장에서 날밤새고, 뒷날 일출 보러 갔다 오고... 지친 기색도 없이 잘도 걷더라.

 

 

 

 

 

 

떨어진 꽃잎을 밟기 미안해서 발 끝을 놓기 어렵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

귀룽나무 꽃잎이 눈처럼 하얗게 날려 땅을 뒤덮은 구간도 있다.

 

 

 

 

 

 

 세석평전 부근, 산자락을 노랗게 수놓은 동의나물. 그 속에서 마지막 처녀치마 한 떨기도 만났다. 야광나무 꽃도 활짝, 왜갓냉이 꽃도 활짝.

산길에서 만난 꽃들은 먼 길에 지친 발을 가볍게 해준다. 나도 누군가에게 산길에서 만난 꽃이 되어줘야지. 암, 그래야지.

 

 

 

 

 

 

마지막 진달래가 나도 좀 봐달라고 해시시 웃고 있다. 저 아래는 마천, 백무동이 시작되는 곳이다.

 

 

 

 

 

 

뒤돌아보면 아스라한 정상. 사는 것도 때론 그렇지. 지나고 보면 어떻게 살아냈나 싶은 것이...

 

 

 

 

 

 

연분홍 철쭉과 초록의 숲에 에워싸인 세석대피소. 휘파람새가 따라오며 울었다. 있다 가요. 놀다 가요. 꽃이 이리 좋은데!

 

 

 

 

 

 

바래봉은 바래봉대로, 황매산은 황매산대로, 저마다 철쭉의 매력이 다르다.

빛깔이야 그쪽 꽃들이 화려하지만, 아늑한 평원에 넓게 펼쳐진 세석 철쭉은 지리산만의 매력이다.

 

 

 

 

 

 

넷이 가기로 했다가 단둘이 갔다. 저 친구마저 기권했더라면 나 혼자 다녀올 수 있었을까?

 

 

 

 

 

 

엄마 생각에 대원사 계곡으로 차를 몰았다. 저 물 속에 엄마랑 함께 몸을 담그고 놀았는데. 그때 엄마의 표정까지 눈 앞에 선한데.

 그 맑고 깨끗하던 물, 폭포 소리를 내며 흐르던 물...

 

 

 

 

 

 

세석에서 거림으로 내려오다가 우리를 마중나온 제부(우리집 셋째딸 남편)를 만났다.

지리산 야전사령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부는 모처럼 처형에게 봉사할 기회가 생겨 즐거워하는 눈치다.

중산리까지 제부 차를 타고 가다 점심도 얻어 먹고 내친김에 대원사 갈림길까지 에스코트도 해주고... 이래 저래 즐거운 지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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